[적당한 거리]_ 전소영
시도 때도 없이 아이의 순간순간을 카메라에 담아내려 애쓰던 첫 아이, 모든 순간을 눈과 마음에 담아내려 애쓰던 둘째 아이. 첫 아이를 키울 때 나의 시선은 아이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동네 애기엄마들과 모여 잠깐의 힐링 시간으로 차를 한잔 마실 때도 나의 시선은 언제나 아이를 향해 있었고 모든 주파수가 아이에게 맞추어져 있었다. 돌아보면 그만큼 나의 불안도가 높았던 것 같다. 아이가 콘센트 구멍이 있는 쪽으로 시선만 돌려도 위험이 감지되어 아이를 제지시켰었다. 나의 불안감 때문에 아이에게 제한이 많았다. 이것은 아이의 성향 때문인 것인지 나의 양육태도 때문인 것 인지 모르겠지만 아이의 기질은 예민한 편이었다. 둘째 아이는 한 번에 경험치가 쌓여서인지 아이에 대한 믿음이 꽤나 높아 아이를 지켜보게 되는 여유가 생기고 시선에서 조금 벗어나도 불안한 마음이 적었다. 물론 첫 아이와 둘째 아이에게 시선이 분산되어야 하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둘째를 키우면서는 심리적인 안정감이 첫째에 비해서는 높았던 것 같다. 둘째는 혼자 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첫 아이에게 쏟아냈던 에너지에 비하면 내가 한 것이 없다고 느낄 만큼 정말 혼자서도 너무 잘 커주었고 첫 아이를 키우며 종종 불끈 올라오는 불편한 감정들이 신기하게도 둘째에게서는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가 정해놓는 바운더리는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첫 아이 육아는 어찌 보면 상대를 잘 파악하지 못하고 모르는 것이 많았기에 불안함에 하루 종일 주파수를 아이에게 맞추느라 나 또한 바짝 긴장된 상태로 아이를 키우느라 에너지가 많이 쏟아졌다면 둘째 아이 육아는 상대와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며 지켜보는 가운데 파악되어지는 아이의 정보들로 긴장감을 낮추고 조금은 여유 있게 아이에게 맞추어 주는 육아라 조금은 편했던 것 같다.
[적당한 거리]
그렇게 모두 다름을 알아가고 그에 맞는 손길을 주는 것.
그렇듯 너와 내가 같지 않음을 받아들이는 것.
그게 사랑의 시작일지도.
유난히 첫 아이를 키우며 내 어린 시절 채워지지 않은 부분이 자주 충돌 되었던 것 같다. 나 또한 1남 3녀 중 맏이였고, 부모님의 기대가 나에게는 버거울 정도로 높았고 그로 인해 내 안에 인정욕은 결핍을 느낄 때가 많았던 것 같다. 첫 아이는 호불호가 분명하고 내 기준에서는 요구사항이 많은 아이였다. 어린 시절 나는 내 안에 요구사항들을 쉽사리 부모님께 꺼내놓지 못했던 것 같은데 내 아이는 그렇지 않은 모습에 아이를 키우는 게 버겁다는 느낌도 종종 들었다. 나의 내면아이가 채워지지 않았던 터라 아이의 이런 모습이 나를 불편하게 했었던 것 같다. 나 또한 첫 아이에게 갖게 되는 기대치가 높아지고 첫째라는 순번의 동병상련이 있음에도 공감보다 다그침이 더 잦아 애틋하고 미안한 감정이 자주 밀려오곤 한다. 첫 아이도 동생이 생기고는 자꾸 밀어내는 엄마에게 느끼는 감정들을 한 번씩 쏟아내는 모습을 보면서 ‘난 그러지 못했는데.. 그래도 넌 참 건강한 아이구나’ 싶어 감사하다. 아이의 서운함을 채워주기 위해 지난 5월 한 달은 하원 시간을 한 시간 당겨 직접 픽업을 갔었다. 둘째 하원시간은 한 시간 늦추고 첫째와 하루 두 시간씩 엄마를 독점할 수 있는 시간을 갖으며 첫째와 매일 데이트를 두 시간씩 했다. 내 나름에 작전이 통했는지 “동생이 없었으면 좋겠어. 동생이 너무 싫어!”하던 첫째는 둘째가 안 보이면 둘째를 찾고 보고 싶다고 하며 먹을 것도 하나 더 챙겨두었다가 동생에게 주기도 하며 엄마로부터 채워진 마음을 동생에게 나누었다. 한 달 동안 첫째와 단둘이 나누던 시간은 어쩌면 내가 어린 시절 엄마와 나누고 싶었던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시간이 내 마음의 어린아이에게도 채움의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적당한 거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도와주는 것일 뿐.
안다는 것은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야.
매일매일 눈을 마주쳐 잎의 생김새를 가만히 둘러보는 거야.
구부정했다가 활짝 펴지는 모습을,
바짝 세워졌다 느긋하게 늘어지는 모습을.
안다는 것은 서두르지 않는 것이기도 해.
앞서 판단하지 않고 기다려 주는 것.
조급해하지 않고 스스로 떨구는 일을 거두어 주는 것.
한 발자국 물러서 보면
돌봐야 할 때와 내버려 둬야 할 때를 조금은 알게 될 거야.
적당한 햇빛, 적당한 흙, 적당한 물, 적당한 거리가 필요해.
그 어떤 육아서 보다 건강하게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마음을 아이에게 두어야 하는 어느 정도의 거리를 너무 마음에 와닿게 알려주었던 그림책이다. 부모란 아이의 손, 발이 되어 모든 것을 대신해주기보다는 한 발자국 물러나 어느 정도의 안전한 바운더리 안에서 아이가 스스로 경험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겠구나 싶었던 매일매일 눈을 마주쳐 아이의 모습을 가만히 둘러보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피며 도와주는 것. 적당한 햇빛, 적당한 흙, 적당한 물, 적당한 거리.. 그 적당함을 알 수 있게 서두르지 않고 앞서 판단하지 않고 기다려 주며 한 발자국 물러서서 바라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