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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영 Jun 29. 2020

자두는 나의 여름을 닮았다

새콤한 코를 가진 사람의 이야기


 장을 보고 온 엄마가 자두를 한 아름 사 오셨다. 달고 단단한 자두를 씻어 베어 물자 입안 가득 시큼 달달-한 과즙이 흘러나왔다. 세입 베어 물어 작아진 자두를 한 입에 넣고 굴리면서 씨에 달라붙은 살까지 야무지게 먹었다.

 딱 이맘때의 여름, 엄마는 나를 가졌을 때 유독 자두를 많이 드셨다고 했다. 매년 여름 자두를 먹을 때마다 같은 말을 하지만 매번 신기할 따름이다. 나는 아주 작은 세포였을 때부터 먹고 싶은 건 참을 수 없는 성격인 게 분명했다.


 사실 올해 첫 자두는 이미 일하는 가게에서 맛봤다. 실온에 놔둬서 미지근하고 물렁물렁 시큼했지만 올여름 처음으로 맛본 자두여서인지 제법 맛있게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힘없이 물렁한 과육과 달지 않은 속살이 퍽 올여름의 나를 닮았다. 날이 더워질수록 무기력해졌고 마지막으로 치른 기말고사 답지는 눈뜨고 봐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다 내가 일궈낸 것들이니 빠른 시일 내에 눈물 흘리며 수습해야 한다.

 엄마의 첫여름 자두 또한 물렁했다. 과일 가게에서 먹은 게 하필 푹 익은 자두였던지라 사 오길 망설였다고 했다. 결국 더 비싼 값을 주고 가게 냉장고 안에 있던 단단한 자두를 사 오셨다.


 엄마에게 있어서 시고 물렁한 지난날은 무엇이었을까. 너무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눈물이 날 것 같아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그날 저녁 두 모녀는 그저 그랬던 첫 자두를 잊고 맛있는 자두를 한 알씩 먹었다. 나는 혼자서 코 끝이 새콤해지는 걸 느꼈다. 예쁜 자두를 골라 접시에 담는 것처럼, 아주 달진 않더라도 단단한 마음만을 솎아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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