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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영 Jul 29. 2020

바위 파스타 바(bar)에서 생면을 만나다

내 돈 주고 갔다 온 건대입구역에 위치한 바위 파스타 바(bar) 후기

 건대입구 역을 따라 걷다 보면 골목의 터줏대감인 양 자리 잡은 낡은 다방과 국밥집 사이 검은색으로 톤을 맞춰 세련된 외관을 자랑하는 가게가 있다. 별 다른 간판 없이 'bawi pasta bar'라고 쓰인 통유리 너머에서는 주방을 중심으로 ㄷ자로 놓인 테이블에 스툴 의자, 그리고 그 위로 쏟아지는 조명 덕에 바(bar)에서 식사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바위 파스타 바(bar)는 1인 내지는 소수의 셰프들이 운영하기 때문에 100% 예약 체제로만 운영된다. 내가 방문한 날은 셰프님 한 분께서 주방을 지키고 계셨다.  메뉴는 모두 단품이고 와인, 위스키 등 주류도 준비되어 있다. 콜키지는 병당 2만 원이니 참고하도록 하자.


1- 부라타 치즈 샐러드

 가장 먼저 부라타 치즈 샐러드가 나왔다. 주문과 동시에 방울토마토를 잘라 양념에 마리네이드 한 뒤 부라타 치즈에 올리브유와 후추 등을 뿌려 내어 주신다. 쫀득하면서도 입안에서 부드럽게 풀리는 치즈와 토마토, 그리고 바질의 향긋함을 잡아주는 알싸한 후추가 매력적이다.


 식사를 하는 동안 셰프님이 밀대와 기계를 이용해 눈 앞에서 생면을 뽑아주신다. 모든 조리과정을 불과 1m 남짓한 거리에서 지켜보는 것이 부담스러울 법도 한데, 그저 묵묵히 제 할 일을 해내는 모습이 꼭 1인 오케스트라를 연상시킨다. 먹는 속도에 맞춰 다음 음식을 준비해주시다 보니 이제 막 뽑은 면을 불지 않은 따뜻한 상태로 먹을 수 있다.


2- 아티초크와 민트 피스타치오 페스토 딸리 올리니

 주문하기 전까지 많은 고민을 거듭한 메뉴이다. 바질이 아닌 피스타치오 페스토, 게다가 민트와 레몬까지? 디저트에 나올 법한 조합과 더불어 아티초크가 들어간 음식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한참을 망설이다 용기 내어 주문했다.


 결과는 대성공.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러운 식감이나 맛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가장 기억에 남는 접시였다. 피스타치오의 고소함과 민트의 청량감은 서로의 영역에 침범하지 않지만 맛의 균형을 적절하게 잡아준다. 함께 간 친구는 아티초크 더러 '생전 처음 겪어보는 식감'이라며 웃었다. 미니 양배추처럼 잎이 겹겹이 쌓여 있지만 훨씬 촘촘하고, 식감은 아삭함 보다 푹 익힌 고기에 가까웠다. 씹을수록 풍부하게 느껴지는 버터향이 독특한 페스토와 무척 잘 어울린다.


 3- 볼로냐풍 라구 딸리아뗄레

 이어서 나온 라구 소스의 파스타이다. 앞서 먹은 파스타는 처음 맛보는 페스토 덕분에 생면의 식감을 잊고 있었다면 이번 접시는 확실히 생면의 쫄깃함에 집중할 수 있었다. 두툼한 면 구석구석까지 소스가 스며들어 한 가닥만 먹어보아도 라구의 묵직한 고기 맛이 느껴졌다. 생면의 질감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딸리아 뗄레나 톤나렐리 같이 도톰한 면을 추천한다.


 조금 덧붙이자면 앞서 맛보았던 파스타는 딸리 올리니라는 면이며, 우리가 평소 흔하게 접하는 스파게티니 면보다 조금 넓적하다.  면이 가늘다고 해서 생면의 묘미가 묻히는 것은 아니다. 마트에서 파는 면은 아무리 잘 삶아도 입 안에서 툭툭 끊기는 느낌이라면 이곳에서의 모든 생면은 포크로 건졌을 때 탄력부터 다르다고 할 수 있다.


 3- 우니(성게알)와 오징어 먹물 스파게티

 6월 25일 기준 하루에 딱 두 접시만 준비되는 메뉴이다. 오징어 먹물과 오렌지 제스트를 넣어 반죽한 스파게티 면에 당일 들여온 성게알을 푸짐하게 올려준다. 방문했을 당시 테이스팅 메뉴라며 맛보게 해 주셨는데 하루에 두 접시만 나간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예약 시 따로 요청을 하면 셰프님이 추가로 준비해주신다고 하니 성게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방문 전 꼭 우선 예약을 하도록 하자.


 이 접시 또한 처음에는 성게알에 오렌지?라는 의아함이 들었지만 한입 먹는 순간 미끄러지듯 들어오는 바다 풍미에 시트러스가 가미되어 고개가 끄덕여지는 맛을 선사한다. 포크에 면을 돌돌 말고 그 위에 성게알을 조금 얹어 먹으면 짭쪼롬한 성게알 아래 씹히는 면의 상큼함이 미각에 시시각각 변화를 준다.


4- 판나코타

 마지막으로 디저트인 판나코타가 나왔다. 키위 주스를 이용한 소스를 밑에 깔아주셨는데 같이 나온 과육이 말랑하고도 밀도 있는 판나코타에 식감을 더해준다. 새콤달콤하기까지 하니 식사 후 입가심으로 먹기 제격이다.

 메뉴판을 적극 활용하여 나만의 코스를 만들어보는 것도 묘미겠다. 자신의 취향에 따라 디저트, 와인, 위스키 또는 간단하게 스파클링 워터로 식사를 마무리해보는 것은 어떨까?




 한 시간 반 가량의 식사를 마치고 나니 적은 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꽤 포만감이 차올랐다. 생면의 식감을 느낀다고 꼭꼭 씹어 먹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어찌 되었든 평소 밥을 든든히 챙겨 먹는 편이라면 조금 있으면 아쉬울 수 있는 양이다.


 가게를 나서면서 전체적으로 맛의 조화가 잘 잡힌 파스타라고 결론지었다. 평범한 재료도, 그렇지 않은 재료도 무엇 하나 뒤떨어지거나 튀지 않는 적절한 맛의 균형이 식사를 편안하게 해 준다. 새로운 식재료의 합을 구상하고 실현으로 옮기면서 생면이라는 메리트까지 놓치지 않는 바위 파스타 바가 앞으로 어떤 독창적인 메뉴를 선보일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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