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마지막 흔적

by someformoflove

한겨울, 오후의 카페


헤어진 지 1년이 지났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상처는 흐릿해졌고, 기억은 무뎌졌다. 함께했던 3년의 시간은 결국 사소한 말다툼과 끝없는 오해 속에서 권태로 변질됐다. 그는 날 이해하지 못했고, 나는 그의 냉담함에 점점 지쳐갔다. 헤어지던 마지막 날에도 나는 울면서도 그와의 좋았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위로했었다.


그렇게 끝난 사랑이었다. 내가 이곳에서 카페 일을 하며 평범한 일상을 되찾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바쁜 오후였다. 손님들의 주문을 처리하며 커피를 내리던 나는, 문득 느껴지는 익숙한 기척에 손이 멈췄다. 고개를 들자,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가 보였다.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는 여전히 같은 걸음걸이와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창가 쪽 자리에 앉은 그는 무언가를 주문하고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그동안 이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봐왔지만, 단 한 번도 그와 비슷한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아니, 그와 같은 사람은 없었다.


나는 숨고 싶었다. 죄지은 것도 없으면서, 테이블 아래로 몸을 숙였다. 마음은 이상하게 조급했고, 손끝이 떨렸다. 그러다 마스크를 더 위로 끌어올렸다. 그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기만을 바랐다.


“리필 필요하시면 말씀해 주세요.”

커피를 내리며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그의 얼굴을 마주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가 고개를 들자 어쩔 수 없이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나를 오래도록 바라봤다. 긴가민가한 표정이었다. 나를 알아본 걸까? 아니면 그냥 낯이 익은 사람이라 생각한 걸까? 나는 그의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빠르게 뒤돌아섰다.


퇴근 시간이 다가올 즈음, 문득 카페 문이 다시 열렸다.

그가 또 들어왔다. 이번엔 손에 커피조차 들고 있지 않았다. 그는 나를 향해 똑바로 걸어왔다.


나는 무언가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 하지만 그의 표정엔 묘한 간절함과 아쉬움이 섞여 있었다.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저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았다.


“…”


그의 입술이 열릴 듯하다가 멈췄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 침묵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무게에 숨이 막혔다.


그를 바라보던 내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여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함께 걷던 밤길, 그의 손에 이끌려 찾았던 오래된 책방, 아무런 이유 없이 웃고 떠들던 시간들. 그는 분명 나를 울게 했지만, 동시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을 함께했던 사람이었다. 그 모든 기억들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치며, 내 마음 깊은 곳을 휘저었다.


눈물이 금세라도 떨어질 것처럼 맺혔다. 그 역시 그걸 눈치챘는지, 당황한 듯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상황을 이해하는 듯했다.

우리의 마지막 날도 이랬다. 내가 울면서도 좋았던 기억들로 애써 마음을 붙잡으려 했던 모습을 그는 알고 있었으니까.


나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차마 입을 열 수 없었다. 하지만 결국, 조용히 입술을 떼며 말을 꺼냈다.

“그래도…”

내 목소리가 갈라졌다. 나는 고개를 살짝 돌렸다가, 다시 그를 마주 보았다.

“… 즐거웠어.”


그는 눈을 깜빡이며 나를 보았다. 마치 내 말을 이해하려는 듯, 그리고 동시에 그것이 무슨 뜻인지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천천히 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하지만 이제 다 지나간 일이야.”


그 말을 하고 나니, 참았던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나는 손으로 서둘러 닦아냈다. 그와의 모든 시간이 그 한 마디로 종결된 것처럼 느껴졌다. 좋았던 기억도, 상처도, 아픔도 모두.


“잘 가.”

나는 마지막으로 담담히 그에게 말했다. 더 이상 붙잡히지 않겠다는 결심이 담긴 목소리였다.


카페 문을 나서며, 차가운 겨울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눈물이 더 흘러내렸지만,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발걸음을 멈추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져버릴 것 같았다.


남겨진 그는, 내가 떠난 자리의 바닥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바닥에 떨어진 눈물 자국을 닦아내는 그의 손끝은 느리게 움직였다.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한 것이, 그가 가장 후회하는 일처럼 보였다.


그렇게 그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카페를 나섰다. 차가운 공기 속으로, 두 사람의 흔적이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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