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의 파도로 인해 만들어진 모양이야.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너라는 파도가 내게 닿았고, 그 순간부터 나는 나라는 형태를 조금씩 잃어갔다. 부드럽게 스치는 날이 있었고, 날카롭게 깎이는 날도 있었다. 어떤 날은 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예전의 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변했지만, 그 변화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너의 움직임에 따라 나를 내어줄 뿐이었다.
사랑이란 그런 것 같다. 너는 파도처럼 나를 지나가지만, 나는 절벽처럼 그 자리에서 네 흔적을 고스란히 품는다. 그리고 네가 떠나고 난 뒤에는 다른 파도가 와서 나를 다시 새기겠지.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모습조차 흐릿해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계속 이름을 붙잡고 있을 것이다.
어느 해안의 절벽처럼, 이름은 변하지 않지만 그 모양은 끝없이 달라지는 것처럼.
처음에는 사랑이 변해가는 게 두려웠다. 너와 내가 같은 파도 속에 있을 때, 우리는 마치 하나인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환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파도는 계속 움직이고, 변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네가 남기고 간 흔적은 내게 새로운 모양을 주었지만, 동시에 너의 흔적을 밀어낼 다른 파도도 함께 오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너를 탓할 수는 없다. 파도가 물러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너는 그냥 너의 흐름대로 나를 스치고 지나간 것뿐이다. 내가 여기에 남아 너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너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수는 없으니까.
나는 결국 사랑 앞에서 내가 얼마나 무력한 사람인지 깨닫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너의 형태를 받아들이는 것뿐이었다. 네가 부드러운 날이든, 거친 날이든, 혹은 아무 흔적 없이 흩어져 사라지는 날이든 나는 가만히 서서 너를 담아냈다. 그게 사랑의 방식이라 믿었다. 너를 이해하고, 네가 남기는 상처를 받아들이고, 네가 지나간 후에도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 그것이 나의 사랑이었다.
네가 떠난 뒤에도 나는 가만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하지만 문득 깨달았다. 나는 네가 지나간 뒤에도 절벽으로 남아 있지만, 그 모습은 이미 완전히 달라져 있다는 사실을. 네가 나에게 새긴 모양은 사라질 수 없고, 새롭게 온 다른 파도가 그 위에 또 다른 무늬를 더할 뿐이다. 너라는 파도에 맞춰 내 모양이 달라졌고, 또 다른 파도들이 와서 나를 더욱 변하게 만들겠지.
그러나 나는 그 자리를 떠날 수 없다.
내게 남은 것은 네가 남기고 간 형태뿐이다. 그것이 아프든 아름답든, 그것이 나의 사랑이었다. 네가 내게 준 사랑, 그리고 너에게서 빌려온 내가 가진 이름.
나는 그 자리에서 끝없이 깎이고 변해갈 것이다. 네가 지나간 자리에 새겨진 모양은 언젠가 흐릿해질지도 모른다. 다른 파도들이 와서 나를 계속 새롭게 다듬어갈 테니까. 하지만 나는 그 모든 순간에도 너를 기억할 것이다. 내 이름이 바뀌지 않는 것처럼, 너도 나의 어떤 부분에서는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그렇게 나를 포기하게 만들었고, 나는 그 사랑 속에서 끝없이 변해갔다. 그게 아팠지만, 그게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