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쓰고, 쉽게 지우는 이야기들

by someformoflove

“자꾸 지운다. 쉽게 쓸 수 있어서 그만큼 쉽게 지울 수 있나 봐.”


친구의 메시지는 짧고 담담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무언가 묵직한 울림이 있었다. 쉽게 쓰인 글이니까, 그만큼 쉽게 지울 수 있다는 말. 글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일까? 아니면 그것을 쓰는 나 자신이 그러한 것일까? 나는 이 짧은 문장에서 시작된 생각을 곱씹으며 머릿속에서 지워졌던, 혹은 지웠던 나의 많은 흔적들을 떠올려 보았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글을 쓴다. 메시지, 메모, 댓글, 혹은 긴 글의 초안들까지. 손가락이 화면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이고, 그 결과물은 빠르게 형태를 갖춘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지우는 것도 너무나 쉽다. 몇 번의 터치, 백스페이스 키 몇 번이면 한 문장, 한 단락, 심지어 한 권의 글감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지워진 흔적조차 남지 않는, 마치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생각해 보면, ‘쉽게 쓴다’는 건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단순히 ‘글을 쓰는 행위가 어렵지 않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 글이 가볍고 깊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무엇이든 쉽게 쓴 글은 대개 순간적이고 가볍다. 순간의 감정에 휘둘려 무심코 던져놓은 말처럼, 깊이 고민하지 않은 채 흘러나온 단어들이 글로 남는다. 하지만 그런 글은 뭔가 불완전해 보이고, 그만큼 쉽게 지울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언제든 ‘더 나은 말들’로 바꿀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쉽게 지워지는 글들이 내 마음을 더 불편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그 글들은 쓰인 순간만큼은 나의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남겼다가, 조금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읽어보고는 ‘이건 아닌 것 같아’라며 지운다. 그 순간의 진심을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지워진 글들은 어디에도 남지 않고, 결국 나의 진짜 마음조차 사라지는 기분이 든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무엇을 ‘쓴다’는 것에 점점 더 부담을 느끼게 된 것 같다. 글은 누군가에게 보이는 순간부터 평가의 대상이 된다. 친구에게 보낸 메시지조차도 상대의 반응을 기다리며 내심 초조해지곤 한다. 그러니 더욱더 쉽게 지우고, 더 나은 단어를 찾아낸다. 완벽하게 전할 수 없는 진심이라면 차라리 말하지 않는 게 낫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정말 그런 걸까? 진심이란 원래 불완전하고, 말은 항상 어딘가 부족한 법이다. 쉽게 쓰였다고 해서 그 말의 가치가 가벼운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때로는 어설픈 문장과 불완전한 표현이 더 진솔하고 마음에 닿을 수 있다. 그러니 쉽게 쓰고, 쉽게 지우는 이 습관이 조금은 아쉽다. 지워버리기 전에 조금 더 그 글을 들여다보고, 그 글이 왜 나에게서 흘러나왔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친구의 메시지가 다시 떠오른다. 쉽게 쓴 글이 쉽게 지워진다는 건 어쩌면 그만큼 마음의 진짜 무게를 두려워한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혹시나 나의 말이 가볍게 여겨질까 봐, 혹은 그것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나를 오해하게 만들까 봐 우리는 점점 더 말하기를 주저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속으로만 삼키고, 그저 안전하고 무난한 말들만을 남기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늘의 나에게 이렇게 말해보고 싶다. ‘쉽게 쓰고 지워도 괜찮아. 하지만 가끔은 그 말들을 조금 더 붙잡아 보자.’ 지우기 전에 다시 한번 읽어보고, 그것이 정말 사라져도 괜찮은 문장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자. 나의 말들은 나의 흔적이고, 그 말들이 모여 나라는 사람이 되니까. 비록 완벽하지 않은 글이라도 그것이 나의 진짜 마음이라면, 그대로 남겨두는 용기를 내보자.


쓰고 지우는 것을 반복하는 삶이 나쁘지는 않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를 더 나은 말들로, 더 진솔한 마음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번쯤은 그 과정 속에서 사라질 뻔한 마음들을 건져 올리고, 그 말들을 그대로 남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나는, 이 글을 지우지 않기로 한다. 쉽게 쓴 글이라도 그것이 지금 나의 마음이라면, 충분히 남아 있을 자격이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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