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단어가 이제는 내게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단순히 내 몸이 노화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주변 사람들의 소식이 더 이상 기쁜 일들로만 가득하지 않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누군가의 결혼식이나 새로 태어난 아이에 관한 소식이 더 많았다면, 요즘은 병원에 입원했다는 이야기나 누군가 떠났다는 이야기가 늘어난다. 삶보다는 죽음이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물론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간다면, 살아온 만큼이나 더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란 존재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우리는 생각할 수 있는 존재다. 그리고 생각한다는 건 곧 두려움을 마주한다는 것과 같다.
얼마 전, 오래된 친구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인사를 나누고, 농담을 주고받았던 사람이었다. 병원에 입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설마 그렇게 빨리 떠날 줄은 몰랐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아무런 실감이 나지 않았다. 멍하니 앉아 있다가, 그제야 그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다음에 한 번 보자.”
그 친구가 나에게 했던 마지막 말이었다. 나는 그때 “그래, 조만간 보자”라고 대답했지만, 그 약속은 이제 영원히 지켜지지 못한다.
시간이 흐르며 이런 일들이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죽음이라는 단어 자체가 낯설었다. 누구나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했고, 누군가 떠난다는 것은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떠나가는 사람들을 더 이상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을 떠나보내는 법도 배우게 되었다.
그러나 익숙해진다고 해서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죽음은 여전히 나를 무겁게 짓누른다. 너무 많은 것을 알수록, 그리고 생각할수록 끝이라는 것의 무게는 더욱 커진다. 어쩌면 그것은 단순히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내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 때문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정해준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 오히려 더 고통스럽다.
죽음의 시점과 방식은 결국 나에게 달려 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내 뜻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애매한 상황이 때로는 견디기 힘들다.
그럴 때면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차라리 정해진 대로 살아갈 수 있다면 어떨까.”
그러나 나는 그렇게 살아갈 수 없다.
나는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이고, 그 생각이 내 삶의 일부다.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생각을 멈추는 것은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이런 두려움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죽음이란 가까워질수록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죽음을 마주하는 순간은 분명 무서울 것이다. 하지만 그 두려움 속에서도 나는 내가 살아온 시간들을 떠올릴 것이다. 친구와 나눴던 마지막 대화, 이제는 들을 수 없는 그 목소리, 그리고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아프지만, 동시에 그 모든 순간들이 소중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게 죽음이 내게 주는 마지막 선물일지도 모른다. 내가 살아온 시간을,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것.
죽음은 여전히 두렵다.
그러나 그 두려움 속에서도, 내가 나로 살아온 흔적은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