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이 보장된 시대에서
얼마 전, 철학 서적 독서 모임에 간 적이 있다. 낯선 사람들이 모여 책을 읽고, 각자의 생각을 나누며 대화를 이어가는 자리였다. 그날의 주제는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것이었다. 무거운 주제였다. 모두가 저마다의 의견을 펼쳤지만, 정작 내가 머릿속에 떠올린 결론은 간단했다.
“결국 인간은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게 아닐까?”
물론 단순한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 생각을 오래 붙들고 있었다. 번식이라는 과정도 결국 나라는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이어가려는 생존의 연장선 아닐까. 내가 죽더라도 내 세포의 일부는 계속해서 남아 생존하려는 방식. 인간의 복잡한 행동들 역시 결국 생존이라는 본능에서 출발한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현대 사회에서의 죽음이라는 주제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우리는 더 이상 생존의 위협 속에서 살고 있지 않다. 이전 세대처럼 병이나 전쟁 때문에 대규모로 생명을 잃는 일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삶의 조건은 과거보다 훨씬 나아졌고, 생존 자체가 큰 문제로 여겨지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선택하는 시대를 살고 있을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고 싶었다. 어쩌면, 생존의 필요성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닐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던 시대에는, 그 자체가 삶의 목표가 되었다. 살아남는 것이 곧 성공이었고, 그것이 모든 것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생존이 너무나 당연하게 보장된 시대에서, 삶은 단순히 살아 있다는 이유만으로는 의미를 찾기 어려워졌다. 생존을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 내가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돌아가는 사회. 우리는 여전히 살아갈 이유를 찾아야 하지만, 그 이유는 이제 각자의 몫으로 남겨졌다.
철학 모임에서 들었던 한 참가자의 말이 떠오른다.
“죽음을 미루면서, 우리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게 아닐까요?”
이 말은 나를 깊이 생각하게 했다. 우리는 죽음을 미루기 위해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켰고, 의료와 환경을 개선했다. 그 결과, 이전 세대에 비해 훨씬 긴 시간을 살게 되었다. 그러나 그 긴 시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
생존만이 목표였던 시대에서는, 생존 자체가 삶의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생존이 더 이상 목표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이어야 할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현대 사회는 지나치게 자동화되고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하지 않아도 돌아가는 사회, 모든 것이 체계적으로 흘러가는 시스템 속에서, 인간은 오히려 더 고립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떤 의미에서, 생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삶의 동력을 잃게 만들 수도 있다. 예전에는 내가 해야만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하지 않아도, 세상은 잘만 돌아간다. 그것이 정말로 건강한 사회인가?
생존이 보장된 시대에서, 우리는 새로운 삶의 이유를 찾아야 한다. 생존이 목표가 아니게 된 순간, 삶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방향이 어디인지, 우리는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한다.
결국, 내가 철학 서적 모임에서 얻은 결론은 이것이었다. 생존이 보장된 시대는 인간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너는 왜 살아가는가? “라는 질문. 우리는 그 답을 찾기 위해, 어쩌면 더 깊은 혼란 속을 헤매게 될지도 모른다.
삶의 이유를 찾는 일. 그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부여받은 또 다른 생존의 과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