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겨진 마음과 긴 밤

by someformoflove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하루였다. 바쁜 업무를 처리하며 시계를 보지 않고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퇴근 시간이 다가와 있었다. 낮에는 따뜻했던 햇살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창밖에는 하얀 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다들 창문을 보며 저마다의 감탄사를 흘렸고, 동시에 퇴근길이 길어질까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퇴근 안 하세요?”


누군가 물어왔다.

나는 노트북 화면을 보며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더 하고 갈게요. 먼저들 가세요.”


눈 내리는 길 위를 걷는 사람들을 상상하니 이상하게 피곤했다. 이별 후의 퇴근길은 늘 어딘가 공허했다. 퇴근길이 길어질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정작 퇴근 후에 길어질 시간 자체가 더 두려웠다.


예전에는 퇴근 후의 시간이 늘 바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1시간, 길게는 2시간씩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대단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오늘 회사에서 있었던 일, 그녀가 저녁으로 뭘 먹었는지, 그리고 주말에 뭐 하고 싶은지 같은 소소한 대화들. 길게 이어지던 대화 속에서 퇴근길이 얼마나 짧게 느껴졌는지, 그걸 잃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래서 지금의 퇴근길은 길다.


그리고 조용하다.


내게 남은 건 일을 핑계로 삼아 그 공허함을 미뤄두는 것이었다. 잔업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저 더 이상 공허한 시간을 생각하지 않기 위해 붙잡은 억지스러운 구실일 뿐이었다.


잔업을 마치고 회사를 나선 시간은 이미 어둑해진 겨울 저녁이었다. 눈은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도로 위에는 제설차가 지나간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이어폰을 꽂고 가사가 없는 연주곡을 틀었다. 노이즈 캔슬링을 켜자 세상의 소리가 모두 차단되었다. 자동차의 엔진 소리도, 눈 밟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귀에 울리는 멜로디만이 나와 함께했다.

멍하니 걸었다.

퇴근길은 늘 40분 정도 걸린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다. 예전에는 그녀와의 대화로 가득 찼던 시간이었다. 지금은 이어폰 속 음악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걸음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다. 나는 그저 길 위를 걷고 있을 뿐이었다.


집에 도착해 이어폰을 빼는 순간, 세상의 소리가 다시 들어왔다. 그러나 그 소리는 집 안의 적막함에 금세 묻혀버렸다. 무언가 내리누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소파에 몸을 눕혔지만, 이내 불편해서 다시 침대로 향했다.


몸을 뉘인 침대 위에서 천장을 바라봤다. 공기는 차분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온 마음이 구겨지고 무겁게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특별히 슬퍼할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누구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아무 이유 없이 공허함이 마음을 채웠다.


그러나 이런 날들이 이제 익숙하다. 이별 이후로 처음 느꼈던 날것의 감정은 어느새 무뎌졌고, 이렇게 마음이 내려앉는 순간들도 이제는 특별하지 않다. 모든 게 무덤덤해졌다.

눈 내리는 오늘, 별다를 것 없는 하루가 지나간다. 오늘도 나는 그저 그렇게 시간을 채웠다. 그리고 아마 내일도 그럴 것이다. 그렇게 채우다 보면 언젠가는 이 공허함도 덜해지겠지, 그렇게 믿으며 천장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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