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길면 용기가 사라지는 법.”
펜싱 중계를 보다가 해설위원이 던진 이 한마디가 내 머릿속에 깊이 박혔다. 당시에는 “맞아, 맞아” 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지나갔지만, 시간이 지나 문득 그 말이 다시 떠올랐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 삶의 지지부진했던 일들, 실패했던 순간들은 대부분 이 말에 정확히 들어맞았다. 중요한 순간마다 나는 늘 너무 많은 생각을 했다. 그 생각들이 결국 나를 가로막았고, 한 발 내딛는 대신 두 발 물러서게 만들었다.
반대로, 아무런 생각 없이 덜컥 진행한 일들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러니 용기가 사라질 틈조차 없었던 그 무모함이 오히려 내게는 더 나은 결과를 가져다준 셈이다.
예를 들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사진 일도 그렇다. 이 일을 시작할 때 나는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았다. 단순히 “부모님의 가업을 이어서 하지 뭐”라는 생각으로 사진과에 진학했고, 그 선택은 17년 동안이나 이어져 왔다. 준비도 없었고, 특별히 열정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단순한 결정이 내 직업이 되었고,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그런데 정작 내가 진심으로 좋아했던 것들은 대부분 생각이 길어지며 떠나보냈다. 운동을 시작하려던 때가 생각난다. 나는 운동을 진심으로 좋아했지만, “이걸 내가 끝까지 할 수 있을까? 몸을 다치면 어쩌지?” 같은 고민이 꼬리를 물었다. 결국 나는 시작하더라도 얼마 못 가 그만두기 일쑤였다. 좋아했던 것일수록 더 많은 생각이 뒤따랐고, 그 생각들은 늘 내 발목을 잡았다.
첫사랑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내게 늘 따뜻했고, 내가 다가오길 기다려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나는 한 걸음 다가가는 대신, 속으로만 고민했다. “내가 고백하면 혹시 거절당하지 않을까? 관계가 어색해지면 어떡하지?” 그런 망설임 속에서 시간은 흘러갔고, 결국 그녀는 내 곁을 떠나갔다.
과거의 내 선택들을 돌아보면, 해설위원의 말이 더 크게 와닿는다. 그 해설위원은 자신이 용기를 내서 성취를 이룬 사람이다. 그는 높은 자리에 올라갔다가 은퇴했지만, 여전히 자기 삶을 긍정하며 살아간다. 반면 나는 입구에서 망설이다가 “해봤는데 안 되더라”는 핑계만 대며 물러서기를 반복했다.
망설임은 결정을 연기하고, 결국에는 포기를 선택하게 만든다. 고민은 중요하다. 하지만 고민이 길어지면 결국 모든 것이 엉켜버린다. 시도조차 하지 않은 일들에 대한 후회는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이제는 어른이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더는 입구에서 발을 빼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결단이 섰다면, 더 깊이 고민하기 전에 바로 움직이려 한다. 앞으로 실패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패는 적어도 시도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지금껏 안 해서 후회했던 일들이 많다. 첫사랑도, 운동도, 좋아했던 일들도. 그러나 인생의 끝자락에서 또다시 “하지 않았던 일”들을 떠올리며 후회하고 싶지는 않다. 죽기 전에 단 하나라도, 제대로 이뤄내 보고 싶다. 생각이 길면 용기는 사라진다. 이제는, 생각보다 움직임을 먼저 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