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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과 재능, 그 냉혹한 거리

by someformoflove

“노력하면 뭐든지 이룰 수 있다.”

이 말은 어릴 적부터 듣던 흔한 격려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이 얼마나 허약한 신념인지 깨닫게 되었다.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노력은 중요하지만, 재능이라는 벽 앞에서는 종종 무력해진다.


재능과 노력이 충돌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에디슨과 아인슈타인을 떠올려본다.

에디슨은 노력의 아이콘처럼 불린다. 그는 수천 번의 실패 끝에 전구를 발명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순수한 ‘노력’의 결과였을까? 끈질긴 실험을 반복할 수 있었던 그 집중력과 호기심,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는 심리적 회복력—이 모든 것들이 결국은 에디슨이 타고난 재능의 일부였다. 노력 자체가 재능이었던 것이다.


반면 아인슈타인은? 그는 남들보다 덜 노력했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어린 시절, 언어 발달이 느렸고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상대성 이론을 발견한 것은 노력의 산물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남들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그것이 그의 재능이었다. 애초에 그런 사고의 구조를 타고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스포츠로 시선을 돌려보자. 우사인 볼트는 어떨까?

그가 세계 최고의 스프린터가 되기까지 노력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러나 중요한 건, 아무리 누군가가 그의 훈련량을 똑같이 따라 한다 해도 그처럼 빠를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같은 프로그램, 같은 루틴, 같은 식단을 소화해도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볼트의 폭발적인 근력, 유전자적 신체 조건, 경기에서의 압박을 견디는 멘탈—all 이것이 노력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노력이라는 개념 자체도 어쩌면 재능일지 모른다. 꾸준함, 집중력, 성실함—이 모든 것이 훈련의 결과라고 믿고 싶지만, 실제로는 타고나는 경우가 많다. 누구에게는 1시간의 공부가 그대로 1시간일 뿐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1시간이 3시간의 효과를 낸다. 그 차이는 ‘노력의 양’이 아니라 ‘노력의 효율성’에 있다. 마치 우사인 볼트가 10m를 달릴 때 4걸음이면 되는 반면, 누군가는 6걸음이 필요한 것과 같다.


그래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은 절반의 진실이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성공으로 이끌어주지도 않는다. 이는 마치 농사에 비유할 수 있다. 비옥한 땅에 씨앗을 심으면 조금만 가꿔도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다. 하지만 척박한 땅은 아무리 공들여도 제한된 수확만을 허락한다. 문제는 우리가 어떤 땅을 타고났는지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력은 무의미한 걸까?

꼭 그렇진 않다. 노력은 적어도 우리가 가진 재능의 끝을 확인시켜 준다.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어떤 한계에 도달할 수 있는지 알려준다. 그러나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고 믿는 건 환상일 뿐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최대치’를 가지고 태어나며, 노력은 그 최대치에 도달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이 냉혹한 진리를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위로가 될 수 있다. 모든 실패가 나의 부족함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니까. 세상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 그 불공평 속에서 각자 가진 것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 어쩌면 그게 진짜 ‘노력’의 의미일지도 모른다.


결국 노력은 이길 수 있는 싸움에서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주는 도구일 뿐이다.

이길 수 없는 싸움 앞에서는 그저 시간과 에너지만을 소비한다. 그래서 나는 냉정해졌다. 재능이 있는 분야에서는 가볍게 즐기고, 없는 분야에서는 굳이 무리하지 않는다. 어차피 애써도 닿지 않는 곳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경험으로 깨달은 노력과 재능의 거리다. 냉정하지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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