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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와 쿨함의 경계

by someformoflove

나는 본래 진지한 사람이다. 단순히 무거운 분위기를 좋아한다거나, 깊이 있는 대화만을 선호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벼운 말로 대충 넘기는 것보다는, 상대의 감정을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신중하게 말하려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늘 진지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의 이 진지함은 단순한 성격이 아니라, 어떤 태도에 가깝다. 나는 누군가와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는 걸 즐기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와 어쩔 수 없이 대화를 하거나, 관계를 맺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나름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려 한다. 상대의 말을 곱씹고, 그들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한 뒤에야 내 의견을 내놓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니컬한 면이 생겼다. 모든 가능성을 고려하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식의 반응을 자주 보이게 되고, 사람들은 그것을 쿨함이라고 받아들이곤 한다.


하지만 요즘의 ‘쿨함’은 조금 다른 의미로 변질된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쿨함은 상대의 입장을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존중하려는 태도에 가깝다. 그러나 현대의 쿨함은 마치 관계를 쉽게 정리하기 위한 방어막처럼 사용된다. “그건 네 일이잖아. 네 마음대로 해.”, “상관없어, 어차피 다 똑같지 뭐.” 이런 식의 태도가 쿨함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나는 이해하는 척 무심해지는 것이 진짜 쿨함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관계를 단순히 효율적인 것으로 취급하고, 감정의 무게를 최소한으로 줄이려는 태도는 오히려 관계의 본질을 퇴색시킨다. 누군가가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그래, 힘들겠네. 근데 다 그런 거 아니야?”라고 대답하는 것이 쿨함이 아니라, 적어도 “그래, 힘들겠다” 정도의 공감이 포함된 반응이 쿨함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끔 하는 진지한 이야기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오글거린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할 필요 있어? “라며 가볍게 넘기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정말로 생각할 필요가 없는 걸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깊이 이야기하는 것이 왜 가끔은 부끄러운 일이 되는 걸까?


사실, 그들은 불편함을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거운 감정을 마주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피곤하게 느껴지니까. 그래서 감정을 가볍게 던지고, 쉽게 지나가는 법을 택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쿨함을 방패 삼아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쿨함이란 감정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다루는 방식에 관한 문제다. 누군가를 이해할 수 없더라도 함부로 가볍게 여기지는 않는 것, 그것이 진짜 쿨함이 아닐까.


나는 여전히 깊은 대화를 원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가벼운 말로 모든 감정을 넘기고 싶지도 않다. 적어도, 내게 소중한 관계에서는. 감정을 부정하지 않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관계가 조금 더 많아졌으면 한다. 누군가의 진지함이 조롱받지 않는 사회, 그리고 쿨함이 무심함이 아닌 배려로 작용하는 사회.


나는 여전히 진지하고, 여전히 내 방식대로 쿨하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방식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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