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방어기제, 나를 지키는 방식

by someformoflove

나는 방어기제가 심한 사람이다. 이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마치 극복해야 할 결함처럼 여기고 싶지도 않다. 방어기제는 단순히 회피나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방식이 쌓이고 굳어져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결과물에 가깝다. 그러니 나는 그저 나의 모습을 이해하고 싶을 뿐이다. 왜 이런 성향이 형성되었는지, 어떤 경험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그러나 그것을 이해하는 것과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사람들은 흔히 ‘변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때로는 스스로를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바꾼다’는 말이 어쩐지 위태롭게 들린다. 나라는 존재는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의 축적이고, 그 시간이 쌓여 현재의 내가 되었다. 그런데 그걸 단숨에 뜯어고친다면, 나는 여전히 나일 수 있을까?


나는 오래 달려온 자동차와 같다. 수십만 킬로미터를 달려온 차를 두고 ‘새 차로 바꿔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차를 통째로 교체하는 대신, 오일을 채우고 타이어를 교체하고 닳은 부품을 손보면서 계속해서 달려가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느낀다. 아무리 노후된 자동차라도, 그것이 달려온 길과 축적된 흔적을 함부로 지워버릴 수는 없는 것처럼.


방어기제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나를 지키기 위해 자연스럽게 생긴 하나의 시스템이다. 과거의 어느 순간, 나는 예상치 못한 충격을 받았고, 그 경험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을 익혔다. 그게 방어기제다. 그리고 나는 그걸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방어기제를 극복해야 할 장애물처럼 이야기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것을 하나의 생존 방식으로 본다.


물론, 내가 가진 방어기제 때문에 불편함을 겪을 때도 있다. 사람들은 나에게 ‘왜 그렇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느냐’고 묻고, 때로는 ‘너무 선을 긋는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모든 감정을 쉽게 드러내고, 무작정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나 자기만의 속도와 방식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조심스럽게 관계를 형성하고, 한 걸음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더 익숙하다.


내가 방어기제를 갖게 된 이유를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다. 어린 시절부터 조금씩 쌓여온 것들이 있고, 그 과정에서 내가 모르는 사이 굳어진 습관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무조건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바꾸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이해하는 것이니까.


사람들은 흔히 ‘스스로를 바꾸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나를 통째로 바꿀 생각이 없다. 다만, 필요할 때마다 작은 부분을 조율하고,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나를 다듬어갈 뿐이다. 자동차의 엔진을 통째로 교체하는 대신, 부족한 오일을 보충하고 마모된 부품을 점검하며 계속해서 길을 달리는 것처럼.


그러니 나는 방어기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나를 규정하는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방식대로 천천히, 그리고 끝까지 나아가고 싶다. 변화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지금의 나를 유지한 채 조금씩 보완하며 살아가는 것.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은 여전히 나에게 묻는다. “그것도 결국 방어기제 아니야?”

어쩌면 맞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것들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나는 나를 지키면서, 그리고 내 속도를 유지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그게 나의 방식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진지와 쿨함의 경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