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너라는 호수는 처음엔 고요하고 잔잔한 물결로 나를 맞아주었다. 나는 그 위에서 마치 내가 이 모든 것을 소유한 것처럼 느꼈다. 투명한 너의 표면에 내 모습이 비쳤고, 나는 스스로를 우아한 새라고 착각했다. 너는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음과 깊이를 가지고 있었지만, 나는 그저 그 안에서 나만의 세상을 꿈꾸며 헤엄쳤다.
그 호수는 언제나 나를 품어주었지만, 어느 날 문득 너는 사라졌다.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그 평온함은 어느새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너는 나를 위해 그 모든 것을 비워주고, 나를 위해 그토록 고요하게 나를 감싸주고 있었다는 것을. 내가 우아했던 것이 아니라, 너라는 호수 덕분에 내가 그렇게 보였던 것이다.
너 없이 나는 그저 떠다니던 존재였다. 그 넓은 호수 속에서 내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 모든 잔잔함은 너의 품 속에서만 가능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