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by someformoflove

한때는, 정말 한때나마 누군가와의 미래를 떠올려본 적이 있었다.

미래라는 단어를 쉽게 입에 올리지 않게 된 이후로는 거의 없던 일이었고, 그래서 그 기억은 지금도 내 안에서 조금 이질적인 장면처럼 남아 있다. 나는 원래 미래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이었다. 미래는 늘 약속처럼 다가와서는, 결국 지켜지지 않는 방식으로 나를 떠났고, 그 과정을 몇 번 겪고 나자 기대하지 않는 쪽이 훨씬 안전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게 나는 서서히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고, 오늘을 넘기는 일에만 집중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그 사람은 예기치 않은 시점에 찾아왔다.

상황은 그다지 단정하지 않았고, 서로의 삶 역시 안정적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는 그 사실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마치 그 모든 조건들이 지금 이 순간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는 듯이, 우리는 빠르게 서로에게 기울었고, 깊이를 재기 전에 이미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마음을 확인하자마자 모든 것이 급격히 타올랐고, 나는 그 불길 속에서 남김없이 사라져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다시 돌아올 나를 상정하지 않은 선택이었고, 그만큼 나는 그 순간에 전부를 걸고 있었다.


그러나 가까워질수록 드러난 것은, 우리가 같은 방향을 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한 발 더 다가가자, 그 사람은 조심스럽게 물러섰다. 그 물러섬에는 거절이라기보다는 두려움에 가까운 온도가 담겨 있었고, 그제야 나는 내가 보지 않으려 했던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나는 시작을 말하고 있었고, 그 사람은 여전히 현재를 살고 있었다. 나는 새로움을 향해 몸을 던질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그 사람에게는 아직 놓을 수 없는 일상과 책임, 그리고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가 남아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 나는 비로소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모든 걸 덮어버리고 싶었던 마음이 가라앉고, 우리가 얼마나 다른 위치에 서 있었는지가 또렷해졌다. 아마 그래서 우리는 끝내 멀어지지 않았고, 그렇다고 더 가까워지지도 못한 채, 욕심을 버린 관계로 남게 되었을 것이다. 정의하지 않아도 유지되는 거리, 기대하지 않기에 무너지지 않는 형태. 우리는 그렇게, 만날 수는 있지만 소유할 수는 없는 사람이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

그저 그런 사람이 내 삶에 한 번쯤 스쳐 지나갔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하루를 버틸 수 있다. 누군가와 미래를 상상해 본 기억이 있다는 것, 그 기억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사실마저도 지금의 나에게는 이상한 위로가 된다. 끝내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남아 있는 감정처럼.


사실 지금의 나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

목표가 없다는 건 생각보다 불안하기보다, 조용한 상태에 가깝다. 대신 나는 계속해서 작은 목표들만을 바라보며 움직이고 있다. 당장 손에 잡히는 것, 오늘 안에 끝낼 수 있는 것, 내일을 버티기 위한 최소한의 이유들. 종착지가 정해지지 않은 채로 걷는다는 감각은 때로는 막막하지만, 동시에 나를 계속 움직이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때는 이 모든 길의 끝이 너이길 바랐던 적이 있었다.

어디로 흘러가든, 결국은 너에게 닿기를 은근히 기대했던 순간들이 분명히 존재했다. 지금은 그 바람이 많이 흐려졌다. 사라졌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마음 어딘가에 온기가 남아 있고, 남아 있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희미해져 버렸다. 마치 오래된 사진처럼, 윤곽은 남아 있지만 색은 빠져 있는 상태로.


그래서 나는 이제 묻지 않는다.

우리가 무엇이었는지, 어디까지였는지, 혹시 다른 선택이 가능했는지. 대신 그 시절의 나와, 그때의 온도만을 기억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충분해야만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아마도 지금의 이 흐릿함이야말로,

현재의 나에게 가장 정직한 상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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