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할 말 있는데, 이따 통화 가능해?”
그 문자가 도착했을 때, 나는 이미 무언가 결말을 예감하고 있었다. 같은 문장이었지만, 그전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며칠 전부터 그 사람과 나 사이에 묘한 거리감이 생겼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우리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서로에게 열정적이었고, 모든 것이 서로의 중심에 있었다. 일상의 작은 선택조차도 상대를 먼저 떠올리며 행동했고, 그 사랑은 모든 것의 우선순위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중심에서 조금씩 밀려나기 시작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그도 더 이상 서로의 ‘첫 번째’가 아니게 된 것 같았다.
처음에는 사소한 일들이었다. 그가 예전만큼 자주 전화를 하지 않거나, 답장이 느려졌다. 바쁘다는 이유로 미뤄졌던 약속이 쌓였고, 그가 나를 기다리게 했던 순간들이 조금씩 늘어났다. 나는 그때마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바쁠 수도 있지’, ‘그도 자기 삶이 중요할 거야’라고 생각하려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의심이 피어올랐다. 나만큼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이 질문이 점점 더 커져 갔다.
그렇다고 그가 나에게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따뜻했고, 필요할 때는 함께해줬다. 하지만 문제는 그 순간들이 점점 드물어졌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내가 그 사람의 우선순위였다는 것이 느껴졌는데, 이제는 그의 바쁜 일상 속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마치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반드시 먼저 고려해야 할 대상은 아닌 것처럼. 그와 대화를 나눌 때마다 그 간극이 더 커졌다. 말은 부드러웠으나, 그 말 뒤에 담긴 마음은 더 이상 나에게 온전히 닿지 않았다.
나는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항상 그랬다. 그가 나에게 연락해주길, 그가 나를 먼저 찾길. 처음에는 그 기다림마저도 사랑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 그 기다림은 점점 지쳐갔고, 그가 언제나 나를 기다리게 만든다는 사실이 괴로워졌다. 이 관계에서 나는 늘 기다리는 쪽이었고, 그 사람은 언제나 나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듯 보였다. 기다림은 점점 인내가 되었고, 그 인내는 결국 내가 내 자신을 잃어가는 과정이었다.
그는 언제나 자기 삶이 바빴다. 나는 그를 이해하고자 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삶이 중요해지는 순간들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가장 우선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언제나 ‘지금은 내가 먼저’라는 생각으로 행동했다. 나 역시 내 삶을 소중히 여기고 있었지만, 내가 그 관계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불안은 커져만 갔다.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내가 언제나 기다려야 하는 걸까? 그가 나를 더 이상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다면, 나도 내 자신을 지켜야 하지 않을까? 더 이상 그를 기다리면서 상처받는 나 자신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그 사람에게 더 이상 내가 중요하지 않다면,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이 관계를 끝내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때부터 내 마음속에는 우리의 끝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그가 먼저 말했다.
“나 할 말 있는데, 이따 통화 가능해?”
이 말은 처음 그가 고백을 준비할 때 들었던 그 말과 같았다. 그때는 설레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 전화를 기다렸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것은 기대가 아닌 확신이었다. 우리는 이미 서로 멀어지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이 우리의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이미 현실이 되고 있었다.
이별은 한순간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조금씩 멀어지는 마음, 놓쳐버린 기회, 그리고 쌓여가는 불만들이 결국 오늘의 이 순간으로 나를 이끌었다.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사랑이 끝나버린 관계를 붙들고 있는 것이 더 큰 상처를 남길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통화 시간에 맞춰 연락을 걸기로 마음먹었다. 오늘은 내가 먼저 말을 꺼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기다리던 나는 오늘만큼은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통화를 시작하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 사랑은 여기까지인 것 같아.”
그리고 나는 그 말을 통해, 나 자신을 더 이상 기다리게 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