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바다를 찾지 않았다. 아마 마지막으로 바다를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랜 시간이 흘렀을 거다. 일에 치이고,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어느새 바다는 내 기억 속에서 까마득히 잊혀졌다. 언제부턴가 바다는 내게 그저 멀리 있는 풍경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피곤했던 일상에 조금의 여유가 생기고, 나만의 시간이 주어지자 불현듯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바다였다. 그 깊고 광활한 푸름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차를 몰고 바다로 향했다. 오랜만의 바다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차에서 내려 발을 내디뎠을 때, 바다는 여전히 멀리 보였다. 그러나 그 거리감이 주는 감각은 묘했다. 처음에는 그저 넓고, 그 끝이 보이지 않는 푸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점점 그 광활함에 압도되었다. 바람이 불어오고, 파도가 끊임없이 몰아치며 나를 둘러쌌다. 나는 그저 가만히 서서 한참을 바다를 바라봤다. 그 순간,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바다는 나를 끌어당겼고, 나는 그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바다는 당신을 닮았다. 잊고 지낼 때는 정말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다가, 이렇게 다시 마주하게 되면 모든 것이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게 만든다. 오랜만에 그녀를 마주했을 때도 그랬다. 오랫동안 잊고 지내다가도 우연히 그녀의 얼굴을 보게 되면, 아무런 경고도 없이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나는 그녀를 보며 한동안 말을 잃었고,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냥 멍하니 그 자리에 서서 바라보기만 했다.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오롯이 그 순간에 잠식당하는 것처럼.
그녀를 만났던 날들이 떠오른다. 처음부터 그녀는 나에게 바다 같은 존재였다. 쉽게 가질 수 없는, 손에 닿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끌려가는 걸 멈출 수 없었다. 마치 내가 바닷가에 서 있을 때, 밀려오는 파도를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는 나를 더 깊은 곳으로 끌어당겼고, 나는 그 안에 점점 더 빠져들어갔다.
기억 속 어느 날, 나는 그녀와 함께 바다를 바라본 적이 있다. 그때도 바다는 지금처럼 차분하고, 동시에 나를 압도했다. 그날의 나는 그녀 옆에서 바다를 보며 생각했다. ‘이건 가질 수 없는 아름다움이구나.’ 그 말을 그녀에게도 해주고 싶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나는 그저 옆에 서서,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 바다는 닿을 수 없는 그녀를 상징하고 있었다. 그녀는 늘 내 곁에 있었지만, 진정으로 내 것이 아니었다.
내가 그랬듯, 그녀는 종종 나에게서 멀어졌다. 하지만 멀어질 때마다 더욱 선명해졌다. 그녀가 내 곁에 없을 때, 나는 더 강하게 그녀를 원했다. 마치 바다를 오랜 시간 잊고 있다가도, 어느 날 불현듯 다시 바다가 그리워지는 것처럼. 하지만 그런 갈망은 나를 잠식시킬 뿐이었다. 나는 그리움에 몸을 맡기고, 마음속에서 그녀를 다시 그리고, 상상하며 빠져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더 이상 땅을 밟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발밑으로 스며든 바닷물이 어느새 허리까지 차오른 것이다. 나는 여전히 걷고 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서서히 밀려드는 밀물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녀도 그랬다. 나는 그저 그녀와 함께 걷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나는 그녀에게 잠식되고 있었다. 마음의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르던 감정은 어느새 내 안의 모든 것을 덮어버렸다. 그녀와의 거리는 조금씩 가까워졌지만, 그럴수록 나는 바닷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었다.
바다는 그녀였다. 내가 잠시 잊고 있을 때는 까마득하게 잊히지만, 다시 찾아보면 그 순간 내 모든 감각을 압도해 버린다. 마음속에 잠시 묻어두었던 감정들이 그녀를 보는 순간 다시 밀려와 나를 휩쓴다. 그녀는 멀리서 볼 때 더욱 아름답고,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나는 항상 그 깊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몇 번이고 이런 순간을 겪었다. 나는 그녀를 보지 않으려고 했지만, 운명처럼 다시 마주하게 됐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은 격렬하게 요동쳤고, 나는 늘 그녀 앞에서 무기력해졌다. 그 압도적인 감정에 휘말리면서도 도망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도망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결국, 바다처럼 그녀도 나를 가둬두었고, 나는 그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도 문득 그녀가 떠오를 때면, 나는 그 감정에 빠져들곤 한다. 그녀를 마주할 용기가 없었을 때도 있었고, 가끔은 마주한 후 다시 잊히기를 바랐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있었다.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그 존재감. 바다처럼, 가끔은 밀려오는 감정에 휘말리면서도 나는 그 자리에 서 있다.
그녀와 나는 마치 바다와 해변처럼, 서로 닿을 듯 닿지 않는 거리에서 서성인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나는 계속해서 잠기고, 또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