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낙담할 필요는 없다.
한때 내 곁에 머물던 것들이, 영원할 것처럼 느껴졌던 순간들이 하나둘 사라져 갔다. 그때는 그 사라짐이 두려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사라진다는 것은 그저 자연스러운 흐름일 뿐, 그 끝이 반드시 상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많은 것들이 떠나가고, 그 빈자리는 어느새 새로운 모습으로 채워지곤 했다. 그 흐름 속에서 나는 살아져 갔다.
우리는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으려 애쓰지만, 그 애씀마저도 결국 사라져 간다. 떠나는 것들이 무언가를 남기고 간다 해도, 그것들조차 언젠가는 희미해진다. 마치 바람에 날리는 낙엽처럼, 처음엔 잎사귀 하나가 떨어질 때마다 그 상실이 크고 선명하게 느껴졌지만, 이제는 그 낙엽이 떨어지는 모습을 무심히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저 자연스러운 일일 뿐이니까.
사라져 간다는 것은 단순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를 지나치고, 흐름 속에 흔적을 남긴 채 서서히 물러난다. 그리고 나는 그 안에서 살아져 간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시간의 흐름 속에 몸을 맡기고 그렇게 또 하루를 지나간다. 마치 강물이 흐르는 대로 흘러가는 나뭇잎처럼, 나는 그 흐름에 순응하며 살아져 갔다.
이렇게 많은 것들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 살아져 가는 과정 속에서,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남았는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워졌다. 손에 쥐고 있던 것이 빠져나가고, 마음속에 있던 것이 희미해질 때마다, 그 빈 공간은 자연스럽게 채워지거나 그저 그대로 남겨졌다. 내가 그 자리를 채우려 하지 않아도, 세상은 흘러가고 나는 그 속에서 조금씩 살아져 갔다.
사라짐은 마치 바다의 물결과도 같다. 파도가 밀려와 나를 덮고, 이내 다시 물러가면서 그 자리를 비워두지만, 그 자리가 허전하지는 않다. 물결이 지나간 자리에는 고요함이 남아 있고, 그 고요함 속에서 나는 그저 살아갈 뿐이다. 때로는 그 고요함이 더 큰 위안이 된다. 무엇을 잃었는지, 무엇이 떠나갔는지에 집중하기보다는, 남겨진 자리의 여유를 느끼게 된다. 그렇게 나는 떠나가는 것들에 대해 더 이상 낙담하지 않는다.
사라져 간다는 것은 곧 살아져 간다는 것과 같다. 잃는다는 감각과 함께 나는 그 속에서 조용히 살아간다. 무언가를 억지로 붙잡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라지는 것이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아픔조차도 지나가고, 나는 그 흐름 속에서 또 하루를 살아가게 된다.
무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사라져 가는 모든 것들 앞에서, 나는 이제 예전처럼 애써 붙잡지 않는다. 사라짐은 곧 지나가는 것이며, 그 안에서 나는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간다. 모든 것이 그렇게 흘러가듯, 나 역시 그 흐름 속에서 살아져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