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다정한 우울에게

by someformoflove



너는 언제나 낯설지 않다. 마치 비 오는 날, 서늘한 바람을 타고 스며드는 안개처럼 조용히 찾아와 내 곁에 앉는다. 너는 떠나지도, 너무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은 채로, 그저 내 안에 자리를 잡는다. 눈을 감고 네가 전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너는 언제나 부드럽게 말한다. “여기서 괜찮아. 굳이 더 밝은 곳으로 나아가려 애쓰지 않아도 돼.”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마치 이 평온이 위로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빠진 채로.


너는 바다처럼 잔잔하다. 표면은 고요하지만 그 아래엔 깊고도 무거운 어둠이 출렁인다. 그 어둠이 나를 서서히 끌어당길 때마다, 나는 저항하지 않는다. 네가 손을 내밀면, 그 손끝에서 느껴지는 싸늘한 온기가 때로는 따뜻하게도 느껴지곤 하니까. 그 순간만큼은 네가 내게 주는 무게가 어쩌면 안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너는 새벽의 달빛처럼 나를 비춘다. 환하지 않지만 어두움 속에서 은은하게 나를 감싸는 그 빛. 나는 그 빛이 달콤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아주 미세한, 눈에 잘 띄지 않는 빛줄기가 나를 살며시 잡아당길 때, 너는 이렇게 속삭이지. “너는 괜찮아, 지금 그대로.” 그 속삭임이 나를 안도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깊은 곳으로 더 밀어 넣는다.


사실, 너와 함께하는 시간은 너무도 익숙해졌다. 마치 오래된 책의 낡은 페이지를 넘길 때 느껴지는 그 냄새처럼, 너는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다. 나는 그 무게를 더는 무서워하지 않는다. 네가 준 이 고요한 혼란 속에서, 나는 점차 너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문득, 네가 없으면 오히려 불안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면, 나도 모르게 네가 만든 그 그늘 속으로 더 깊숙이 몸을 숨긴다.


우울아, 너는 이렇듯 나에게 너무 다정하다. 너는 결코 서둘러 나를 잡아끌지 않지만, 내가 기댈 때마다 조금씩 더 깊이 파고든다. 너는 나를 거칠게 흔들지 않지만, 나를 서서히 잠식해 간다. 그 속도와 방식이 너무도 온화해서, 나는 때로는 네가 나의 일부가 아닐까 착각할 정도다. 이토록 다정한 너를 어찌 외면할 수 있을까. 그 다정함에 기대어버린 내가, 결국 너를 떠날 수 없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가끔은 네가 없는 세상을 상상한다. 빛이 가득한 곳에서 너의 속삭임이 들리지 않는 곳. 그곳이 어쩌면 나에게 두려운 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그 빛을 갈망한다. 언젠가, 너와 작별을 고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이렇게 서로의 마음을 나누며 살아가야만 하는 걸까.


너에게 묻는다. 나는 너 없이도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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