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혼자 있는 걸 좋아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혼자 있는 게 세상에서 가장 편했다. 혼자일 때는 나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됐고, 누구에게 평가받거나 기대에 부응해야 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사진을 선택한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카메라를 손에 쥐고 세상의 단면을 담아내는 순간만큼은 온전히 나만의 세계에 몰입할 수 있었으니까. 그 시간들은 나를 깊이 이해하게 해 주었고, 세상을 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해 주었다.
사진가로서 경력을 쌓아가면서 나는 나름대로 내 길을 걸어왔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혼자 있는 시간이 가장 소중했다. 스튜디오에서 홀로 작업을 하거나, 혼자만의 공간에서 사진을 편집하는 그 순간들이야말로 내게 진짜 자유를 선물해 줬다. 경력은 쌓였고, 나이에 비해 꽤 괜찮은 포트폴리오도 손에 쥐게 됐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인정하고, 내 사진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나는 늘 내 사진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내 기준은 항상 높았고, 그 기준에 맞추려는 내 노력은 끝이 없었다. 나는 완벽한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내 사진은 언제나 조금씩 아쉬웠다. 그래서 계속해서 더 나은 걸 추구하고, 그 과정 속에서 나 자신을 연마해 갔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서야 나는 처음으로 회사라는 곳에 발을 들였다.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한 팀으로 움직이는 건 내게 전혀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사진가로서의 경력이 있었기에 사람들은 나를 높게 평가했지만, 사실 나는 그 기대를 버겁게 느꼈다. 내가 생각하는 내 작업은 아직도 많이 부족했고, 완벽을 추구하는 내 기준에 비하면 갈 길이 멀었으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몰랐다. 그들은 내가 이미 완성된 사람처럼 대했고,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은 점점 나를 짓눌렀다.
처음에는 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회사는 그저 내 사진을 찍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회사에서 중요한 건 단지 일의 성과가 아니었다.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그들의 마음을 얻는지가 더 중요했다. 그건 나에게 생소한 영역이었다. 나는 늘 혼자 일해왔고, 내 사진으로 나 자신을 표현하는 법만 배웠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사람들과의 소통, 공감, 그리고 그들의 기대를 읽어내는 것이 중요했다. 그건 처음 해보는 일이었고, 나는 그 과정 속에서 자꾸만 위축되었다.
처음으로 사회라는 곳에서 맞닥뜨린 현실은 나를 작고 무력하게 만들었다. 남들은 나를 대단한 사람으로 봤지만, 정작 나는 그들과의 교류 속에서 내가 틀린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사회에 부적응한 미성숙한 사람처럼 느껴졌고, 그들이 바라는 ‘사회적인 사람’이 되지 못하는 내 자신을 자책했다. 스스로 내면에서 갈등이 커졌고, 매일매일이 전쟁 같았다. 나는 나 자신이 잘못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깨달았다. 사회 속에서 다르게 느끼는 내가 틀린 게 아니라는 것을. 몇 년이 지나며 나를 견고하게 만든 건 내가 사회에 맞추기 위해 나를 억누른 것이 아니라, 내 본연의 목소리를 지키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 덕분이었다. 나와 다른 사람들, 나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그들 사이에서 나는 내 목소리를 낼 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웠지만, 이제는 그 다름이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관계를 맺는 건 힘들고 버겁지만, 내가 선택한 이 길에서 나만의 목소리를 내며 살아가는 건 여전히 중요하다. 남들이 내게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말해도, 나는 그 다름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 한다. 결국, 나를 지키는 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내가 만들어온 세상에서 내 목소리를 내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