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센 강을 가로지르는 여러 개의 다리 중 ‘예술가의 다리’ 위에 한 젊은 거지가 앉아있었다.
그는 언제부턴가 그곳에 자리를 잡고 매일 그 앞을 지나가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관광객들이라도 한번 쓸고 지나가면 그의 주머니는 수입이 꽤 좋았으므로 그곳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지육신도 멀쩡했으나 편하게 한나절만 앉아있으면 하루 동안 먹을거리 마련할 돈은 충분히 벌 수 있었으므로 힘들여 다른 일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수입이 충분치 않더라도 좀 덜먹거나 까짓 한 끼 정도는 얼마든지 굶을 용의도 있었던 것이다.
그 젊은 거지 앞을 지나쳐 날마다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인쇄소를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항상 책을 들고 다니며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읽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강변의 양지바른 자리에 앉아 사람들의 동정을 구걸하는 젊은 거지를 보다 못한 남자가 어느 날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거지는 그가 동전이라도 던져주려는 줄 알고 미소를 지으며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남자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선채 아무 말이 없었다. 거지는 이상한 생각에 퉁명스레 물었다.
“왜 그러고 있습니까? 주기 싫으면 얼른 갈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잖습니까?”
젊은 거지는 그 남자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적선을 받지 못하게 될까봐 걱정스러웠다. 그때 남자가 들고 있던 책을 건네며 말했다.
“이 책을 주고 싶은데… 책 속에 길이 있소이다…”
그리고는 자리를 떴다.
“쳇, 먹을 수도 없는 걸...낮잠 잘 때나 필요하겠네....”
거지는 책을 받아들고 불만스럽게 내뱉었다.
다음날, 그 다음날도 인쇄소를 운영하는 남자는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거지에게 책을 한 권씩 건네주기 시작했다.
처음엔 낮잠 베개로나 책을 활용하던 거지가 어느 날 우연히 책장을 넘겨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거지는 책 읽기에 빠져들었다. 어느덧 커다란 상자 가득 책이 쌓이자 그는 그것을 들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젊은 거지는 그 자리에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10여년 뒤, 지방으로 출장을 갔던 인쇄소 사장은 지나던 길에 무심코 눈에 띄는 서점으로 들어갔다. 천천히 서가를 둘러보고 있을 때 서점 주인이 머뭇거리며 다가와 긴가민가하며 입을 열었다.
“저… 혹시 10여 년 전쯤… 파리 ‘예술가의 다리’ 위에 살던 젊은 거지를 기억하시겠습니까? 그때, 제게 책을 주셨던 분… 맞지요?! 그때 제게 돈이 아닌 책을 준 사람은 선생님뿐이었습니다…”
“아…그래요? 그랬나요, 내가…? 그렇군요...?!”
“네. 덕분에 지금은 이렇게 서점을 운영하며 살고 있습니다. 늘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이 있다.
그 길을 찾고 못 찾고는 책을 대하는 이의 자세에 달렸다.
모두 같은 책을 읽어도
어떤 이에게는 아무런 감동이 없을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마법의 열쇠와 같은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책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