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무의미한 연명치료
그러나 어느덧 나 역시 50대에 이르고 보니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 만큼 아름답고 의미 있게 생을 마무리하는 것에 관심이 생기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언제부턴가 혼자 살던 노인들이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고도 한두 달 혹은 몇 년 후에야 참혹한 상태로 발견되는 뉴스를 종종 보게 되면서, 내가 열렬히 살고자 하는 만큼 죽음의 시점조차도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기를 진지하게 바라게 되었다.
안락사라든가 존엄사에 대한 논의가 물론 어제오늘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이미 서구에서는 존엄사를 선택하고 스스로 죽을 때를 결정하는 것이 합법적으로 용인되는 나라들이 늘어나고 있다.
안락사는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불치의 환자에 대하여 본인이나 가족의 요구에 따라 고통이 적은 방법으로 인위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 약물 투여 등 좀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생명을 단축시키는 것이다. 안락사를 두고 살인 혹은 살인 방조죄를 적용할 수 있어 위법성에 관한 법적 문제가 아직 논란이다.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안락사가 합법화되었으며 미국 오리건주와 오스트레일리아 노던준주 다윈은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고 콜롬비아와 스위스에서는 묵인하고 있다.
존엄사는 의사가 환자의 동의 없이 치료행위를 할 수 없다는 것으로 소극적 안락사로도 불린다. 지난 1975년 미국에서 식물인간인 20대 여성 칼렌 앤 퀸런의 부모가 인공호흡기를 제거해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해달라고 재판부에 소송을 내고 78년 뉴저지주 재판부가 이를 승인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미국의 50개 주에서는 생전 유언에 따라 치료를 받지 않을 수 있게 하는 법률이 제정됐으며, 유럽과 일본에서도 존엄사를 인정하고 있다.
마침내 대한민국에서도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을 선택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었다. 그리고 시범사업기간을 통해 2018년 2월 4일부터는 연명치료 중단으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존엄사가 합법적으로 허용이 되기에 이른 것이다. 지난 3개월 동안의 연명의료 결정 제도 시범사업 기간에 임종기에 이른 환자 54명이 실제로 연명 의료를 유보, 중단하였고 그 가운데 47명이 사망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의향서 작성의 의미이다.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는
죽음을 앞둔 시기에 무의미할 수도 있는 의학적 처치를
계속할 것인가 아닌가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지,
단순히 생을 일찍 마감하고자
죽음을 앞당기도록 해주는 제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대한민국은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아이들은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서 나이 든 사람들만 오래오래 살아남는 사회.
2026년이면 우리나라도 초고령사회에 들어서게 된다.
그러고 보니 뜻하지 않게 나 역시 초고령사회에 일조하는 세대가 되어있는 현실이 당혹스럽기도 하다.
나로 말하자면, 20대 중반부터 열심히 운동을 해오고 있으며 가능하면 몸에 덜 해로운 식품을 먹으려 노력하며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고 애쓰고 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그만두어야 할 때를 아는 것 역시 쉽지 않으니,
그때 가서 실제로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현재의 나는 생의 막바지에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할 생각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가까운 이들이 내 생의 마지막 지점에 함께 해준다면, 나는 그들에게 진작부터 일러두고 싶다.
의미 있는 정도를 넘어, 단지 생명을 연장하는데 의의를 두려는 연명치료는 지금도 미래의 그 어느 마지막 시점에도 원치 않으며 남은 시간을 인정하고 최소한으로 고통을 줄이는 정도 이상의 적극적이고 무의미한 조치를 하지 말아달라고.
그러기 위해 나는 오늘을 포함한 현재의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며 후회 남지 않을 시간들로 채우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빠른 시일 내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미리 작성할 생각이다.
나는 이미 15-6년 전쯤 장기기증에도 서약했으니,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그만두고 기꺼이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죽음을 맞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