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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Mar 14. 2018

첼로를 포기하다!!

나의 첼로 레슨 일기_마지막!

20180312

네 번째 첼로 레슨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오늘 첼로를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아직 두번의 레슨 시간이 남아 있음에도, 이렇게 빨리 그만두기로 결심했던 적이 있던가... 하는 생각, 호기롭게 시작할 때가 엊그제인데 너무 서둘러 기권하다니 좀 쪽팔리다는 생각, 좀 더 매달려 보면 되지 않을까 하는 미련... 등등으로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물론 오늘의 수업도 재미있었다. 박자에 따라 활을 나누어 쓰는 법을 배웠고 활 잡기 연습도 이어졌다.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이렇게 저렇게 따라 해 보는 어느 순간, 문득 머릿속으로 이런 생각이 스치듯 떠올랐다.


'나 지금 즐겁나?'


새로운 것을 하나씩 배울 때 힘들어도 그와더불어 한 가지씩 해내고 있다는 성취감과 쾌감이 뒤따라야 한다. 새로운 도전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동력이 바로 성취감과 쾌감이다. 그런데 4주 차까지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기대와 흥분감은 충만하지만 성취감과 쾌감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전, 9년 전 즈음  플루트를 처음 배울 때와 비교해보면 확실히 비교가 된다. 그 당시는 음 하나하나를 새로 익히는 즐거움도 컸고 점점 어려운 단계로 나아가고 그것을 극복할 때의 성취감과 기쁨을 동력으로 레슨을 이어갔다. 물론 나는 음악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악기라고는 피아노도 배워본 적 없을뿐더러 심지어 박치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플루트를 즐겁게 익히고 지금까지도 이어가고 있다.

그렇게 즐거운 악기를 놔두고 갑자기 웬 첼로 배우기에 도전했느냐고? 그러게 말이다...

실은 전문 연주자가 아니다 보니 연습시간도 부족하기도 하지만, 연주 실력에 어느 정도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라는 점이 솔직한 변명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슬럼프에 빠져 플루트가 보기 싫기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케스트라 단원이니 그냥 주 1회 가방만 들고 왔다 갔다 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그럼 그냥 그만두어버릴까 하다가 현악기는 좀 더 쉬울까 싶어 마음을 울리는 소리도 근사한 첼로를 한번 배워보기로 한 것이다. 물론 그런 결심을 실행에 옮기기까지도 이미 오래 걸렸고 비로소 개인 레슨이냐 학원 레슨이냐 고민하다 우선 학원에서 배워보기로 선택하고 등록을 하기까지도 고민시간이 있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오랜 숙고 끝에 해보지 않고 포기해버리면 이후로도 미련이 남을 것 같아 실제로 배워보기로 했던 것이다. 그리고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째 레슨을 받을 때에야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나는 즐겁기 위해 악기를 배우고 연주하고 오케스트라 활동도 하는데, 힘들고 어려워도 즐겁지 않다면 이것은 내 몫이 아닌 것이다. 그래, 그래서 나는 오늘, 선생님의 열정적인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그만두기로 결심한 것이다.


포기한다고 말하기는 참 힘들다. 그러나 말하기 부끄럽다는 이유로 마지못해 시간을 끌 일은 아닌 것 같다.


병이다. 그냥 좀 가만히 있지 않고 무언가 자꾸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려는 시도를 하는 병. 첼로 포기 선언과 동시에 머릿속은 또 무엇을 새로이 시작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분주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첼로 배우기를 포기한 지금, 나는 그냥 홀가분하다.

도전해보았으니 미련도 없고, 내 능력으로는 결코 즐겁게 배우기 어렵다는 점을 깨달았으니 그만두는 것에 아쉬움도 없다. 플루트는 앞으로 시들었던 열의를 되살려 좀더 달려보기로 하고...

또 이제 나는 무언가 새로운, 즐거운, 나만의 놀이 혹은 의미를 찾을게 틀림없다. 아마도 이 병은 좀 더 늙어 기운이 빠질 때까지는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느덧 스스로에게 이렇게 중얼거린다.


"인생 뭐있어? 즐거운 일을 찾아!"


그러고 보니, 나 아직 좀 철부지인 듯...ㅋㅋ


somehow@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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