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자, 흉악범에게도 인권을?

by somehow


몇 개월 전, 2학년 여고생 K는 친구의 생일에 초대받아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성폭행을 당했다. 늦은 밤 지름길로 가려고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들어섰다가 그만 범죄자에게 붙들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 후 정신적·신체적 충격을 견디지 못해 학업마저 중단하게 된K 사건은 친구들에게도 적잖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다행히 범인이 붙잡혀 사건은 곧 해결되었다.

알고보니 40대의 범인은 전에도 성범죄를 세 번이나 저지른 상습범이었다. 그는 K를 상대로 범행을 저지르기 불과 한 달 전 감옥에서 나왔으며, 수중에 돈이 없어 하루 종일 거리를 배회하며 돌아다니던 중 또다시 그런 짓을 되풀이한 것이다.

<몇 번씩이나 성범죄를 저지르고 형을 살았음에도 사회에 복귀한지 겨우 한 달 만에 같은 범죄를 되풀이했다는 것은 재활 의지가 희박할 뿐 아니라 스스로의 충동을 자제할 의지가 매우 박약한 것으로생각된다. … 피고에게 징역 12년에 전자발찌 10년을 선고한다.>

재판 결과가 알려지자 K의 학교 친구들은 어느 날 학급 회의 시간에 그것을 주제로 뜨거운 논쟁을 벌였다.

“난 그 범인한테 내려진 벌이 너무 약하다고 생각해! K와 우리는이제 겨우 열일곱 살의 피어나는 새싹인데, 그 못된 짓으로 미래의 꿈과 희망을 무참히 짓밟은 거나 마찬가지니까. 왜 좀 더 가혹한 처벌을 내리지 않는지 궁금해. 너희는 그렇게 생각지 않니?”

중학교 때부터 K의 절친한 친구인 은영이가 화를 못 참겠다는 듯 말했다.

“맞아! 벌써 세 번이나 같은 전과가 있는 사람을 겨우 12년 동안 감옥에 가둔다고 새로운 사람이 되는 건 아니잖아! 그리고 그런 범죄는 재발 확률이 높다고 하던데, 12년 후 감옥에서 나왔을 때 전자발찌를 채운다고 한들 어떻게 믿겠어? 얼마 전에는 전자발찌를 차고도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있었잖아? 전자발찌가 심리적 압박을 줄지는 몰라도 행위를 제어하는 데는 아무 효력도 없는 게 아닐까?”

경민이가 은영이에게 동조하며 말하자, 우진이는 그와 반대되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런데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처럼
그 사람 자체를 증오의 대상으로 삼으면 안 되는 거 아닐까?
그 사람의 전과가 무엇이든 그에 대한 죗값은 치렀잖아.
그리고 이번에도 12년 동안 죗값을 치를 텐데,
그러고 나서도 10년 동안 다시 전자발찌를 차게 하는건 이중 처벌이 되잖아?
그 사람한테도 인권이 있잖아.
요즘은 인권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그게 인권침해라는 말도 있어.
그러니까 한 20년 감옥에 가두든지 전자발찌만 20년을 차게 하든지
둘중 하나만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인권 좋아하네! 남의 인권을 짓밟은 짐승한테 인권을 챙겨주잔 말이야? 그 자가 한 짓은 그냥 돈을 빼앗거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은 게 아니야!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친 거라고.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겠지, ‘K야, 괜찮아. 네 잘못 아니니까 죄책감도 수치심도 갖지 마. 넌 아무 잘못 없어. 얼른 잊어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면 돼!’ 하지만 한번 일어난 일은 절대 잊어버릴 수도 없었던 일도 될 수 없어. 내 사촌 K의 무너진 삶은 누가 책임질 건데? 그깟 전자발찌나 고작 십 몇 년의 수형 생활로 보상될 것 같아? 그놈은 K의 영혼을 파괴했어. K는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그놈도 사형시켜야 해!”


K의 사촌이기도 한 지혜가 열변을 토하자 다른 친구들은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친구들끼리 갑론을박해도 기존의 제도를 변화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친구들은 그걸 알면서도 아직 힘없고 약한청소년을 대상으로 저지른 잔인한 범죄에 분개하며, 사회적으로 어떤 징벌이 가장 효율적이고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방안인지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사건이 종료되고 몇 년이 흐르는 동안 K는 겉으로는 평범해 보였으나 마음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K는 끝내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고 대인기피증에 시달렸다. 정신과 치료를 받아보았지만 성폭행 후유증은 지속되었다. 가족들 또한 기쁨과 희망을 잃은 채 그림자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가끔 뉴스에서 성범죄 처벌 수위에 대한 내용이 나올 때면 참담한 심정을 억눌러야만 했다.




우리나라는 2008년 9월부터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전자발찌제도를 시행했다. 이는 상습 성폭력 범죄자들의 높은 재범률을 감안한 제도다. 성폭력 범죄자 가운데 54%가 다시 범죄를 저지르며, 그중15%는 또다시 성범죄를 저지른다는 통계가 있다. 성범죄 재범자들중 1년 내 재범률은 39%, 3년 내 재범률은 67%에 이른다고 한다. 특히 피해자의 대부분이 아동과 여성, 장애인 등 연약한 대상이라는 것이 문제다.

이중처벌과 인권침해 등의 논란 속에서도 이 제도를 운용하는 이유는 사실상 한 인간을 죽이는 잔인무도한 범죄가 바로 성범죄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권리와 인권을 중시하는 나라 미국에서도 전자발찌제도가 44개 주에서 실시되고 있는데, 성범죄자의 재범률을 낮추는 효과가 크다고 한다.


그렇다면 제도가 시행된 이후 발찌를 착용하게 된 범죄자들에게서 실제로 효과가 나타나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제도가 시행된 지 불과 1년 사이에 발찌를 끊고 달아나는 사건이 5건 이상 발생했다. 전자발찌를 부착한 500여 명 가운데 장치를 훼손하고 도주를 꾀한 이들은 대부분 곧바로 붙잡혔지만, 그중에는 치밀하게 사전 계획을 세운 뒤 발찌를 끊고 달아난 경우도 있었다. 발찌만 채우면 안심할 수있으리라 생각했던 사람들은 인파 속으로 숨어버린 성범죄자가 다시 잡힐 때까지 불안에 떨어야 했다.


결국 전자발찌는 만능이 아니며 치밀한 감시망이 작동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전자발찌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인권침해 논란을 제기한다. GPS를 통해 24시간 수집되는 가해자의 위치 정보가 남용될 경우 인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중처벌에 대한 우려는 물론 성범죄재발 억제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제도 유지를 위해 적잖은 비용이 들어 세금이 소모된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성범죄자는 자신의 성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질병에 걸린 정신질환자일 확률이 높다. 그들이 죗값을 치르고 감옥에서 나오면 얼마후 또 같은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높다는 사실이 이 점을 뒷받침한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도 떨어지므로 죄책감도 별로 느끼지 않은 범죄자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하고 도덕적인가.


인간의 도리나 윤리 의식을 대입하려면 그것이 사회정의의 실현을 위해 얼마나 바람직한가를 따져보아야 하지 않을까. 인간에게는 인권이 있으니 어떤 경우에도 무조건 보장해야 한다는 논리는 과연 보편적 정의에 바탕을 둔 것인지 고민해보자.

가족 구성원이 불행하게 성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 그 가족은 모두 심각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범법자의 인권보다 중요한 것은 제2의 피해자를 보호하는 일이다.
범죄자의 인권이 중요하다고 외치기 전에 되돌아봐야 할 것은 일생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의 인권이 아닐까. 그런데도 범죄자의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할까, 아니면 현실적으로 전자발찌제도를 보완해 계속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까. 무엇이 정의로운 선택인지 고민해보자.





_201108다시읽기*청소년을 위한 정의의 올바른 이해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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