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동물원 폐지, 동물공연 금지를 소망하며
선희네는 간만에 서울 근교의 가족 공원으로 나들이를 갔다.
다섯 살된 은별이를 데리고 친정을 찾은 언니와 어머니, 선희까지 네 사람은 모처럼 간 공원에서 상쾌한 기분을 맛보았다. 놀이공원과 수목원, 자연동물원까지 갖춘 공원은 곱고 화려한 꽃이 만발한 데다 많은 동물들을 자연 상태와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림책에서나 보던 동물들을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보게 된 어린 조카는 신이 나서 커다란 눈망울을 초롱초롱 빛내며 사방을 두리번거리기 바빴다.
“정말 오랜만에 와본다. 나도 5학년 때 왔었는데…….”
선희도 3~4년 만의 가족 공원 나들이에 감회가 새로웠다.
한참 동안 드넓은 공원을 돌며 놀이기구도 타고 맛난 간식도 먹은 선희네는 동물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우리, 원숭이 학교 공연 보러 갈까? 저쪽에 있다던데.”
은별이 엄마가 가족들에게 동물 쇼를 보러 가자고 제안했다.
“좋아!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원숭이를 보러 갑시다!”
선희가 조카 은별이보다 들떠서 앞장섰다.
공연장은 반원형 계단식으로 좌석이 마련된 노천극장이었는데, 공연이 펼쳐지는 무대 뒤쪽에 연습장과 대기실 등이 있는 간이 건물이 이어져 있었다. 마침 원숭이들의 학교 생활 모습을 연출하는 공연이 시작되고 있었다.
목줄을 맨 작은 원숭이들이 교복을 맞춰 입고 각 조련사의 손에 이끌려 무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원숭이들이 일렬로 서서 사람들이 가득 찬 객석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자 객석에서는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와, 원숭이가 인사를 하네?”
정말 귀엽다!”
“진짜 사람 같아.”
아이들은 신이 나서 박수를 쳤다. 곧이어 뒤쪽에 늘어선 책상으로 가서 제자리에 앉은 원숭이들은 잠시 후, 선생님이 차례로 이름을 부르자 손을 들고 대답하듯 순서대로 일어나는 몸짓을 했다.
모든 행동이 정확하고 일사불란했다.
그때 갑자기 선희의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맛좋은 간식을 너무 많이 먹은 모양이었다.
선희는 서둘러 객석을 빠져나와 화장실을 찾아 두리번거렸지만 얼른 눈에 띄지 않았다. 이리저리 찾아 헤매던 중 우연히 무대 뒤쪽까지 가게 되었다.
문이 열려 있어 혹시 화장실이 있나 하고 기웃거리는데 큰 소리가 들려왔다.
“이 새끼, 똑바로 못해? 에잇!”
거친 남자의 목소리에 이어 날카롭게 바람을 가르는 채찍 소리가들렸고, 고통스러운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동물의 울음소리 같았다. 그 순간 선희는 가슴이 철렁했다.
선희는 돌아가려던 걸음을 멈추고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살며시 다가가보았다. 어둑어둑한 실내 우리에갇힌 어린 원숭이들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숨죽인 채 웅크리고 있었다.
소리가 들리는 쪽을 보니 채찍을 들고 선 조련사의 뒷모습과 쇠사슬에 목이 묶인 채 벌벌 떠는 원숭이가 보였다. 원숭이는 깔끔한 의상을 갖춰 입고 있었다.
“왜 갑자기 말을 안 들어? 이렇게 하면 앞으로 나가서 모자를 벗고 인사한 다음, 한 바퀴 공중제비를 돌라고 했잖아. 왜 안 해!”
원숭이는 방금 공연을 하러 나갔다가 배운 대로 하지 않아 그냥 들어온 모양이었다.
공연을 망쳐버린 담당 조련사는 몹시 화가 나서 목줄을 잡아 이리저리 당겼다 놓았다 휘저으며 원숭이의 몸이 허공에서 재주를 넘게 해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아마 원숭이가 갑자기 말을 듣지 않는 듯했다.
이미 공연을 망쳤지만 몇 시간 뒤에 다시 하는 공연을 위해 어떻게든 훈련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조련사는 답답하고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원숭이는 이미 잔뜩 겁에 질린 데다 의욕도 없어 보였다.
마침내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한 조련사가 성질을 부리며 목줄을 힘껏 당겨 내동댕이쳤다. 그러자 원숭이는 그대로 바닥에 몸을 심하게 부딪치며 다시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를 들은 다른 조련사가 다가와서 물었다.
“왜 그래? 말 안 듣냐?”
“아, 안 되겠어요. 이 녀석, 제 새끼가 걱정되는지 도무지 말을 안 들어요. 어쩌죠?”
“일단 놔뒀다가 공연 끝나고 족쳐. 새끼들이 잔머리만 굴리고 말을 안 듣는다니까!”
그 틈에 놓여난 원숭이는 절룩거리며 황급히 자기 우리로 뛰어들었다. 그곳에 있던 작고 어린 새끼가 어미 품으로 얼른 안겨들었다.
선희는 그 상황을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어린 새끼 때문에 마음이 놓이지 않아 제대로 훈련을 못하는 원숭이를 그렇게 무자비하게 다루다니……
한 치도 틀림없이 척척 배운 대로 해내는 많은 원숭이들이 무대 위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을지 그제야 짐작이 갔다.
볼거리가 많지 않았던 30~40년 전만 해도 서커스단의 공연은 큰 볼거리였다.
명절이면 해외 유명 서커스단의 공연 장면을 텔레비전으로 볼 기회도 종종 있었다. 사람들의 재주도 멋지지만 특히 서커스에서 흥미를 끄는 것은 덩치가 큰 동물들이 온순하게 사람의 명령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며 쇼를 하는 장면이었다.
이를테면 곰에게 권투 장갑을 끼워주고 서로 권투하는 몸짓을 하게 하거나 몸무게가 수백 킬로그램 나가는 육중한 체구의 코끼리가 달랑 한 발로 제 몸을 떠받들고 물구나무서는 장면, 침팬지들이 자전거를 타거나 굴렁쇠를 돌리고 재주를 넘는 장면 같은 것들이다.
그 시절에는 어떻게 말 못하는 짐승이 저렇게 사람처럼 재주를 부리나싶어 모두 감탄하곤 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서커스가 쇠퇴하자 동물원 같은 한정된 장소에서 물개나 원숭이, 돌고래, 코끼리, 조랑말 등의 쇼가 이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여전히 멋진 쇼에 감탄하며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 쇼에 성공할 때마다 보상으로 맛난 먹이를 먹을 테니 동물들에게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아무 동물이나 쇼가 가능한 게 아니다. 원숭이나 돌고래처럼 어느 정도 지능이 있어야 훈련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동물들이 무대에 나와 완벽한 공연을 펼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고통을 견뎌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결과가 좋으면 과정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일까.
그런데 미디어의 발달에 따라 그 멋진 무대 뒤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려지기 시작했다.
동물들에게 공연에 필요한 행동을 훈련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이 필요할까.
말이 통한다면 간단하겠지만 불행히도 그들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므로 다른 방법이 동원된다.
곧 당근과 채찍이다. 말을 잘 들으면 당근(보상)을 줄 것이고, 그러지 않으면 사정없는 채찍(폭력과 학대)이 이어진다.
그렇다면, 그토록 가혹한 훈련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동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것일까.
동물들도 인간 연예인처럼 쇼를 잘하고 인기를 얻을수록 높은 수입과 안락한 잠자리를 제공받을까.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챙긴다’는 말 그대로 아무리 멋지게 쇼를 해도 동물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채찍과 적당량의 먹이뿐이다. 동물은 결국 인간의 재미와 돈벌이를 위한 상업적 오락 도구로 전락한 것이다.
동물에게도 근원적으로 자신들이 태어나고 자라던 자연 속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살 권리가 있다.
그럼에도 인간의 손에 잡혀 우리에 갇히는 순간부터 인간을 위해 재주를 부려야 하는 불행한 신세가 되었다.
인간의 쾌락을 위해 죄 없는 동물을 이용하는 것은 과연 도덕적인가.
사람들이 공연을 보고 즐거움을 만끽하는 동안
동물들은 엄청난 스트레스에 짓눌리고,
그로 인해 조련사를 공격하는 등 비정상적 돌발 행위를 하기도 한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공연을 위한 전 과정이 동물들에게
너무 비윤리적이기 때문이다. 동물들의 입장에서 보면
무의미한 행위를 동물들에게 강요하고 이를 보고 즐기는 시스템은
관람객이 주로 어린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문제가 더 크다.
동물과 인간의 공존의식을 키우기보다는
다른 생명의 존재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심어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윤리나 도덕은 인간에게만, 인간을 위해서만 운운하는 가치일까.
동물에게도 인간처럼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자유롭게 삶을 영위할 권리를 존중해줘야 하지 않을까.
지금이야말로 수많은 정신적 가치를 발전시키고 도덕과 양심, 정의로움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힘없는 동물을 한순간의 재밋거리로 전락시키는 동물 공연에 대해 돌아볼 시점이다.
동물에게 가해지는 악행조차 인간을 위한 것일 때는 미덕이고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용인되어도 좋은가, 아니면 무의미한 행위를 강요당하며 가혹 행위에 시달리는 동물들의 복지를 위해 동물 공연을 중단하는 것이 옳은가?
-201108 다시읽기*청소년을 위한 정의의 올바른 이해 중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