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_가장 오래된 친구

by somehow

나에게는 여동생이 한 명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새로 일군 가정에서 태어난 둘째이자 막내이다.

네 살 터울의 그 아이는 어린 시절,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며 가장 많이 다툰 상대이기도 하지만 나보다 훨씬 의젓하고 똘똘하다. 학교 다닐 때도 학급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맡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지금 와서, 어릴 적 함께 했던 시간들에 대한 기억은 어슴푸레하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자매가 있는 가정의 흔한 풍경이 그렇듯, 둘이 가장 의지하며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사소하고 말도 안 되는 의견 충돌로 피 튀기게 쌈박질을 한 기억도 드물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어찌 된 일인지 내 기억 속에는 없지만, 동생은 아주 어릴 때 홀로 시골에 보내진 적이 있다고 했다. 쉽게 말해, 생업에 매달려야 하는 부모가 어린아이를 둘씩이나 돌볼 수 없어, 더 어린 동생을 시골 외갓집에 보낸 것 같다. 직계 가족과 떨어진 동생이 그곳에서 몇 년이나 외롭게 지냈을지, 나는 그것도 잘 모른다.


오래전 가끔, 자신이 시골의, 어느 길목을 빙 돌아서 가야 나오는 할머니 댁에 자주 놀러 갔었다는 기억을 이야기하며 그 할머니를 ‘뺑돌이 할머니’라고 했다던가... 하는 이야기가 생각나기는 한다.

뺑돌이란, ‘길을 뱅뱅 돌아서 간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일련의 기억들이 얼마나 맞는지 오류투성이 일지조차도 잘 모르겠다.


이유를 알 수 없으나 나에게는 그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이 대체로 희미하거나 지워진 부분이 많은 것 같다.

놀랍게도 동생이 곁에 없는 동안, 나는 혼자 부모 곁에 있었다는 얘긴데, 그 조차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그 아득한 시기에 대해 겨우 기억하는 것은 어둠과 텅 비거나 작은 방... 따위뿐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동생을 다시 내 곁으로 데려온 것은 아마도 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그전까지 얼마 동안의 시간을 동생은 그렇게 멀리, 외갓집이라고는 하나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어린 나이로서는 한없이 낯설었을 시골마을에서 외롭게 지내야 했을까... 생각하면 서글퍼진다.


동생과 내가 함께 지내던 시기였을 것이리라 생각되는 어느 시점의 기억이 하나 있다.

개천가의 작은 문간 셋방에서 자고 일어난 날 아침, 나는 약간의 어지럼증을 느꼈던 것 같다. 무심코 대문 밖으로 비척비척 걸어 나온 동생과 내가 개천가에 쪼그려 앉다가 그대로 쓰러진다. 뒤이어 누군가 이름을 부르는 아득한 소리가 들려온다. 당시에는 제법 흔한 방향제, 연탄가스를 마신 것이다. 그 순간에 대해 남아 있는 잔상은 소리와 느낌으로 떠오른다. 개천가의 선선한 아침 공기가 옆으로 쓰러져 누운 내 몸을 쓸어주는 느낌에 아주 정신을 잃기 전 몽롱함으로, 적당히 나른한 감각이 왠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동생은 나에 비해 매우 똘똘하고 야무진 아이였다. 그러나, 그 아이 또한 우리의 가정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내면화할 수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우리는 어린 시절 늘 함께 했으나 하루하루가 온전히 행복한 것 같지는 않다. 성장하는 동안 동생도 나만큼 혼란과 심적 갈등을 겪으며 자신의 잘못으로 생겨난 것이 아닌 낯선 상처를 이유도 모른 채 문지르고 핥으며 옷깃으로 감추느라 남몰래 힘들었을까.

그럼에도 우리는 같은 상처와 불안을 공유하면서도 함께 그것을 들여다보며 치료법을 의논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두려웠다. 어느새 네 식구의 생계를 당신 어깨에 떠안은 어머니의 고단함과 아버지의 무책임과, 꼭 그탓인 것만 같은 나의 불우한 정서의 뿌리와 상처의 실체를 직시하는 것은 막연하고도 절대적인 공포였다. 나는 무심결에 패배주의자가 되어갔다. 그래서 우리는, 적어도 나는 하찮은 학용품 따위로 다투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잡다한 일과를 핑계로 토닥이기만 했다.


그리고 나는 악의적으로 동생에게 상처를 주려고 노력한 적도 있음을 어렵게 고백한다.

국민학교 시절이던가, 동생은 합창반 활동도 열심히 했고 학교에서 무슨 활동을 하게 되면 항상 적극적으로 참여하곤 했다. 나는 그 반대였다. 나는 늘 존재감 없이 그늘 속에 서있는 것 같았다.

언젠가, 동생이 학교에서 예정된 어떤 행사에서 단체로 한복을 맞춰 입고 율동을 하게 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집에서 고운 옷을 입고 이리저리 율동을 하며 내 앞에서 동작을 연습하고 있었다. 조그만 동생이 그러는 게 얼마나 귀엽고 예쁠까!

그런데도 그것을 지켜보던 나는 무슨 일인지 갑자기 짜증과 분노가 치밀었다. 눈앞에서 예쁜 한복을 입고 알짱거리는 게 말할 수없이 눈에 거슬리는 것이었다. 그때 하필, 동생이 율동 끝에 활짝 웃으며 나에게 물었다.

예쁘지?!

그러나 순간, 나는 가장 악마적인 분노에 휩싸여 그 어린 동생에게 소리를 꽥 질러버렸다.

××하고 자빠졌네!! 흥!

세상에! 그런 욕설을 할 아무런 이유도 없는 그런 상황에서 내 입에서 그런 상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 스스로도 놀랐지만 나는 결코 당황한 척하지 않고 끝까지 분노 감정을 고수하려 노력했던 것 같다.

당연히, 그렇게, 이유도 모른 채, 뜬금없이 욕설을 들은 어린 동생은 수치심과 모욕감에 울음을 터뜨렸고 오랫동안 아파했다.

나는 훗날, 그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몹시 고통스러웠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이유 없이 갑자기.

늘 그렇듯 부모가 없는 텅 빈 집에 동생과 둘이서 잘 있다가... 왜 그랬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지만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날의 악마적인 나의 언행은 그 후로도 아주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스스로 내 어깨에 천근만근이나 짐을 지고 사는 기분이었다. 불쑥불쑥, 어느 순간 갑자기 그날의 그 장면이 떠오르면 생생하게 들려오는 짜증 섞인 내 욕설과, 그 소리에 놀라고 모욕감에 어쩔 줄 몰라하며 울음을 터뜨리는 가여운 내 동생의 모습...

철이 들면서 번번이 그 기억 속으로 소환될 때마다 고통을 겪으며 동생에게 사과를 하려 여러 번 시도했었다.

그러나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대체 어떻게 그 기억을 끄집어내어 사과를 해야 할지 몰라, 또다시 오래도록 괴로웠다.

그러다가 마침내 30대의 어느 날이던가, 용기를 내어 그 어린날의 나의 잘못에 대해, 네가 얼마나 마음 아팠을지 괴로웠다는 말과 함께 이야기 꺼냈다. 그러자, 동생은 그런 적이 있었어? 하고 해맑게 되묻는다.

그래도 나는 미안했다. 너무 늦게 사과해서 미안하고, 그 옛날 그날, 네 그 예쁜 율동을 보고 의미 없이 그토록 상처를 준 것이 너무나 미안했다. 차라리 나에게 화를 내며 용서해주겠다고 말하길 바랐으나, 그런 일이 있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는 말에 더 죄책감이 들었다.

그날 그렇게 오래 묵은 나의 만행에 대한 뒤늦은 결자해지 했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어서 무게가 조금 줄어들었을 뿐, 여전히 나의 죄책감은 진행형이다.

나는 결코 갚을 수 없는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


기억이 얼마나 정확한지 모르겠으나, 성인이 된 이후 동생이 한 번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자신이 대학에 다니던 때, 어느 날인가 너무나 마음이 괴로워서 상담실을 찾아갔다고. 어떤 이야기든 '상담을 하러' 갔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쏟아지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어서 한참 동안을 펑펑 울기만 했다고...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 마음이 아팠다.

나는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아무리 억누르고 다독여도 차오르면 터져 나오는 것, 그 아이는 그제야, 누구와도 속시원히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했던 생의 걱정과 불안과 아픔을 눈물과 함께 토해낸 것임에 틀림없었다.

모르는 척, 상처 받지 않는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오고 있었으나 내가 쳐다보지 않는다고 상처가 저절로 아물지는 않았던 것이다.


나는, 이제야 생각한다. 그때, 내가 동생을 잘 쓰다듬어주었어야 한다고.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나 역시 어딘지 모르게, 어디서 맞았는지도 모르게 어딘가 늘 얼얼한 주제에 어떻게 동생을 다독이고 안아줄 마음의 겨를이 있었을까.

우리는 모두 상처투성이였기에 어떻게 위로할 줄도 위로할 생각도 할 줄을 몰랐었다고 고백해야겠다.


동생은 그럼에도 그 시절을 다행히 잘 지나오고 현재도 자신의 인생을 잘 살아내고 있다.

나와는 아주 다르게, 야무지고 공부도 잘해서 명문 여대에 들어갔을뿐더러 졸업 전 취업에도 성공하여 열심히 능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자신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준비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10여 년 정도 회사에 다니던 동생은 스스로 차근차근 준비하여 더 넓은 세상을 향해 유학길에도 올랐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나는 그 아이를 열렬히,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너는 그럴 자격이 있다!

그리고 멋진 현지인 배우자를 만나고 아들도 낳고 일을 하기도 하며 해외에 살고 있다.

물론, 사람의 인생이 늘 자신이 바라고 끌고 나가는 대로 펼쳐지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동생은 열심히 잘 살아내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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