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겁의 화석, 알바트르 해안절벽

프랑스 북부 에트르타 팔레즈 다발 & 다몽에 서다

by somehow

프랑스 북부 해안도시 에트르타는 1km가 넘는 자갈이 깔린 알바트르 해안(Cote d'Albatre)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엄청난 위용을 뽐내는 절벽이 서있다.

팔레즈 다발 Falaises d'Aval과 팔레즈 다몽 Falaise d'Amon이 그것이다.

프랑스 작가 모리스 르블랑의 추리소설 아르센 뤼팽 시리즈 전집 가운데 3권 기암성의 주무대가 바로 이곳 에트르타의 팔레즈 다발 절벽이기도 하다. 바늘모양의 기암괴석이 작가의 상상력을 만나 불후의 작품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품게 된 것이다.

두 절벽 모두 장관을 보여주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특히 반한 것은 오랜 시간의 흔적을 온몸으로 새기며 묵묵히 서있는 절벽을 품은 드넓고 고요한 바다였다.


바늘모양의 기암괴석과 코끼리 코가 연상되는 절벽 ⓒ somehow



팔레즈 다발은 총 높이 70m의 거대한 절벽으로 침식된 부분이 아치 모양을 하고 있어 마치 코끼리가 바다에 코를 담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팔레즈 다발_경외감을 느끼게 하는 절경 ⓒ somehow


프랑스 오트 노르망디 주 센 마리팀 데 파르트 망 북쪽에 있는 이곳 알바트르 해안은 수직으로 깎아지는 듯한 아름다운 해안 절벽으로 유명하다.



에트르타, 드넓은 바다와 자갈 해변, 그리고 다몽 절벽에서 바라본 다발 절벽ⓒsomehow



드넓은 바다와 수천 년의 세월이 새겨놓은 듯 깎아지른 절벽에서 느끼는 것은
자연에 대한 무한한 경외심과 부끄러움에 다름 아니었다.
그 앞에서 나는
바람에 휙 날려사라지는 티끌 같은 존재가 아닌가.


팔레즈 다몽_언덕 위 교회ⓒsomehow


처음 파리에 도착한 뒤 르아브르와 옹플뢰르를 거쳐 5일 후쯤 우리는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지역에 이르렀다.

에트르타로 가는 길은 한밤중, 택시를 타고 예약된 호텔을 향했다. 그전에 타야 할 버스를 놓친 것을 알고는 당황하는 것도 잠시, 택시를 잡아탔으나 사실 가는 내내 우리는 속으로 두려움에 떨었다.

우리의 목적지가 아닌 곳으로 향하는 것은 아닐까. 혹시 허름한 창고 같은, 아랍계 이민자들이 검은 복면을 쓰고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내심을 숨긴 채 불어 좀 하는 남편이 운전수와 대화를 이어갔다.

나는 열린 창밖으로 깊어가는 프랑스 북부의 여름 밤바람을 맞으며 왠지 몸을 좀 떨었다.

그리고, 우리의 예상은 유쾌하게 빗나갔다. 운전수는 친절하게도 호텔 바로 앞까지 우리를 데려다주었다.

낯선 나라에 선 가난한 여행자의 심정이야 다들 비슷하겠지만 그럼에도, 잠시나마 의심을 품었던 스스로가 민망하기는 했던 기억 또한 지금도 남아있다.


에트르타_2010 ⓒ somehow


에트르타에는 추리소설 아르센 뤼팽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 모리스 르블랑의 별장이 남아있다.

모리스 르블랑의 대표작품이 추리소설이기 때문일까. 호텔 이름도 재미있다, 디텍티브:형사.

다음날 우리의 여정은 자연스럽게 모리스 르블랑의 별장으로 시작되었다.


모리스 르블랑의 별장ⓒsomehow


모리스 르블랑이 죽은 지 7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그곳은 성지처럼 끊임없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내부에는 실존하던 당시 작가가 사용하던 책상과 집기 등 많은 유품들이 생생하게 보존, 전시되고 있으며 삐걱거리는 마룻바닥과 계단이 세월을 견디며 우리를 안내한다.


뤼팽의 망토_르블랑의 별장 내ⓒsomehow

저 망토를 보며 사람들은 문득 비슷한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뤼팽이 살아 돌아온 것일까?'

정말 뤼팽이 사용했을 것 같은 망토와 실크햇을 보며 문학과 예술을 아끼고 존중하며 그 작가가 오래전 떠난 낡은 별장조차도 이처럼 성심을 다해 꾸미고 보존하는 프랑스인들의 정신을 헤아려본다.



에트르타에서의 여정은 짧았다.

곧 우리는 그곳을 떠나갔으나 알바트르 해변 다발&다몽 절벽과 그곳에서 내려다 보이던 드넓은 바다의 풍광 또한 여전히 잊지 못한다.

아를에서의 감흥이 단어로 표현이 쉽지 않은 어떤 느낌에 관한 것이었다면, 8월 20일이면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추워서 긴팔 옷을 사 입어야 할 정도로 서늘한 북부지방의 바다와 절벽에서 느끼는 것은 자연에 대한 무한한 경외심과 부끄러움이었다.


수천 년의 세월이 새겨놓은 듯 깎아지른 절벽 앞에서 나는 바람에 날려사라지는 티끌 같은 존재가 아닌가.


쉴 새 없이 요동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묵묵히 서있는,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 나서거나 참견하지 않으며 그냥 존재할 뿐인 대자연 앞에서 어떻게 겸손해지지 않을 수 있겠나.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