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 어머니는 수년째 병원 침대에 누워 있다.
경수가 초등학교 6학년이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어머니가 거실에 쓰러져 있었다.
“엄마, 눈 떠보세요! 왜 그래, 엄마!”
경수가 붙잡고 흔들어 보았으나 어머니는 의식을 찾지 못했다.
평소에도 혈압이 높았는데 그만 뇌출혈을 일으킨 것이다. 병원에서는조금만 더 빨리 발견되었으면 의식을 찾았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경수는 그것이 자신의 잘못인 것만 같아 죄책감을 느꼈다.
병원으로 옮겨진 날 이후로 어머니는 수년째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그저 숨만 쉬며 누워 있었다.
어머니의 병원비와 생활비, 경수 형제의 교육비를 벌기 위해 아버지는 하루도 쉬지 못하고 바쁘게 일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형편은 어려워져갔다.
“이러다가는 이 집도 팔아야 할 것 같구나.”
어머니가 쓰러진 지 3년 만에 경수네는 오순도순 함께 살던 아파트를 팔고 변두리의 작은 전셋집으로 옮겨야 했다. 처음에는 여러 친척들이 자주 들여다보며 병원비도 조금씩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1년, 2년 세월이 흐르면서 어머니의 증세 호전에 대한 기대가 줄어드는 만큼 사람들의 발걸음과 도움도 뜸해졌다.
그와 함께 경수, 영수 형제의 표정도 점점 어두워졌다.
어머니의 손길이 닿지 않는 집안 살림은 세 식구가 열심히 쓸고 닦아도 빛이 나지 않았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병원비 마련을 위해 다니던 직장을 진작 그만둔 아버지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지친 얼굴로 쓰러져 잠든 아버지를 볼 때마다 경수는 모든 것이 자기 탓이라는 생각에 괴로웠다.
‘내가 그때 조금만 더 빨리 집에 갔더라면…….’
그날따라 경수는 학교가 끝난 뒤 학원도 빼먹고 친구들과 놀다 평소보다 늦게 집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아무도 경수를 탓하지 않았지만 소년의 마음 한구석에는 늘 죄책감이 걸려 있었다.
그럴 때마다속으로 혼자 다짐했다.
‘의사가 되어서 어머니를 꼭 다시 살려내고 말 거야! 엄마, 제가 의사가 될 때쯤이면 의술도 더 발달할 테니 조금만 더 버텨주세요. 제가 꼭 자리에서 일으켜 드릴게요!’
그러던 어느 날 경수는 아버지와 큰아버지, 고모가 심각한 얼굴로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우연히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경수도 어른들의 걱정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어머니를 포기하자는 말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었다. 단지 말을 못하고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 뿐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이라는 말이 아닌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다행히 자신과 마찬가지로 어머니의 소생을 믿는 아버지의 단호한 태도에 안도하면서도 경수의 근심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 후로도 이따금 친척들이 다녀간 뒤에는 아버지의 한숨이 더 깊어지곤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영양 공급 튜브로 연명하던 어머니의 심장 기능이 점점 떨어지더니 어느 순간 눈에 띄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환자의 나이도 있고, 원래 심장 기능도 좋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더 위험합니다. 어느 순간 심장이 멎어버릴 수도 있어요. 심장이식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의사의 말에 가족들은 할 말을 잃었다.
심장이 갑자기 멎을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라도 계속 살리려면 심장이식을 해야 한다는 말에 매우 당황했다.
그 말을 들은지 얼마 후 어머니의 심장은 정말로 갑자기 멈추었다. 의료진이 다급하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해 일단 심장이 다시 뛰게 조치했지만 그것은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었다.
그 후로도 같은 상황이 되풀이 되자 큰아버지와 고모는 다시 아버지와 심각한 대화를 나누었다.
다시 심장이 멎으면 영양 공급 튜브를 제거하고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음으로써 강제로 생명을 연장시키지 말자는 내용이었다.
며칠 후, 아버지는 경수 형제를 불러 앉혔다.
며칠 사이에 더 지치고 늙은 아버지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얘들아, 내가 그동안 많이 생각해봤는데…….”
그 순간, 아버지가 할 말을 짐작한 경수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아빠, 안 돼요! 엄마 살려주세요! 제가 열심히 공부해서 의대 갈게요. 그럼 살릴 방법을 찾을지도 몰라요.”
경수의 외침에 아버지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며 형제를 끌어안았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경우에 따라 남들보다 빨리 죽거나 좀 더 오래 사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모든 인간은 궁극적으로 시한부 인생을 산다고 볼 수 있다.
언젠가는 죽을 것이므로 사는 동안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려 노력하지만, 뜻하지 않게 큰 병에 걸리거나 불의의 사고로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지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힘으로 과연 어느 정도까지 생명을 좌우할 수 있을까.
병에 걸렸을 때 이를 진단하고 최선의 치료를 위해 노력하는 것을 넘어 생사여탈권까지 인간이 쥐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문제가 생긴다.
경수 가족의 상황은 소생 여부가 불투명한 환자에게 생명연장을 위한 적극적 의료 행위가 옳은가에 대해 묻고 있다. 이 경우 안락사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여기서는 살 의지가 분명한 환자의 생명을 단축시킬 정도로
처음부터 능동적으로 구체적인 행위를 취하는 ‘적극적 안락사’가 아니라
환자에게 제공되던 치료를 중단함으로써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소극적 안락사’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런 조치는 치료 효과가 미미하거나 치료가 환자에게 주는 부담이 너무 클 때
환자, 가족 또는 의사가 치료를 중단하거나
아예 치료를 시작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윤리적으로 보자면
환자가 의식이 없어 본인에게 직접 의사를 확인할 수 없더라도
생명이 붙어 있는 한 적극적으로 의료 행위를 하는것이
옳은 듯하다.
경수 아버지도 사랑하는 아내를 그대로 떠나보내고 싶지 않아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가족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에게 희망보다는 절망의 무게가 더해진다.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가정이 무너지고 의료비 부담만 점점 더커지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가족으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에 직면하고 만다.
만약 우리 가족이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최선을 다해 노력했지만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남겨진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심폐소생술 같은 적극적 치료를 포기하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모든 노력을 다해 끝까지 살리려고 해야 옳을까.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와 도덕, 그에 상충하는 현실 앞에서 진정 옳은 판단은 무엇인지 고민해보자.
-201108 다시읽기*청소년을 위한 정의의 올바른 이해 중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