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mehow Mar 08. 2017

누군가를 위해 태어난 아기

내가 다른 이의 삶의 수단이 된다면?



초록색 눈동자가 아름다운 열여섯 살 안나는 어릴 때부터 앓아온 희귀 혈액질환 때문에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 불안한 나날을 이어가고 있었다. 

물론 안나의 부모님은 소중한 딸을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안나에게는 세 살 어린 남동생 폴이 있었다. 

안나는 건강하고 귀여운 남동생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동생이 곁에 있으니 부모님이 덜 슬퍼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안나에게 수술을 해주어야 해요.”

“글쎄, 폴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하지?”

“그냥 누나가 아프니까 네가 수혈을 좀 해주어야 한다고 하면 안될까요?”

“쉽게 알아들을까? 꼬치꼬치 캐물으면 어떡하지? 사실대로 이야기했을 때 충격을 받거나 싫다고 하면 어쩌지?”

어느 날, 부모는 폴이 학교에서 돌아온 줄도 모르고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엄마 아빠,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뭘 어떻게요?”

갑작스러운 폴의 등장에 부모는 당황했지만, 이참에 솔직히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들은 안나의 병을 치료하는 데 필요한 줄기세포를 얻기 위해 안나와 조직이 일치하는 배아를 선택하는 과정을 거쳐 폴을 낳았다고 털어놓은 것이다.

이와 같이 시험관 수정을 통해 두 자녀의 세포조직과 완전히 일치하는 특정 배아를 가려 질병 유전자가 없는 정상적인 배아로 탄생시킨 아기를 ‘맞춤아기’라고 한다. 

또는 희귀 질환을 앓는 형제나 자매를 살리기 위해 태어난다는 뜻으로 ‘구세주 형제’, ‘스페어 아기’라고도 한다.

이야기를 다 들은 폴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싫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그 말에 어머니가 슬픈 얼굴로 말을 이었다.

“폴, 나는 네가 거절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거절하고 싶니?”

“음… 저는 이 세상에 태어난 걸 행복하게 생각하고 누나와 부모님을 모두 사랑해요. 그런데 내가 누나를 위해서 태어났다니… 어리둥절하고 왠지 슬퍼요.”

폴이 우울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아버지가 곤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폴, 우리는 세상 누구보다 널 사랑해. 그건 변함이 없어. 다만 네 골수가 누나를 살릴 수 있다는 건 아주 중요하단다. 누나의 상태가 더 나빠지기 전에 네가 수술에 동의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제 골수가 필요해서 저를 낳으신 거란 말씀이잖아요!"

“만약 누나가 건강했다면 굳이 저를 낳을 이유가 없었단 거잖아요. 만약 제가 골수를 주지 않으면 누나는 죽을 거예요. 그러니까 당연히 그렇게 해야겠지만…….”

폴은 갑작스럽게 마주친 진실 앞에서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했다.

이제 겨우 열세 살의 소년이 한번에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뒤로 한동안 폴은 우울한 듯 가족들과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거부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곤 했다.

폴과 자신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안나도 매우 당황했다. 

안나는 사랑하는 부모님, 동생과 함께 더 오래 살고 싶었다. 그러려면 현재로서는 폴의 골수를 이식받아야 했다. 그런데 모든 사실을 안 폴에게 ‘누군가를 위해 만들어진 존재’라는 의미는 큰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생명과학 기술의 발달로
누군가를 위한 '맞춤아기'까지 만들어내는 세상이 되었다는 사실은
희귀 질환자들에게는 기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반대편에서는 그것이 과연 윤리적으로 바람직한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다.

2009년 9월 개봉한 <마이 시스터즈 키퍼>라는 미국 영화도 이런 맞춤아기의 가족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미국에서는 실제로 2000년부터 맞춤아기가 태어났다. 미국 시카고의 한 병원 의료진이 판코니 빈혈이라는 유전 질환을 앓는 누나의 치료를 위해 맞춤형 남자아기 '아담'을 처음으로 출생시켜 윤리적 논란과 함께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이 아기는 여섯 살 누나에게 조직이 일치하는 골수를 제공할 목적으로 시험관 수정을 통해 태어났다. 

얼마 뒤 누나의 골수에 이식한 아담의 탯줄 혈액은 3주 만에 골수 기능을 떠맡아 혈소판과 백혈구를 생성함으로써 누나를 질병에서 구해주었다. 만약 맞춤아기 아담이 없었다면 누나의 생명은 이후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영국에서도 2002년 희귀 빈혈증을 앓던 네 살 남자아이 찰리의 부모가 치료를 위한 맞춤아기의 출산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여자아이를 출산했다. 그리고 골수이식 수술을 거쳐 지금까지 두 아이 모두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찰리의 여동생처럼 맞춤아기로 태어나더라도 그런 질병적 위험 요소가 모두 제거된 채 건강하게 태어난다면 어떨까? 그로써 형제나 자매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물론 본인도 이후 질병으로 인한 의료비 지출 등의 부담을 벗어버릴 수 있다면 긍정적이지 않을까.

누군가의 기증이 절실하지만 당장 불가능하거나 오직 맞춤아기로만 자녀의 질병을 고칠 수 있다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보지 않을까. 또 막연히 장기이식을 기다리던 사람들에게는 장기를 마련하는 대안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맞춤아기에 대해서는 ‘특정 목적’을 위해 조건에 맞는 아기를 낳을 수 있다는 긍정론과 함께 생명의 존엄성 및 인간 윤리 의식에 배치된다는 비판론이 서로 맞서고 있다.

긍정론자인 생명공학 연구자들은 앞으로의 가능성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윤리적 이유만으로 연구 자체를 금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뿐만 아니라 아직까지 해결이 쉽지 않은 각종 암과 유전성 질환자들을 위해 적정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에 따라 영국에서는 2009년부터 불치병 치료를 위해 사용되는 맞춤아기의 출산을 허용하는 법을 세계 최초로 시행하게 되었다.

반대론자들의 주장도 만만치 않다. 

아기는 존재 자체로 존중되어야 할 고귀한 생명이다. 그런데 맞춤아기는 불치병에 걸린 또 다른 생명을 살리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다는 점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므로 비도덕적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현재는 건강한 배아를 골라 인공적 수정을 하는 정도로 그치지만 향후에는 인간의 유전자를 조작하는 단계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으므로 결코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실험 과정에서 변형된 유전자가 외부로 유출되거나 악의적으로 이용된다면 인간이라는 종 자체가 붕괴될 수있다는 근본적 우려와 함께 생명체가 상품으로 전락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종교계의 반발도 거세다.


수많은 찬반 논쟁에도 불구하고 윤리 때문에 맞춤아기라는 효과적인 치료법을 시도할 수 없다면 치료받지 못한 채 죽어가는 아이의 생명 또한 방치되는 게 아닐까. 
만약 당신이 안나 또는 폴의 입장이라면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 
아무 목적 없이 순수한 사랑과 축복만으로 세상에 태어난 것과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의 차이는 무엇일까.

인간의 생명을 지키는 일과 윤리를 지키는 일 중 어느 것이 더 정의로운 선택일지에 대해 고민해보자.






                                                                   -201108 다시읽기*청소년을 위한 정의의 올바른 이해 중에서 발췌


작가의 이전글 소생확률 낮은 환자에 대한 생명연장시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