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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토리_D

_사회암적기업의소모품이되다

by somehow

_만남


내가 그곳:더팩토리_D에 들어간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즈음 나는 일이 필요했고 2018년 12월 말쯤 분연히 대문을 박차고 나선 이후로 몇 군데 일용직과 비정규직을 체험할수록 절실해진 고정적인 일자리, 혹은 정규직이 되기 위해 맨땅에 헤딩하며 가열차게 필드를 누비고 다니고 있을 따름이었다.

(이에 관한 사실적 르포는 나의 다른 브런치 북:가장 열렬한 하루에 잘 드러나 있다.)




지금도 생생하다,

내가 그날 그 식품공장: 더팩토리_D에 사장과 면접을 하러 가게 된 시작과 끝은.

(그에 앞서, 지금부터 나는 그 공장을 더팩토리_D로 명명하기로 한다. 이는, 2019년 4월 15일부터 2021년 4월 30일까지 747일 동안 내가 몸담았던 그 사회적 기업_식품공장의 실명 대신 임의로 이렇게 명명함으로써, 진심과는 다르지만 상대방에 대하여 최소한의 배려를 내포하기 위함이다. 이쯤에서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폭로라면 폭로, 고발이라면 고발이 될 수도 있는 그 공장의 민낯을 까발리고자 하면서 굳이 사명社名을 가려주는 건 또 뭔가....그럼에도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내가 겪은 수준에서만 이야기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날도 아침부터 나는 몇 군데 면접처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가 취업정보지던가 뭐였던가 하는 데서 조그만 글씨로 '초콜릿 생산 포장직 구인'에 관한 정보를 발했다. 집 근처네? 오케이, 여기 한번 가보자.

그리고 또 다른 면접처의 연락처도 저장하고는 지역의 직업상담사에게 전화를 걸어 집 근처 초콜릿 생산공장에 면접을 볼 수 있을지 확인했다. 직업상담사는 친절하게 사장의 연락처를 알려주며 직접 전화해서 면접 약속을 잡으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서둘러 연락을 취했고 오후에 면접 약속이 잡혔다.

약속시간에 알려주는 주소로 달려갔다.

집에서의 거리를 따지니 단, 7분! 단숨에 차를 몰아 공장이 위치한 곳으로 달려갔다.


아, 이렇게 멋지신 분이 어떻게 생산직에 지원하셨어요?

더팩토리_D의 대표 G의 첫마디는 이랬다.

공장 마당에 주차하고 하차하는 순간, 대표 G도 때마침 그곳으로 차를 몰고 들어오다 마주친 것이다.

나는 그날 적당한 봄 아우터에 하늘색 스카프를 두르고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따가운 봄 햇빛을 받으며 운전을 하는 데는 선글라스가 필수일 뿐 아니라 나이가 들수록 맨얼굴로 다니기가 점점 자신이 없어지는 소심한 이유로 선글라스를 애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장, 그리고 생산직이란 어감만으로도 어쩐지 고되고 지치고, 오로지 생존에 대한 지향만을 특성으로 한다는 선입견 혹은 편견 덕분일까, 내가 조금 (사실은 나의 평소 스타일이고 늘 입는 옷과 소품을 걸쳤을 뿐인데도, 내 입으로 말하기도 한심스럽고 실없게 느껴지긴 하지만,) 뜻밖에도 세련된 첫인상을 풍긴다는 이유로 그녀는 그런 표현으로 나를 맞았다.

쉽게 말해, 그 순간부터 그녀는 내게 노골적인 호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면접은 분위기 좋게 이어졌다. 그러나 내가 내민, 이력서를 훑어보던 G가 불쑥 좋은 학교 나오셨네요~하는 소리에 방심하고 있던 나는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틀림없이 고등학교 졸업까지만 표기한 이력서를 낸 줄 알았는데 실수했나... 하는 생각에 얼덜결에 뜻밖의 실토를 하고 말았다. 어머, 이력서를 잘못 냈나 봐요..

그러자 눈치 빠른 그녀가 무슨 소리냐며 솔직하게 말해보란다.

다시 보니 이력서는 역시나 제대로 낸 게 맞았다. 성급하게 뱉은 말을 주워 담을 겨를도 없이 나는 그냥 실제 최종 학력과 온갖 이력과 잡다한 경력을 털어 넣은 진짜 이력서를 다시 내밀며 솔직해지기로 했다.

왜 내가 지금 당신 앞에 와 앉아있는지.

그러면서 나는 일을 하고 싶고 열심히 할 테니 일할 기회를 달라고 이야기했다.


한동안 이것저것 면접다운 질문들을 던지고 대답을 듣고 하더니 마침내 그녀가 이렇게 마침표를 찍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4월 15일부터 출근하세요.

대부분의 경우, 면접을 보고 나면 언제까지 연락을 준다느니 하며 시간을 끌고 애를 태우기 마련인데, 나보다 7~8세나 어리고 젊은 사회적 기업의 대표 G, 그녀는 더 이상 고를 것도 망설일 것도 없다는 듯 그 자리에서 나를 정식으로 채용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나는 내심 놀랐다. 이렇게 쉽게? 진짜로?


일단은 계약직이라고 했다. 1년마다 계약서를 다시 쓰는데 특별한 일이 없으면 연장이 될 것이고 계속 일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 어떠랴, 일단 적어도 1년은 방황하지 않고 매일 출근할 곳이 생긴다는 사실만으로도 초보 생산직 도전자는 기쁘기 그지없었다.

.

.

.

그녀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녀 G는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지나왔다. 어떤 이유로 부모와 떨어져 조모의 손에서 자라야 했으며 30살 무렵에는 뜻밖의 암에 걸려 생사를 오가기도 했으나 살아났고, 당시에 받은 보험금을 자본으로 현재의 식품공장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후로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공장을 일구어내고 예비 사회적 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던 것이다. 결혼도 포기한 채 자신의 전부를 털어 자갈밭에서 적잖은 열매를 맺도록 땀과 열정을 쏟았으니 그녀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나고 자란 지역의 특산 농산물과 초콜릿을 결합한 식품을 개발하고 특허를 출원함으로써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10여 년, 작고 어린 여자의 몸으로 사업체를 이끌어오는 시간이 결코 녹록치 않았을 것임을 또한 이해할 수 있을 듯했다. 그렇기에, 그녀가 때때로, 종종, 불현듯 미친 듯이, 말도 안 되는 자신만의 논리로 나를 포함한 더팩토리_D의 몇 안 되는 직원들을 닦달하거나 다그치고 회유할 때도 우리 모두는 그저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2019년 4월 15일 첫 출근 이후로 시간이 흐를수록, 이곳 더팩토리_D는 사회적 기업이 아니라 사회적 기업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이곳에서 가장 암癌적이고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 바로 사장 G, 그녀가 아닐까 하는 생각조차 하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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