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톱니바퀴가 되기 위해서는 조직의 생태와 습성에 잘 적응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초보생산직근로자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며, 식품공장의 톱니가 되기위해 나를 깎고 다듬어야한다.
더팩토리_D, 그 초콜릿생산공장 세명의 선임자들, 즉 한명의 제품생산자와 두명의 포장생산자들에 합류한 신입 포장생산자로서 첫발을 들이민 날부터 나는 저으기 당황하고 불편했다.
사람이 먹는 식품을 생산해내는 공장이라면 당연히 위생이 철저하게 지켜지고 종사자들 모두 누구보다도 위생관념이 투철해야한다고 생각했기에 그랬을 것이다. 더구나 HACCP인증을 받았다는 사실을 강조하던 사장=대표G의 표정과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하기에 더.
그러나, 그로부터 날마다 실망과 실소와 한숨을 거둘 수 없었고 2년여의 근무를 마치는 날까지 그것은 대체로 이어졌다.
참으로 초지일관하다고도 할 만하다.
인트로가 너무 길었나싶어 이제 그판도라의 상자속으로 나는 되돌아들어가며 여전히 머릿속에 생생한 기억의 장면들을 기록해보자.
한마디로 드러웠다. 과연 이곳이 식품을 생산하는 곳이 맞나싶을 정도로.
정식계약직으로서 첫 출근의 흥분에서 벗어나며 조금씩 내가 하루 8시간씩 일하게 된 공장과 간혹 들르는 사무공간을 확인할수록 그곳은 적당히 남루하고 상당히 구질구질한 그저그런 창고수준에 불과한 사업장이었다. 사업장이라는 단어도 잘 어울리지 않는.
우선 매일 아침과 저녁 출퇴근시 통과하거나 점심시간이나 휴식시간에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하기도 하는 사무실의 실상은, 온갖 잡동사니와 어디서 주워왔는지 모를, 허접한 사무용집기들이 어수선하게 불편한자세로 자리잡고 있다. 사무실의 한쪽에는 또다른 문이 있고 안쪽에 사장이 쓰는 책상과 컴퓨터와 그외 온갖 잡동사니 쓰레기들이 처박혀있다. 아주 가끔 정리랍시고 하지만 그곳은 그냥 먼지구덩이 창고에 지나지 않았다.
입사초기, 가끔 사장이 그 방 컴퓨터에서 무언가 작업을 하는 장면을 종종 목격하기는 했으나 어느순간부터는 사장자신 조차 그 창고같은 방에 더 이상 들어가지 않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머물고 손님이 와도 머무는, 경리와 전담업무가 무엇인지 알 길 없는 사무직원 한두명이사용하고 어느시점 이후로 아예 사장도 상시로 머무는 콧구멍만한 사무실에는 창문주위로 둘러 컴퓨터가 놓인 책상이 하나둘,셋 정도. 각양각색인 책상들은 결코 돈 주고 산 물건이 아님을 명백히 드러낼 정도로 오래되어 수평면이 아래로 휘어져곧 무너질 듯하고 의자들도 결코 사무용의자가 아닌 제각각의 휴게실용의자....직원들은 그 보기에도 불편하고 낡은 책상과 의자에 자신들의 몸을 구기고 접어 넣어가며 일을 하고 있었다.
사무실의 남은 공간에는 작은 원테이블이 있고 휴게실용 의자 여럿이 놓여 있다.
그 위에는 결재 서류와 우편물, 샘플등등을 비롯해 늘 온갖 잡동사니들이 이리저리 위치를 바꿔가며 널려있다. 나역시 그 테이블에서 사장과 면접을 봤는데, 그사무실의 풍경이 그토록 어수선하고 창고같았다는 사실을 당시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면접을 통과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고 사장이 나를 채용할지말지에 대해서만 집중하고 있었던 탓이리라.
후에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그사무실에는 원래 그 원테이블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리에 들어온 것은 불과 그시점으로부터 1년여 남짓이라는 점이 놀라웠다. 그것을 들여온 사람도 사장이 아니라 그 사업장의 또다른 곳에 있는 체험사업장을 관리하는 직원이 자신의 돈을 들여 중고물품을 사다 놓은 것이다. 왜? 없으니까. 사무실에 회의용이든 뭐든 그런 테이블 하나 없이 대체 회의든 뭐든 뭘 어떻게 했던 것일까?
보다못한 그 직원이, 그자신역시 입사한지 얼마되지도않은 상태에서, 사다 들여놓은 것이다.
그사실을 직원들에게 전해들었을 때 나는 그냥 웃음이 났다.
이런게 사회적기업인가 싶기도 했다.
열심히 일해 버는 돈은 모두 사회에 환원하다보니 사무실 집기하나 제대로 들여놓을 돈은 없는가 싶었기에. 또하나, 그 사무실에는 문서출력용 프린터가 한대 있었는데 너무나 오래되어 인쇄가 잘 되지도 않을 뿐더러 정상적으로 사용하는 시간보다 고치는 시간이 더 많았다. 사장은 종종 팔을 걷어붙이고 그것을 고치느라 땀을 뻘뻘 흘리곤 했다. 왠만하면 새것을 사도 될만큼 너무나 충분히 오래사용해서 이제 처분한다 해도 아무도 불만이 없을 정도의 상태였다. 그러나 그것이 용도 폐기되기까지는 나의 첫출근으로부터도 몇개월은 더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새 프린터가 들어왔을 때 모든 직원들은 속으로 안도했다. 이제는 서류한장 뽑기 위해 몇시간씩 고치느라 시간낭비를 하지않아도 되는구나 싶어서.... 실제로 한번씩 무언가 출력을 하려들면 그때마다 몇시간씩 낡은 기계를 들여다보는 장면을 적잖이 목격했었기에 나는 사장의 알뜰함에 혀를 내둘렀다.
알뜰하고 무엇이나 쉽게 버리지 않고 고쳐쓰고 다시쓰고 하는 사장의 자세는 높이 살 만했다. 그게 그 자신 개인의 공간에서 개인적인 물건들에 대한 태도라면 말이다. 그러나 그 공간은 사업장의 주요업무가 처리되는 곳이 아닌가. 그곳은 업무효율성은 물론 대외적인 이미지에도 중요한 사무실, 그 공장에서 하나뿐인 유일한 공간이며 그 사회적기업의 얼굴이 되는 곳이다. 그런데 사장은 그런 의미에는 관심이 전혀없었다.
무조건 안 쓴다. 아낀다. 안될 때까지 고친다....가 경영의 신조처럼 보였다.
그러한 신조는 그 자신의 삶에도 일관되게 적용되는 듯했다. 더팩토리_D의 대표=사장G, 그녀는 봄여름가을겨울에 걸쳐 대체로 거의 각 한벌씩의 옷만 입는다. 내가 처음 그녀를 만나 면접을 하던 4월중순에 그녀에게서는 찌든 땀내가 진동했다. 그옷은 여름이 되어 반팔옷을 입기전까지 날마다 걸치고 다녔다. 땀내가 진동하는 이유는 그것인 듯했다.
또 여름이 되자 원색 반팔티셔츠와 엉덩이 늘어진 면 반바지를 교복처럼 날마다 걸치고 다녔다. 사무실에서 손님을 만날때도 그차림이었고 하루중 잦은 외근을하러 운전을 하고다니는동안에도 늘 그랬다. 그러다 정말 그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참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만 어떤 단정한 옷을 입었다. 그역시 교복처럼.
그녀는 미니멀리즘이 신조라고 직접 말했다. 그래서 옷은 한벌씩밖에 없고 물건도 사지 않으며, 그래서 집에 있던 책들도 다 버리고 없다며, 내가 쓴 책을 처음에 건넸을때 난처해하며 책을 집에 두지 않기 위해 읽고 다시돌려주겠다고 말했었다.
대체로 그녀는 자신에게 돈을 쓰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단, 술을 마시는데 쓰는 돈 빼고.
혼자사는 사람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녀는 술을 많이 마시는 듯했다. 사업을 하다보니 아는 사람도 많아서 퇴근후 술자리도 많을 것이고 혼자 집에서 마시는 경우도 많은 듯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몸매는 술과 안주가 만들어준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구질구질하고 드러웠다. 그녀가 이끄는 사업장의 얼굴인 사무실부터 구질구질하고 어수선했으며 대외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일이 많은 사업장의 대표로서 상대방에 대해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옷차림이 구질구질했다. 그것은 도저히 대표자의 모습이라 할 수 없었다.
여름에는 특히 맨발에 슬리퍼를 끌고 다니며 집에서 입은 채로 자다가 나왔을 것으로 충분히 짐작할만한 상태로 출근하고 사람을 만나고 다녔다. 그런 그녀를 보며 나는 내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 스스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태도에서 어이없는 웃음이 날마다 이어졌다.
옷차림은 단지 멋을 부리기 위해 필요한게 아니다.
그가 대표하는 사업장의 얼굴이며 대외적인 관계에서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 단정하고 직위에 맞는 차림을 해야 한다고 여기던 나로서는, 어쩐지 그녀가 나를 대표한다고 생각하니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