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고 안쓰고 무엇이든 고치고 고쳐서 쓰는 알뜰한 사장 밑에서 일을 하다보니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그 자체는 참 좋은 습관이라하겠으나 그것이 사업체를 운영하는데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생산을 하는데 필요한 물품이나 도구들이 있어서 구입해줄것을 요구해도 잘 먹히지않는 것이다.
처음 출근한 날부터 나는 놀랐다.
생산현장에서 입는 위생복을 지급하기에 받아 입었으나 낡고 구질구질했다. 그나마 있으니 다행이었다. 다음으로 앞치마와 마스크와 위생장갑 등이 필요했다. 마스크는 있는데 앞치마가없었다. 식품을 생산하는데 앞치마를 두르지 않으면 위생복이 더러워지는것은 당연했고 매일 갈아 입을 만큼 여벌이 준비되어 있지도 않기에 나는 앞치마를 사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기존의 선임 생산직원은 물론 물품구입을 담당하는 경리까지도 나의 요구를 의아해했다. 앞치마가 왜 필요한가 식이었을 뿐아니라, 없어도 상관없으며 그때까지 앞치마 없이도 일만 잘 해오고 이었던 것이다. 나는 정말 의아했다. 그들의 생각이.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위생장갑이다. 니트릴장갑이라고도 하는 일회용장갑은 식품을 다루는 곳에서는 필수적인 것이었다. 작업장에 들고 날 때마다 새것을 사용해야 했다. 그런데, 그곳에는 일회용장갑조차도 충분치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일회용장갑을 일주일씩 쓰고 있었다. 일주일??? 일회용인데? 왜요?
내가 황당하게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을 때 그들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없어. 안 사줘. 아껴 쓰래. 없으면 맨손으로...
뭐라고요? 아무리 그래도그렇지, 말이 안 돼요! 나는 첫날부터 비명을 지르는 심정이 되었다.
기본 복장인 위생복에 마스크와 위생장갑 그리고 위생화를 갖추지 않은 채 식품을 다루는 일을 하다니. 위생화 역시 공장들마다 지급하는 데가 있기도 하지만 이곳은 자기가 준비해서 신고있었다. 그러나 그외 복장은 갖추도록 해주어야 했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마스크와 장갑은 늘 여분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었다. 위생장갑 뿐아니라 마스크도 매번 몇 상자 사두고 쓰다가 떨어질 때쯤 되면 다시 또 최저가검색을 통해 가장 싼 인터넷상점에서 구입한다고 했다.
아 이런 곳도 있구나. 식품공장이.
놀라운 깨달음이었다.
그전까지 몇군데 다녀본 경험상 그래도 식품공장은 복장을 갖추는데 있어서 만큼은 늘 충분히 지급되고 있었음을 확인했었기에 더팩토리_D의 상황은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위생화를 안 신은 작업자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의 선임, 즉 머지않아 퇴사를 앞두고있는 포장직원 '박선생'(사장은 자신보다 나이많은 생산직원들을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나에게도 해당되었다. 반말을 할 수도 없고 아줌마라고 하기도 뭣하니 선택한 칭호같았다. 듣는 입장에서는그리 나쁘지않았으나그렇다고 썩 편안한 느낌도 아니었다.)은 무좀이 있다며 위생화대신 비위생적인 슬리퍼를 신고 있었는데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 상태였다.
그리고 그녀는 종종 위생장갑을 끼지 않은 채로 식품을 만지기도했다. 그녀는 원래 포장이 전문이지만 '소프트초콜릿'이라고 하는 수제초콜릿 생산은 맡고 있었다. 그것은 실리콘 몰드에 녹인 초콜릿을 부어 굳혀서 빼내는 식으로 완성하는데, 그 모든 과정을 종종 장갑이나 마스크도 끼지 않고 앞치마도 착용하지 않은 상태로 맨발에 슬리퍼를 걸고 앉아 덤덤하게 해내곤 했다.
초보생산직사원인 나는 그런 광경을 처음 목격하며 입을 다물 수가없었다.
나에게 소프트초콜릿을 수제로 만드는 과정을 가르쳐 준다며 보여주는 그 모습은 참으로 위생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중 누구도 그러한 상황의 심각성을 알지 못하고, 혹은 알면서도 무감각해진 듯했다.
그로부터 나는 적극적으로 모든 위생장비들을 갖출수 있도록 요청하며 노력했다.
위생용품은 교차오염의 방지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상황에는 사장의 아끼고 안쓰고 식의 경영 신념이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되었다. 개인의 사적인 공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먹는 식품을 생산하는 사회적기업인 식품공장에서 그동안 당연시되어오고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