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초보 생산직근로자다.
더팩토리_D에 면접을 보고 입사를 하던 지난 2년여 전에야 처음으로 생산직근로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자의반타의반으로 그곳을 뛰쳐나온 지금 3년차가 되어가지만 나는 아직도 서투르고 완벽하지 못한 초보일 뿐이다.
그곳에서의 2년여시간 동안 나는 수많은 실수와 오류를 반복하면서도 한걸음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려 애쓰며 생산직의 생태계에 녹아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나마 직전 4~5개월의 생산직 아르바이트 경험이 식품공장의 생산직 근로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럼에도 모든 일은 새로웠다.
나는 사회적기업의 진정한 존재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본이 부족한 상태에서 긍정적인 신념만 가지고 기업을 시작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청년들의 자립과 성장의 밑거름을 마련해 주고자 인건비와 재정지원, 공공기관 우선구매 등의 혜택과 경영컨설팅 등을 지원해주는 것이 사회적 혹은 예비사회적기업 선정의 참뜻이라 생각된다.
그렇게 이익활동을 추구하여 벌어들이는 수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일종의 보답을 하도록 하는 것일 게다. 그런데, 그런 단순하고 합리적인 피드백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 사회적기업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지난 2년여 시간 동안 몸소 체험했다.
정부의 엄청난 지원과 혜택을 받으면서도 그것이 이익추구를 위한 투자로 이어지지 않는 듯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수많은 지원사업을 통해 끊임없이 자금이 지원되지만 그것이 효율적인 생산과 매출이익을 위해 제대로 쓰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늘 정부의 지원금은 밑빠진 독에 끊임없이 물만 들이 붓고있는 격으로 여겨졌다. 경제이론도 논리도 지식도 일천한 경제무식자의 눈으로 보기에도 무언가 아주 잘못되어 있었음에도 늘 그렇게 돌아가고 있었다. 쉽게 말해, 자기 돈이 아니니까 진지하고 깊은 고민없이 아까운줄 모르고 아무렇게나, 허투루 쓰인다고나 할까.
아무리 자기 자본을 털어 시작한 소기업일지라도 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되고 무한에 가까운 정부지원과 혜택을 받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그 기업도 개인의 소유물이 아닌 것이다. 이익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기본 전제가 바로 사회적기업의 의미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정작 그 기업가는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오로지 지원금을 끌어다 사업을 하는 체, 어쭙잖은 몸짓만 할 뿐이다. 이제 그 번지르르한 겉모습과 달리 실제로는 썩어들어가며 금방이라도 곪아터질 것처럼 보이는 더팩토리_D라는, 내가 목도한 사회암적기업의 빨간 속살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나는 소모품으로 기능했다.
이윤의 사회환원이라는 사회적기업의 기본적인 역할에는, 사회 취약계층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마련해준다는의미도 포함될 것이다. 그럼에도 그곳, 더팩토리_D의 취업은 결코 근로자의 삶의 안정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지원자에게 한번씩 잠시 일해 볼 기회를 제공하는, 마치 체험_삶의 현장이라도 되는 듯, 일정한 타이머가 돌아가듯 지원금이 뒤따르는 동안에만 근로의 자격을 누릴 수 있는, 혜택처럼 한시적이고 지극히 불안정한 현장에 불과했다.
여기서 의문이 생겼다.
끊임없이 지원금을 내주면서도 정부는 왜 그 쓰임새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지 말이다. 내가 알기로도 1년에만 적어도 수백만원이상 돈(국고, 세금)이 흘러들어가는데, 그게 최초의 목적대로 정당하게 쓰이는지, 지원의 목적에 맞게 타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는 왜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정부지원금은 눈먼 돈이라고 하던가.
지금도 정부의 눈먼 돈은 스스로의 도리는 다하지 않으면서 지원금 타먹기의 요령에만 능숙해진 어느 사회암적기업으로 무제한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모든 사회적기업이 다 그런 식으로 해먹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모든 사회적기업을 싸잡아 헐뜯을 생각은 없다.
나는 다만, 사회암적기업 더팩토리_D에 대해 이야기할 뿐이다.
그 이유는 내가 겪은, 나를 소모품으로 취급하고 모욕하고 끝내 개처럼 내쫒은 더팩토리_D라는 개집(doghutch)의 탐욕스런 주인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는, 결코 나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