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쓰는 기준이 그가 가진 능력이나 직무적합성이 아니라 정부지원금이라니, 정말 그게 팩트냐고 되물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뭣때문에 더팩토리_D의 실상을 과장하고 왜곡하겠는가.
다만 길지 않은 2년여의 '내부자'생활동안 실제로 겪고 보고 들은 사실을 이야기할뿐.
더팩토리_D의 재무상태는 경리의 표현을 빌자면, 최악, 비관적, 뭐 그런 단어들로 요약되었다. 그것도 나보다 1년정도 먼저 들어와 온갖 고초를 겪으며 거의 날마다 눈물콧물 쏟아가며 사장에게 시달리다 끝내, 이악물고 3년을 채우자마자 뛰쳐나간 경리사원 P에 의한 폭로가 아니었다.(그녀에 관한 이야기는 뒤에서 하기로) 그녀는 날마다 그토록 정서적 신체적 학대를 당했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장에게 시달리면서도 회사의 절망적인 실상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런 사실은 뜻밖에도 그녀가 퇴사한뒤 새로 채용되었으나 하루만에 박차고 나가는 지혜로운 결단을 내린, 후임 경리X에 의해서 알려졌다. 업무 인수인계를 받고 회사의 재무상태를 확인하게 되면서 X는 즉각적으로, 더팩토리_D는 최악이며 쉽게 말해 '다음달 자신의 월급을 줄 수 있을 지 말지 심히 걱정된다'는 표현을 남기고 떠난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해 X라고 표현했다.)
그런 상황에 대해 남겨진 우리는 모두 X의 결단을, 그녀의 밝은 미래를 응원했다.
그럼 그렇지, 왜 안 그렇겠니, 잘 떠났네! 그녀의 미래에 박수!
미처 떠나지는 못한채, 더팩토리_D로부터 멀어져가는 X의 발랄한 뒷모습을 상상하며 우리 모두는 진심으로 뜨거운 응원가를 불러주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상황에서 오직 한사람 사장만이 X의 행동을 이해 못하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 회사에 더 적합한 다른 사람이 있었는데도 굳이 본인을 뽑아줬는데, 왜 갑자기 하루만에 때려치우는 거죠? 여러분들과 무슨 일 있었나요?
(실은 90%급여 지원금을 받을 수있는 20-30청년층이라 채용한 것을 다 아는데)
실제로 사장은 X가 출근했을 때 그렇게 말했다고한다. 너보다 더 적합한 사람있었는데 널 썼다...그러니 내게고마워해라,는 뜻이었을까. 대체로 사장은 인간에 대해 무례하고 언행이 경솔했다.
정말 몰라서 그러는 것 같았다. 정말 실제 이유를 우리들은 전혀 모르는 줄 아는 듯, 사장은 나를 붙잡고, 니들과 X가 싸움이라도 했냐는 식으로 캐물었다. 정말, 미친...욕이 절로 나올만큼 해맑은 사장의 태도에 나는 그저 모르쇠로 일관할 뿐이었다.
즉, 회사의 재무상태는 당장 망한다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태인데도 그것을 해결하고 제대로 경영해 나갈 생각은 없고 당장 매달 나갈 급여비용만 해결하려 악착을 떠는 저 사람을 정말 사장으로 그냥 두어도 괜챃은 것인지, 내 회사도 아닌데 늘 걱정스러웠다.
그야말로 사회적기업 더팩토리_D에서 가장 불필요하고 암적인 존재가 바로 대표 G가 아닐까, 나는 그렇게까지 생각되었다.
자기 주머니에서 나가야 할 인건비를 줄이고 줄여서 한달에 통틀어 백만원도 안 들이고 서너 명을 마음껏 부릴 수있다니 정부지원금제도란 얼마나 아름다운 유혹인가. 그 황홀한 유혹에 매혹된 채로 사장은 날이갈수록 제멋대로였다.
포장실 인원을 둘에서 하나로 줄인 뒤, 내게 포장업무 독박을 쓰게 한 것으로는 부족해서 급한 주문이 들어오면 사무실 인원들이 총동원되어 제품을 포장하고 출고하는 일을 당연시하는 것은 물론 모두에게 멀티플레이어가되라고 주문했다.
멀티플레이어multiplayer라 하면, 한 가지가 아닌 여러 가지의 분야에 대한 지식과 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을 뜻한다.
식품공장 생산직과 사무직들에게 멀티플레이어가 되라니? 이 또한 사장의 궤변일 뿐이다. 쉽게 말해 일당백을 해내라는 것이니, 포장이 급하면 포장으로 몰려가서 일하고 생산이 바쁘면 생산에까지 가서 도우라는 뜻이다. 실제로 사장은 나에게 초콜릿생산기술을 배우라며 제품생산을 담당하던 J선생이 나간뒤 새로 들어온 생산직, 게으른 젊은 여자애 S의 꽁무니에 나를 데려다놓고 어깨너머로 일을 배우라고 종용했다.
사실, 코로나의 창궐과 함께, 사회 전반적으로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더팩토리_D같은 소규모사업체들의 타격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주변지역의 관광지들이 모두 폐쇄되니 거의 판로가 막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나 제품 생산은 해야만 했고(원물의 유통기한이 있어서 안 팔린다고 생산을 안할 수도 없는 딜레마였다)출고는 되지 않으니 원물창고나 완제품창고에는 미처 팔려나가지 못한 채 날짜만 잡아먹고있는 제품들로 가득했다.
판로가 없으니 주문도 없고 생산이나 포장이나 할 일 없이 시간만 때우며 월급만 축내는 날이 늘어가자 사장의 눈에 직원들은 눈엣가시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인원을 최소한으로 줄이고도 노는 꼴을 보기 싫어서 멀리플레이어가 되라느니하는 뻔한 말로 혀를 놀리며 눈을 부라렸다.
더팩토리_D의 모든 종사원에게 멀리플레이어가 되라며 동원했던 일 가운데 압권은 '피자만들기 체험행사장'의 노동이었다.
더팩토리_D는 공장 외에 초콜릿제품을 초콜릿만들기 체험과 함께 제품을 홍보하는 사업장을 별도로 운영했다. 유초등부터 중고등생은 물론 성인들도 그 체험장에 들러 특정한 컨셉의 초콜릿을 만드는 체험도하도 곁다리로 이루어지는 다양한 체험활동을 할 수 있었는데, 쉽게 말해 돈벌이 수단의 다양화인 것이다.
그러나 그 체험장이 운영되는 관광지가 폐쇄됨으로써 더이상 수익을 내기 어려워지자 또다른 체험활동으로 눈을 돌렸는데(이 역시 코로나가 직전부터 심각해지기 직전까지만 운영되었다) 인근에 있는 어린이용 테마파크(수영장 등이 있는)의 대규모 홀에서 유초등생 아이들을 모아놓고 초콜릿만들기 & 피자만들기 체험을 묶어서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다.
원래 그런 체험행사는 체험팀에서 담당하여 부족한 인원이있으면 알바를 채용하더라도 그쪽에서 알아서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런 행사는 대개 주말,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만 이루어지므로, 주5일 근무 후 당연히 쉬어야 할 우리 더팩토리_D의 사무직과 생산직을 그쪽으로 동원하기에 이른것이다. 그러면서 멀티플레이어가 되라고 일갈했다.
또, 그렇게 주말에 근무를하면 나중에 하루를 쉬게 해줄테니 이 어려운 시기에 협조해달라고 감언이설을 털어댔다.
이제와서 말이지만, 정말 하기싫은 일 두가지 중 하나가 그것이었다. 그 행사지원에 나가서 했던 일은 뻔하지만, 아이들이 오기 전에 수백 명이 체험해 볼 피자재료를 테이블에 세팅하거나 전기화덕에 피자 굽기, 필요한 식음료 서빙하기, 행사후 설거지하기, 청소하기 등등이었다. 주5일 근무후 쉬어야 할 주말에 몇번인가 그렇게 멀티플레이를 (오전 9시부터 오후6시까지)하게 되는데 끝나는 시간이 조금 일러서 다행히 4-5시경에 귀가를 하게 되기라도하면 사장은 그 상황에서도 말도 안 되게 생색을 내곤했다.
일찍 끝나고 일찍 가게 해준것이 자신의 배려이거나 아량때문이라는 듯이.
기가 찼지만 우리 모두는 골때리는 사장의 태도에 실소를 흘릴뿐 대꾸할 생각도 하기 싫었다.
원래 주말 근무를 하면 평일 급여의 1.5배를 주게 되어 있음에도 그런것은 아예 적용되지 않으며 단지 다른날 하루 쉬는 것으로 대체근무합의서를 썼기때문에, 우리는 불만을 제기해서는 안된다고 번번이 엄포를 놓기 일쑤였다.
사실 계약서를 쓸 때, 우리 모두는 싸인하느라 바빠 주말등 대체근무에 대해 내가 어떻게 합의를 하는지알지도 못한 채 도장을 찍었던 것이다. 나중에야, 이런 상황이 되었을 때에야, 멋모르는 직원이 주말근무는 1.5배...소리를 할라치면 사장은 분연히 그카드를 꺼내어 휘둘러대고는 했다.
그러한 멀티플레이는 체험장뿐 아니라 가을이면 빈번히 참여했던 박람회에서도 발휘되어야 했다. 식품 등의 먹거리 박람회에 사장은 열심히 참가해 더팩토리_D에서 생산되는제품들을 알리려 노력(이부분도 아이러니다. 판촉에는 열심이었으나 평상시 판매는 늘 부진헸고 평소 사장은 제품에 대한 신념따위는 없었기 때문이다.)했는데, 박람회 역시 주로 주말에 열리기 때문에 그 행사장에서 하루씩 동원되어 판촉행사를 하는데도 끌려나갔다.
내가 가장 하기싫었던 일이 바로 박람회에서 하루를 때우는 일이었다. 하기 싫어도 충분한 인원이 없기에 사무직은 물론 생산포장직에 있는 S와 나까지 당연히 동원되기 일쑤였다.
그 박람회가 코로나의 창궐과 함께 취소되는 경우가 늘어나게 되었을 때 속으로 쾌재를 부른 것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