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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

_인생의 새로운 서막인 줄

by somehow Aug 2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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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15에 입사하여 6/1일자로 근로계약서를 쓸때 근로기간은 1년이라 했다.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그후 연장해서 계속 일할 수 있으니 기간설정은 문제가 아니라고 사장은 말했다. 당시에 나는 급여의 40%에 해당하는 금액을 몇달동안 지원받는 신중년적합업무지원대상에 선정되었다고 경리를 통해 대략적으로 알게되었다.

사장 입장에서는 지원이 종료되는 시점 이후에는 재계약을 하고 내 월급을 지원없이 사장이 모두 부담하거나, 재계약을 하지 않고 나를 내보내면 되는 것이다.

그런 사정을 알게 된 나는, 일단 1년이라도 일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지만 미리부터 그후의 거취에 대한 작은 근심의 불씨를 품기는 했다. 그것은 당연히, 일을 시작하면서 차례로 한 사람씩 기간이 만료되었다며, 자금사정이 어렵다며 재계약 없이 직원들을 내보내는 사장의 당당한 행태를 보면서 갖게 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나를 대체로 인간적으로, 존중하는 태도의 사장이 '설마 저들과 똑같은 수준으로 나를 내치지는 않을 것이다'하는 소박한 기대감의 불씨도 함께 꺼뜨리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이미, 그리 길지 않은 시간내에 그 자신의 밑천을 다 까발리고도 그저 자신이 뒤끝없이 호탕한 성격인듯 스스로 착각하고 포장한 채 나를 대하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한번 믿어보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내 마음 속은 두가지 욕망으로 갈등하고 있었다. 더팩토리_D의 사장의 일처리방식과 사람을 대하고 쓰고 버리는 방식 등에서 적잖이 실망하고 낙담한 나머지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하나였다.

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이에 다시 또 어디어디 면접을 보러 다니며, 나이가 많으시네요...하는 냉담한 면접자들 앞에서 아직 열심히 일할 수 있다고 나를 어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갑갑하고 막막하기만 했기에 그냥, 이대로, 눈딱감고 그녀가 제멋대로 굴거나말거나 재계약이 되어서 몇 년만 더 일할 수만 있으면 좋겠다는 절박함도 들끓었다.

그러나 경리를 비롯하여 내 앞에서 더팩토리_D를 떠나간 직원들의, 사장에게는 지원금 끊긴 사람은 이곳에 존재할 의미가 없다,는 일관된 증언들이 나를 조바심나게 했었다.

다만, 계약기간 만료로 퇴사하면 실업급여는 받을 수가 있다니 그것이 그나마 위안라면 그럴 것이었다. 어쨌거나 철저한 '을'이었던 나에게는 어떤 선택의 카드도 없어보였다.

사장에게 다시 선택받느냐 마느냐의 문제만 남아있었다.


실토하건대, 나는 더팩토리_D에 근무하는 2년여 기간동안 여러 차례 다른 직장으로 이직을 은밀히 도모했었다. 일은 어렵지 않았으나 대체로 제멋대로인 사장의 막무가내식 우격다짐식 일 처리방식이 힘들었고, 너무나 열악한 비위생적인 식품공장의 현실이 불만이었기때문이다.

그래서 잠잠히 여기저기 몇번이나 면접을 보러다녔으나, 결국은 더팩토리_D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어딜 가더라도 이곳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는 추측과 다시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는 데는 그 만큼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근심, 그리고 집에서의 출퇴근 거리가 가장 큰 요인이었다. 더팩토리_D는 자차로 운전하여 집에서 불과 7분거리에 있었다. 집근처 산업단지 인근에 더팩토리_D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속력으로 달리지 않고도 매일 왕복 15분 남짓이면 오갈 수 있는 코앞에 일터를 두고, 은밀하게 면접을 보러 다녔던 식품공장들은 대부분 왕복 1시간이 소요되는 거리였다. 더팩토리_D에서의 탐탁치 않은 여러 조건에도 불구하고, 다음주부터 출근하라며 나를 받아주겠다던 새 일터를 발견하고도 결국 나를 스스로 주저앉힌 것은 시간이었다.


지금도 가끔, 지금보다 조금더 젊었던 그때 새로운 곳으로 옮겼다면 나는 현재 좀더 나은 상황일까 추측해본다. 가지 않은 길이었기에 결과는 끝내 알 수 없을 것이다.



아무튼, 더팩토리_D에서 계약종료시점이 되면, 나의 생사에 관한 결정권을 쥔 사장이 어떤 카드를 꺼내느냐가 궁금하던 차에, 뜻밖에도 계약시점으로부터 6개월여가 지났을 시점에  놀라운 소식을 듣게되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내가 당연히 '기간의 정함이 있는' 근로계약자인 줄 알고 있었다. 사장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한다. 그래서 사장은 그 시점에 다시 정부지원을 요청했다고 한다.

새해부터 나를 정규직 즉,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 대상으로 하고 싶으니 급여를 더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신중년적합업무 지원대상으로 나를 선정하던 애초에,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하는 조건으로 채용시 급여를 지원해준 거였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것, 사장은 진심으로 나를 무기계약직으로 삼고싶었던게 아니라 단지 급여지원을 더 받고싶어서 그런 재신청을 한것 뿐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그 속셈과 전혀 다른 상황에 적잖이 당황했으리라 능히 짐작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나도 모르게, 처음부터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였던 것이다. 그런 사실을 정작 지원대상에 올리고 승인받고 하는 일을 했던 경리나 사장이나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자체가 코미디같았다. 나또한 처음부터 쫄보가 될 이유가 없었다. 적어도, 처음부터 나에게는 내가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둘 자격이 주어져 있었고 비자발적 퇴사의 걱정따위는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은 무기계약이다. 그것은 회사마다 정규직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곳이 있고, 정규직이 아닌데 정년은 보장되는 직종을 의미하기도 한다. 더팩토리_D의 경우는 정확히 어느 쪽으로 해석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다만 회사가 일방적으로 해고할 수 없으니, 그나마 안정된 지위를 확보한 것이다.

그런데도, 사장은 그토록 중요한 지원요건에 대해서는 무심한 채 일단 나에게 지원되는 인건비에만 관심이 있었다는 얘기다. 결국, 코로나가 번지기 시작하던 시점에 다들 해고의 시련에 접어들어가는 그때 뜻밖에도 그 시점에서 계약서를 수정하게 되었다.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서를.


최초 급여지원 기간인 6개월이 지나고 다시 한번 급여를 지원받아볼 요량이던 사장은 속으로 아차했을 것같았다. 처음부터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을 뒤늦게 무를 수도 없었으니, 이제와서 나를 자르지도 못하고 마지못해 급여지원의 헤택도 없이 생돈 들여 무기계약직을 쓰게 된 그 속내가 그대로 드러난 떨떠름한 표정으로 툭 이렇게 내뱉었다.


선생님, 우리 회사 망할 때까지 쭉- 다니세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서에 도장을 꾹꾹 눌러 찍은 뒤, 그것은 축하인지 비아냥인지 낙담에 의한 자포자기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황당한 발언이었다. 망할 때까지 다니라니? 대체 무슨 뜻일까.

결국 망하는 것이 더팩토리_D 운영의 최종 목표일까????

그러면서도 한 배를 탔으니 마음놓고 오래 같이 일해보자는 뜻으로 우격다짐 해석하며 그것이 진심이기를 바랐으나 그 경솔한 발언 역시 입에 발린 충동적 언행이었음을 알게 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하루아침에 기간의 정함이 있는 불안한 계약직에서 기간의 정함이 없는 정규직의 지위로 변경되었고, 해고의 위험에서 일단은 비켜서게 되었다.


어쩌면,
내 인생의 새로운
서막이 열리는 것만 같았다.

당시, 함께 일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은근히 나의 지위변동을 부러워했다.

그녀는 더팩토리_D에 들어오기 전 함께 잠시 아르바이를 했던 사탕공장(아래: 가장 열렬한 하루 9화)에서 알게 된 동갑내기 친구 H였다. 그녀도 그 몇달 전에 우연인듯 필연인듯 더팩토리_D에 입사하였던 것이다. 그녀는 경기도 일자리재단의 취업지원 사업의 대상으로서 취업한 경우로, 이를테면 그녀는 일자리재단 소속의 지위를 유지한 상태로서 더팩토리_D에 파견된 것과 같은 상태로 근무했다. 그렇다보니, 그녀의 월급은 일자리재단에서 100% 지원해주었다. 따라서 사장은 그녀를 쓰는데 있어 단돈 10원도 들이지 않고 노동력만 오롯이 활용하고 있었다! 그녀의 근태를 관리하는 것도 월급을 주는 일자리재단이었고 그녀가 근무하던 10개월여 동안 매월 한번씩 매니저가 더팩토리_D에 방문하여 근무환경과 상황, 태도 등등을 형식적으로 체크하고 돌아가는 상황이었다.

H와 나는 서로에게 힘이 되었고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는 위로가 되었다.

나는 그 식품공장의 포장생산직의 지위였고 그녀는 처음에는 체험사업팀의 보조역할로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진작부터 시작된 아프리카돼지열병과 코로나가 창궐하게 되면서 관광객대상의 체험사업장의 개장과 운영자체가 어려운 상황이 되어가자 점차 공장으로 들어와 함께 초콜릿제품 포장일을 하는 경우가 늘어갔다.

즉, 그녀는 사장이 시키는 일은 이것저것 다하는 입장이었다.

월급은 일자리재단에서 받으며 순수하게 노동력만 제공하는 것이다.

사실 이 지점에서 그녀 H는 실수를 했다. 처음부터 그녀는 체험사업팀의 보조인력으로 들어왔기에 해당업무만 하거나 그와 연관된 일만 했어야 한다. 그런데 사장의 모토인 일당백! 정신에 휘둘려서 그야말로 일당백으로 체험사업장에 일이 없을 때는 무슨 일이든 시키는 일은 다 하는 입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장입장에서는 자기 돈 한푼 안 들이고 이리저리 필요한 상황마다 사람을 굴려가며 쓸 수 있었으니 얼마나 달달했을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때 얻게된 극단적인 일당백의 사람부리기경험으로 사장은 훗날에도 사람을 그렇게 부려먹으려다가 혼쭐이 나기도했다. 그얘기는 나중에.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

민법」 제660조제1항에 “고용기간의 약정이 없는 때에는 당사자는 언제든지 계약해지의 통고를 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고 「근로기준법」에 특별한 규정이 없으므로 근로자에게는 계약해지권이 있으나 계약해지 효력은 「민법」 제660조제2항에 의거하여 ‘상대방이 해지의 통고를 받은 날로부터 1월이 경과하면 해지의 효력이 발생’하고, “기간으로 보수를 정한 때에는 상대방이 해지의 통고를 받은 당기후의 일기를 경과함으로써 해지의 효력이 생긴다”(「민법」 제660조제3항)는 제한이 있다.

「민법」 제660조제1항 규정에도 불구하고 「근로기준법」 제23조에 사용자는 정당한 이유 없이 근로자를 해고하지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어 사용자의 일방적인 계약해지권은 제한된다. 다만, 사용자가 파산선고를 받은 경우 근로자 또는 파산관재인은 근로계약을 해지할 수 있으며, 계약해지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를 하지 못한다. 정년으로 인하여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이 종료된 후 정년 이전과 다른 조건으로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 또는 기간의 정함이 있는 근로계약을 다시 체결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 [期間- 定- 勤勞契約] (실무노동용어사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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