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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참을 수 없는 사탕의 무거움

_사탕공장, 달콤한 중노동

by somehow Jun 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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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마침내 마침표를 찍었다.      


온실 속 잡초처럼, 탁월한 재주도 없으면서 그냥 질기게 생존해온 능력 하나로 5주 동안 버티어낸 구제의류 분류작업장에 빠이 빠이를 날렸다.

 

다만 나는 편지 한 장을 썼다. 나를 면접했던 경리직원에게.

출퇴근 기록기에 마지막으로 카드를 철컥- 꽂아 넣기 전, 연애편지라도 되는 듯 그녀에게 내밀었다.


같은 자리에 남아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로 경주마처럼 나아갈 그들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함께 일했던 그들에게는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림자처럼 떠나려 마음먹었으므로 그러는 게 나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때, 한 마디쯤 ‘안녕’을 말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도 한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한없는 찰나刹那에 불과한 그 시간들은 그럼에도 내 생의 한 지점에 틀림없는 흔적을 점점이 남겼을 것이다.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그 순간들은 결코 삭제되거나 건너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_그러니까, 그때는 옳았고 지금은 틀리다.


그 후로 가끔 생각한다.

무례하게 떠났던 나를 그들은 기억할까, 내가 종종 그 시간들을 떠올리는 것처럼.     



그렇게 첫 번째 마침표를 찍고, 곧바로 다른 일자리를 검색하면서도 역시 남편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설 연휴가 지날 무렵, 나는 다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냈다.

집에서 30분 남짓 달려가면 닿는 지점에 있는 사탕공장!

정규직도 계약직도 아닌 아르바이트지만 (8시간 ×시급 8350원=> 종일 근무) 한 달 내내 일한다면 급여는 적지 않을 것 같아 무조건 지원했다. 면접을 보았고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면서 다음날부터 일하게 되었다. 이렇게 쉽게 다시 일을 찾다니, 스스로가 대견하고 기뻤다.

생산되어 나오는 달콤한 사탕을 포장하는 일이라니, 얼마나 다행인가! 구제 분류작업장 같은 먼지도 없을 것이며, 사탕이라는 식품을 생산하는 곳이니 깨끗하고 위생적일 것이며, 사탕 한 알이야말로 한없이 가볍고 달콤한 ‘오브제’가 아닌가. 그런 사탕 한 알 한 알을 포장한다니 생각만으로도 왠지 기분이 좋고 달달해지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탕공장이 마냥 천국은 아니었다.

‘사탕’이라는 이미지에서
저절로 떠올려지던 가벼움, 달달함, 유쾌함... 과 같은 느낌은 이내
바닥에 떨어진 ‘롤리 팝 캔디’처럼 첫날부터
조각조각으로 박살나버렸다.

사탕공장은 규모가 제법 있는 데다 적어도 10년 이상 운영 중인 안정된 사업장이었다. 이미 체계가 잡혀있는 시스템에 의해 잘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그 사업장은 사무동과 공장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일하게 된 공장동에는 온갖 종류의 사탕을 생산하는 생산시설과 내포장, 외포장 시설이 있다. 그곳에서 일하는 인원들을 관리하는 정직원은 사장 아래 과장, 팀장, 공장장 등 몇몇이 있다. 다시 그 아래는 '반장'이라고 불리는 여성 작업반장이 한 명 있었는데 사람들 말로는 그녀 역시 정직원은 아닐 거라고 했다. 반장은 나를 포함한 모든 아르바이트 직원 관리를 도맡았다. 아르바이트를 쓰거나 자르거나, 하루하루 역할을 배당하는 것도 그녀의 몫이었다.

그보다 특이한 것은 '사장님'이 거의 날마다 공장동에 일찌감치 출근해 아르바이트 직원들과 함께 포장 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공장 내 여기저기 다니며 바쁜 구역에서 일손을 더해 주고 초짜들에게는 요령을 알려주기도 했다. 사장이 늘 옆에 있으니 아르바이트들은 물론 과장, 팀장, 공장장, 반장 등 그 누구도 항상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었다. 꼭 그게 이유는 아니라도, 사탕공장은 항상 바빴다. 국내 수요뿐 아니라 해외에도 수출될 정도로 주문량이 많아서 수많은 인원이 하루 종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생산과 포장을 담당하는 아르바이트 직원들 대부분은 나처럼 주부들이었고 외국인 남녀 청년노동자들도 1/3 정도 되었다. 어림잡아도 총인원은 30~40명 이상은 되어 보였다. 일이 더 바쁠 때는 더 많은 인원이 동원된다고 했다.

아르바이트들 중에서도 주로 외국인 남자 노동자들은 설탕과 식용색소를 섞어 사탕을 만들어내는 생산을 거의 도맡았다. 그것은 종일 뜨거운 솥 주변에서 하는 매우 고된 작업이었다.

현장에서 체험하며 알게 된 사탕 생산/포장의 과정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설탕(혹은 물엿, 그 비슷한 다른 어떤 것이 사탕의 주재료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므로 그냥 '설탕'이라고 총칭하자)과 식용색소를 레시피대로 솥에 넣고 펄펄 끓여 섞는다. 서서히 식혀 최종적으로 원하는 모양으로 성형되기에 적당한 정도의 반죽상태가 되면 성형기에 투입한다. 기계가 돌아가면서 사탕 반죽은 형형색색의 사탕들로 성형/토출된다. 그것들은 곧바로 냉각팬이 달린 컨베이어 벨트 위를 지나며 굳어진다. 컨베이어 벨트 끝에 받쳐져 있던 바구니에 사탕 알갱이들이 쏟아져 쌓이면 내포장구역으로 옮겨진다.

롤리 팝 캔디 같은 경우는 컨베이어 벨트 마지막 단계에서 대기하던 포장 인원들이 하나하나 집어 들어 신속하게 비닐포장을 씌우고 금색 끈으로 묶어 1차로 완성해  외포장실로 보낸다.

그 외에도 음식점 계산대 부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디저트 사탕들도 생산되었는데 그것들은 자동포장기에 투입하여 포장되며 수박, 오렌지, 딸기 등 과일 모양이 새겨진 막대 사탕들은 정해진 수량 단위로 한 묶음씩 포장하기도 했다. 특히 어떤 추억의 막대사탕은 완성되면 먼저 자동포장기에 투입해 비닐포장을 씌운 뒤 50~60킬로그램씩 하는 커다란 마대자루에 담겨 1차로 창고에 보관된다. 이후 출시 스케줄에 따라 포장 인원들이 커다란 투명 플라스틱 용기에 그 사탕을 100개씩, 혹은 50개씩 채워 넣고 뚜껑을 닫아 포장하게 된다.

바로 이 과정에서 내가 갖고 있던 사탕에 대한 달달한 선입견이 얼마나 자의적인 것이었는지 경험했다. 그 1차 작업이 이미 언제 이루어졌는지 나로서는 알지 못하는, 추억의 막대사탕이 무려 50~60킬로그램씩 담긴 마대자루를 포장 작업대 위로 옮겨지는 과정이 바로 그랬다. 지게차 따위가 일괄적으로 그런 자루들을 포장실 한켠에 수백 개씩 날라다 놓고 사라지면, 대기하던 포장 인원들이 달려들어 각자 한 자루씩 이고 지고 나른다. 말이 50~60 킬로인 거지, 웬만한 사람의 몸무게에 달하는 그것을, 여자들이, 갑자기 번쩍번쩍 들어서 옮기는 것이다! 첫날 오후던가, 눈치껏 재빠르게 보조를 맞추어 다가가 어느 정도인지 감을 잡지도 못하고 자루 하나를 들어 올리려던 나는 꿈쩍도 하지 않는 무게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러나 주위의 동료 주부들은, 그 무게가 익숙한 듯 요령을 익힌 듯 혹은 온몸의 힘을 긁어 모아 쏟아가며 바쁘게 움직였다. 나는 당혹스러웠다. 한 알 한 알 작고 경쾌한 몸집에 비닐포장 옷까지 입은 녀석들은 반짝거리며 달달하고 앙증맞을뿐더러 보는 것만으로도 유쾌한 기분까지 선사하던 내 머릿속 사탕의 선입견은, 그것들이 수백수천 개씩 커다란 마대자루에 담겼을 때 뜻밖에도 상상할 수 없는 무게로 다가왔던 것이다.


하, 그것은 달콤한 중노동!


내가 그때까지 갖고 있던 사탕에 대한 이미지가 한방에 깨진 첫 순간이었다.


이처럼 사탕을 포장하는 일은 한없이 가볍고 달달하기도, 한없이 고되고 힘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사탕공장은 쾌적했다. 생산/포장되어 공장을 떠날 때까지 사탕이 녹지 않아야 하므로 실내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설정되었다. 때문에 한겨울이라도 굳이 난방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일하는 동안 추위 따위는 느낄 겨를이 없었다. 모두들 종일토록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며, 손과 발이 떨어지도록 열나게 일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식품공장의 특성상 청결과 위생이 중요했다. 사탕이 기계를 통해 모양대로 찍혀 나오다 보면 부스러기가 생기게 마련이다. 때문에 하루 종일 돌아가는 각각의 기계들에서 떨어져 바닥에 쌓이는 사탕 부스러기나 조각들을 작업 중간중간 수시로 쓸어 모아 내는 것과 일과 후 전체 작업장을 매일매일 대청소하는 것도 중요한 작업 과정의 하나였다. 그러지 않으면 사탕 부스러기들이 바닥이나 작업대 등에 녹아 붙어서 다음 작업에 차질을 빚기 때문이다. 생산직으로 첫 취업했던 가정식 간편식품 제조공장의 비위생적인 환경과는 비교할 수 없다.


작업 시작과 동시에, 쌍꺼풀 없는 눈에 칼칼한 목소리로 ‘누구누구 씨 저리로 가세요!’ ‘무함마드! 넌 저거 해!’ 식으로 모여선 사람들을 향해 작업반장  P가 지시를 해대면 자신의 이름이 불린 사람들은 부랴부랴 제 역할을 위해 뛰어간다. 그러고 남은 사람들은 반장의 지휘감독 아래 추억의 막대사탕을 100개씩 통에 쑤셔 넣거나, 달달한 냄새 진동하는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동글동글한 과일맛 사탕 알들을 몇십 개씩 손바닥보다 작은 봉지에 담아 세우거나 한다. 사실, 이 정도까지는 달달하고 한없이 가벼운 노동이다. 그러나 그 가벼운 작업에서도 무서운 속도전이 요구되었다. 늘 빨리빨리, 정확하게 해야 하는 것은 물론 옆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만들어내야 한다. 

처음에는 그 속도전에 익숙하지 않아 허둥거릴 수밖에 없었으니 반장의 다그침 소리가 들릴 때, 그야말로 생생한 생산직의 현장 속으로 들어섰음을 알아차렸다. 구제 분류작업장에서의 속도전과는 또 다른, 더욱 리얼하고 치열한!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생존의 법칙임을 실감했다.


사탕공장에서의 포장작업은 구역에 따라 노동강도에 편차가 심한 편이다. 컨베이어 벨트 양쪽으로 늘어서 앞으로 지나가는 롤리팝 캔디를 재빨리 집어 들어 비닐포장을 씌우거나 금색 끈으로 묶어 내려놓는 일에는 힘보다는 민첩함이 필요하고, 비닐봉지를 실링하는 일 따위는 심지어 쉽고 재미있기까지 하다. 반면, 수박이나, 딸기, 오렌지 등 각각의 모양이 아로새겨진 과일향 진동하는 막대사탕의 경우는 생산 마지막 단계에 깜짝 놀랄 만큼 힘겨운 중노동이 포함되어 있다. 막대가 꽂힌 수박맛, 딸기맛, 오렌지맛 사탕들은 성형/생산되어 냉각팬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위를 천천히 지나간 뒤, 최종적으로 커다란 바구니로 하나둘씩 떨어져 모이게 된다. 한 바구니씩 과일 맛 막대사탕이 쌓이면 바구니가 넘치기 전, 그것을 들어내어 금속검출기를 통과시켜 이물질이 없는지 확인한 뒤 50~60킬로그램짜리 마대자루에 쏟아 넣어야 한다. 그 자루가 채워지면 또 다른 구역으로 자루를 옮겨야 할 때도 있다.

어느 날 아침, 반장의 호명에 따라 그 자리에 투입되면 작업자는 하루 종일 그 앞을 떠날 수 없다. 바로, 과일맛 막대사탕이 쌓인 바구니를 들어 옮기는 작업이야말로 내가 겪어본 사탕공장 일 중에서 두 번째로 힘든 중노동이었다. 사탕 한 알 한 알은 한없이 달콤하고 가벼우나 그 역시 한 바구니에 쌓일 때는 엄청난 무게로 다가왔다.


아, 세상에! 그 작업을 직접 해보기 전에는 짐작도 할 수 없었던 노동의 버거움이란!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 것인지에 대한 자괴감을 느낀 것도 바로 그곳이다. 맨 첫날, 과일맛 나는 작은 사탕 알갱이들을 조그만 비닐봉지에 십 수개씩 넣을 때는 일이 너무 쉬워서 속으로 코웃음을 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단순한 과정이 무한 반복되자 어느 순간부터 팔이 아프고 목이 아프고 다리, 허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때 우연히 한쪽에서 최종 외포장 작업을 하는 사람을 보았다. 그는 손쉽게 커다란 골판지 박스에 작은 종이박스로 포장된 상품들을 몇 개씩 채워 넣고 테이핑을 하고 포장이 끝난 박스들은 자바라 컨베이어 위에 올려 보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그 일이 너무나 편하고 쉬워 보여서 그 작업자가 부럽기까지 했다. 얼마 후 마침내, 그렇게 부러워하던 외포장 박스작업을 하게 되었다. 나는 신이 나서 열심히, 작은 종이상자에 포장되어 나오는 상품들을 큰 박스에 채워 넣고 테이핑을 하고 자바라 컨베이어에 올려 밀어 보내곤 했다. 한 번 두 번, 그 일은 다른 일들과 마찬가지로 무한 반복되었다... 조금씩 땀이 나고 힘이 들기 시작했으며 나중에는 팔과 허리와 손뿐 아니라 온몸이 다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속으로, 작업을 멈출 수 없으므로 계속 움직이면서, 나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그 후로도 나는 번번이 다른 사람들이 하는 작업들을 부러워했다. ‘저 일은 참 쉬워 보이는데,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 그리고 막상 그토록 쉬워 보이던 작업을 하게 되면, 그때마다 스스로를 향한 실소를 또다시 금치 못했다.


아, 이런 바보 같으니라고!

그제야 나는 분명히 깨달았다.
한 시간 두 시간, 아무리 쉬운 일도
하루 종일 무한 반복하다 보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그야말로,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는 진리眞理를!   

그럼에도 나에게 사탕공장은 또 다른 이유에서 뜻밖의 의미로 기억되는 장소이다. 특별한 인연을 만난 곳이기 때문이다. 포장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나선 첫날, 많은 한국인 주부들 중 우연히 탈의실 겸 휴게실에서 친절한 미소를 가득 담은 H의 똘망똘망한 두 눈과 마주친 것이다. 나보다 먼저 그곳에서 일하고 있던 그녀와의 만남을 우연이란 표현만으로는 좀 부족할 듯하다.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녀와 나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이가 같았고, 나와 마찬가지로 남편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하러 나왔으며, 나와 같은 천주교 신자이며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했으며 무려 18년 동안이나 피아노 학원을 운영했다는, 나로서는 깜짝 놀랄만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서로에 대해 하나둘씩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우리는 금세 뜻이 잘 통하는 동료이자 친구가 되었다. 체구도 조그만 H는 뜻밖에도 어찌나 열심인지, 내가 아직 일에 서툴러서 허둥댈 때도 선배답게 거침없고 재빠르게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여기는 빨리빨리 움직이고 열심히만 하면 돼!라고 속삭여주었다. 그로부터 우리는 지금까지도 함께 일하거나 만나고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다.


빨리빨리, 열심히. 사탕공장은 하루 종일 통틀어 20분의 휴게시간과 1시간의 점심시간 외에는 한시도 쉬지 않고 매우 바쁘게 돌아가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퇴근 후 집에 가면 저녁상을 치우기 바쁘게 곯아떨어졌다. 나는 다행스러웠다. 온종일 정신없이 힘들게 일하고 돌아가면 딴생각할 겨를도 없이 기절하듯 잠에 취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이 몸이 고될수록 어쩐지 정신은 더욱 맑아지는 기분이 든 것은 느낌 탓이었을까.


그렇게 열렬히 사탕공장의 달콤한 중노동에 취한 지 5일째 밤이던가, 나는 당황스러운 메시지를 받았다.

바쁜 일이 끝나서 일손이 필요하지 않으니 다음날은 나오지 않아도 될 것 같다며, 다시 연락하겠다는 것이다.

이 무슨 개소리?

알고 보니, 반장이 작업량의 많고 적음에 따라 매일매일의 포장 인원을 조절하는 것이다. 나처럼 초보이거나 반장의 눈에 일이 서투르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은 인원 조정이 필요한 순간 가차 없는 우선순위로 '대기' 통보 대상자가 된다!

갑작스러운 반장의 문자 통보에 당혹스러워하며 나는 빛의 속도로 머리를 굴렸다. 알바든 뭐든 꼬박꼬박 일당만 받을 수 있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안일함이 스스로의 발등을 찍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일을 시작한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하루 8시간씩 주 5일을 꽉 채워 일하면 아르바이트라도 당연히 받을 수 있는 주휴수당이 지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명백한 위법임을 알면서도 그 점에 대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고용노동부 등에 고발하면 되겠지만, 그랬다가는 본인뿐 아니라 모두에게 원치 않는 피해가 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업주는 그래도 일을 할 거면 하든지 하는 식으로 당당했다.


사탕공장에 다닌 지 겨우 5일 만에 이른바 무한 대기발령조치를 당한 나는 하루도 놀면서 기다릴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구직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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