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10. 또 다른 경험

_F25에서 B2까지

by somehow Jul 15. 2020
아래로


나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내가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면 대체로 당혹스러워할, 의아해할 만한, 그럼에도 나는 정직한 노동자가 되기 위해 이미 필드로 나선 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뜻이 맞을 것 같은 친구를 사귀고 다소 마음의 위안이 되며 의지를 삼았던 사탕공장에서의 짧은 경험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뒤로하고 나는 또다시 구직활동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워크넷을 활용하기로 했다.

워크넷이란, 고용노동부의 한국 고용정보원이 1999년 4월 1일에 인터넷을 이용하여 구인자와 구직자를 연결시켜 고용안정을 강화하고자 개설한 웹사이트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바로 그 사이트에 구직신청을 했다. 처음에는 시에서 운영하는 취업담당부서로 연락했었다. 담당자가 워크넷을 알려주며 그곳에 먼저 등록을 하는 것이 구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나는 즉시 워크넷에 개인정보를  등록하고 희망직종을 선택하기도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미 수년 전에 그 사이트에 내 전공과 경력에 따른 구직신청서를 업로드해둔 상태였다. 그 당시에 어쩌다가 벌써 그렇게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우연히 알게 된 사이트에 별생각 없이 시험 삼아 올려둔 것 같았다.

나는 나의 새로운 경력을 위해 별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은 나의 경력과 학력을 지우고 새로 희망하는 직종을 업데이트했다.

 

생산-환경미화-가사도우미


취업담당자에게서 곧 연락이 왔다. 새로 업데이트한 희망직종에 따라 안내된 일자리는, 집에서 20-30분 거리의 신도시 신축 아파트 미화원이었다. 아파트 미화원이 하는 일이란, 계단 청소가 주임무다.

나는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도 대걸레 등의 청소도구를 가지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여성 미화원들을 항상 보아왔다. 그들은 그리 힘들이지 않고 15층 아파트 계단을 날마다 청소하고 있었다. 특히 내가 사는 106동의 1-2라인을 담당하는 60대 중후반으로 짐작되는 여성분의 경우 마주칠 때면 늘 사람 좋은 미소 가득 담긴 얼굴로 즐겁게 일하는 것을 보면서 언제부턴가 가끔 생각했다. 참 쉬워 보이는데... 저 정도는 나도 나이 좀 들어서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오케이.

취업담당자의 설명을 듣자마자 머릿속으로 그녀가 포함된 동영상이 떠오른 나는 즉시 하겠다고 답했다.

사탕공장을 떠나 구직의사를 밝히자마자 반나절도 되지 않아 다시 일자리를 구하게 됐다. 나는 노동자가 되기로 결심했고 그 순간, 어떤 일이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라면 일단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나섰다. 그러다 보니 좀 더 힘들거나 좀 덜 힘들거나의 차이는 있을 것이지만 그 당시 어쨌든 1-2개월 동안 거의 쉼 없이 달리고 있었다.  문득, 실업률이 어떠니, 일자리가 있네 없네 하는 뉴스들이 생각났다. 이렇게 쉽게 일자리가 구해지는데, 대체 왜 일자리가 없다는 것일까.

2019년 2월 당시 통계청 기획조정관 혁신행정담당관이 작성한 우리나라 고용동향 기록을 보면 이렇다.

▣ 15~64세 고용률(OECD 비교 기준)은 65.8%로 전년 동월과 동일
▣ 실업률은 4.7%로 전년 동월 대비 0.1% p 상승    
○ 실업자는 130만3천 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3만8천 명(3.0%) 증가
○ 청년층 실업률은 9.5%로 전년 동월 대비 0.3% p 하락
○ 계절조정 실업률은 3.7%로 0.7% p 하락
▣ 2019년 2월 취업자는 26,346천 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263천 명(1.0%) 증가     


그해 2월의 고용동향을 보면 전년 동월보다 취업자가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취업자 증가 연령대는 60세 이상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2월, 60세 이상 취업자는 39만7천 명이나 늘어 1982년 7월 통계작성 이래 최대 급증했다. 특히 65세 이상은 26만2천 명 증가했다. 이는 그해 1월 정부가 시작한 노인일자리 사업의 영향으로, 재정을 통해 인위적으로 일자리를 늘림으로써 60세 이상 고령층과 임시, 일용직 중심, 36시간 미만의 단시간 일자리가 증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경제를 이끄는 중추 역할은 30~40대임에도 그들의 취업자 수는 오히려 24만 명이 감소하여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청년층(15~29세)의 실업률도 사상 최악을 기록해 일을 더 하고 싶어도 못하거나 잠재적인 실업자 등이 사상 최대였음이 현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취업의 기회가 번번이 주어진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감격스러웠다. 어차피 가방끈이나 경력과는 무관한 일을 하기로 작심했으니 부도덕하거나 비인간적인 일만 아니라면 무엇이든 왜 못할 것인가. 해보지도 않고 물러설 수는 없지 않겠나.


나는 취업담당자가 알려주는 곳으로 연락처를 받아 들고 달려갔다. 해당 아파트 단지의 미화를 책임지는 ‘청소반장’을 만나 짧은 면접에 임했다. 아파트 미화원으로 일하는 평균 연령에 비해 내 나이가 좀 젊고 경험이 없는 초보자라는 점에 반장은 다소 우려를 표했다. 그러나 나는 해보겠다고 열의 있게 대답했다. 특히 최근에 신축된 건물이라는 점이 왠지 마음에 들었다. 유명 브랜드이며 25층짜리 고층아파트에서 각자 1~2동씩 맡아 일주일 동안 나름의 스케줄에 따라 쓸고 닦고 하면 되는 것이다. 그 과정은 내가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되었으므로, 단지 현재 내게 필요한 것은 하겠다는 의지와 각오뿐이라고 확신했다.

나의 열정에 반장은 그 자리에 채용을 결정해주었다. 바로 다음날 아침 8시까지 출근하면 되는 것이다. 근무조건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8시간이며 1시간은 점심시간이다. 주 5일은 그렇게 진행되고 토요일은 오후 1시까지 근무하는 것이다. 토요근무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으나 피할 수 없었으므로 감수하기로 했다.

다음날 새벽, 나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사탕공장에 출근하는 것처럼 고요한 집안을 가로질러 나섰다.   


잠깐 여기서, 내가 처음 사탕공장에서 일하게 됐다고 했을 당시의 남편과의 설왕설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넘어가야겠다.

비밀스러운 첩보작전이라도 꾸미는 것처럼 난데없이 식품공장에 취직했다던 마누라가, 얼마 지나지 않아 구제분류 공장으로 옮겼다며 다시 남편의 뒤통수를 쳤다. 그때까지만 해도 마누라의 정신나가 보이는 선택과 결정에 황망하고 어처구니없었음에도 끝내 뜯어말리지 못하고 어찌어찌 마누라와 또 그 스스로와 타협하고 물러나 지켜보는 정도로 자괴감을 감추고 있던 남편은, 또 어느 날 뜬금없이 사탕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는 나의 통보에는 새삼 제대로 벌컥! 했다.

‘사. 탕. 공. 장?? 네가 왜 사탕공장에서 일을 하냐? 내가 네 경력에 맞는 곳 소개시켜 줘?’

정말, 진짜로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과 목소리로 그가 그때 다시 물었었다.

‘왜.... 뭐가 어때서? 구제 분류작업장보다 깨끗하고 덜 힘들고 나는 너무 좋은데.’

그때도 진심이었다, 나는. 그리고 말을 이었다.

'전에도 말했듯이 이제는 기대를 접었어.... 걱정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 알겠는데, 한걸음 물러나서 그래 어떻게 하는지 두고 보자 하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길 바라. 내가 서툴지만 새로운 일에 열렬히 몰두하는 동안 당신도 당신 일에 더욱 몰두하길 바라.... 나는 이렇게 몸 쓰는 일이 재미있어! 그리고... 그동안 전혀 접해보지 못했던 요즘의 경험들이 언젠가는 내 삶에 양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지금의 경험들을 훗날 기록으로 남길 수도 있잖아?’

그 순간 뜻밖에도, 남편은 답답하던 안갯속에서 열쇠를 찾은 것처럼 손가락을 튕긴다.


‘아, 그래...! 당신이 좋은 글을 쓰려면
더 많은 경험들이 필요하지.
직접적인 경험들은 더욱 좋은 재료가 될 거야.
맞아! 좋아, 그러면 약속해.
지금의 현장 경험을 나중에 꼭 글로 쓰겠다고!
그러면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어.
월급을 받을 게 아니라 돈을 내고 다녀야지!’

설득하기 위해 얼떨결에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소리를 했던 건데, 남편은 바로 그 지점에서 자신이 ‘마누라의 일탈’을 용납할 수 있는 이유를 찾은 것 같았다. 나역시 그의 논리를 듣고 보니 뭐,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지금의 경험들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으나 하는 데까지는 해볼 것이며, 그 하루하루를 일기 쓰듯 기록해보는 것도 시간낭비는 아니지 않겠나. 어쩌면 낯설고 경우에 따라서는 다소 충격적이기도 했던 노동현장의 현실과 처우 등에 대해 겨우 비로소 눈을 뜨게 됐으니 삶에서 그 모든 경험의 기록들이 쓸데 없지는 않을 것 아닌가.


그로부터 2년이 다 돼가는 현재 진행형 인간으로서 나는 열심히, 잘, 생산직 근로자로 일하며 하루하루 우여곡절과 엇갈리는 희로애락의 감정들을 양념이라 여기며 나아가고 있다. 또한 바로 그렇게 얼덜결에 내뱉었던 ‘현장 경험의 기록’을 작심하고 술회하기 시작하기 했으니 가끔은 정말로 인생이 ‘말하는 대로’ 펼쳐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다음날부터 시작된 아파트 미화원의 일상은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쉬운 듯하면서도 결코 쉽지 않은 경험이었다. 25층짜리 아파트가 20여개 동 남짓되는 대규모 단지였기에, 미화원 총인원은 십수 명 정도 되었다. 한 사람이 1과 1/2동씩 맡아 주 6일 동안 재량껏 돌아가며 청소하는 것이다. 형식적으로는 두 명이 한 팀을 이루어 움직이지만 일은 결국 각자 하게 되어있다. 미화원 대기실은 두 개의 방으로 나뉘어 각각 예닐곱 명씩 함께 이용했다.

미화원들은 마스크를 쓰고 작업에 편한 옷을 입고 장갑을 끼는 것으로 복장을 갖춘다. 그리고 아래 바퀴가 달린 커다란 하늘색 통에 빗자루와 쓰레받기, 막대걸레 몇 자루와 손걸레, 스프레이형 세정제 등 몇 가지 청소도구를 담아 밀고 자신의 담당구역으로 흩어진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꼭대기층까지 올라간 다음, 각 층의 계단과 공용공간 등을 빗자루로 쓸고 대걸레로 한 번씩 닦으며 아래로 아래로 계단을 타고 내려간다. 처음엔 할 만했다. 살살 쓸고 걸레질 한 번씩 쓱하면 일이 끝나고 다시 다음 층으로 이어져 내려간다.

25... 23......19.... 18.... 17.... 어느 순간, 빗자루와 막대걸레를 그러쥔 두 손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두 팔과 두 손, 두 다리를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계단을 내려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도 15층.... 아직도 10층....언제쯤 바닥층에 도달할 것인가. 끝이 나기는 할까... 내가 지나오는 공간이 깨끗해지는 만큼 기분은 좋지만 온몸에 놀라운 고통이 밀려온다. 마침내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2월 중하순의 날씨는 아직 쌀쌀한 늦겨울임에도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흠뻑 땀으로 젖어들었다. 한걸음 한걸음마다 살이 쭉쭉 빠지는 느낌이 생생하게 들었다. 일을 시작한 뒤로 아무리 먹어도 허리사이즈가 나날이 줄어갔다.

그제야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옆에서 보기엔 그렇게 쉬워 보이던 일이 이렇게 힘들었구나. 늘 웃음 띤 얼굴로 일하시던, 내 아파트 미화원 아주머니가 생각났다.

나중에 그분께 내가 이 일을 해보았다고 이야기했을 때 그녀는 적잖이 놀라며 말했다.

'이런 일 아무나 하는 줄 알아요...? 집에 가면 사방이 아파서 이렇게 해야 돼요!'

그러면서 옷 속에 감추어져 있던 자신의 팔뚝을 보여주었다. 온통, 파스 투성이었다.

'그러게요, 정말 대단하세요... 맨날 웃고 다니시길래 그렇게 힘든 줄 몰랐어요!'


아, 그제야 나는 무조건 뛰어들면 하지 못 할 일, 안 될 일은 없다는 무모한 도전이 어쩌면 만용이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 그렇게 2주를 버텼다.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지만 아파트 환경미화원의 일과역시 무한 반복이다. 자신에게 맡겨진 구역으로 가서 오전 4시간, 오후 4시간 동안 성실하게 쓸고 닦으면 된다. 다만, 오늘 빛이 나도록 닦았다 해서 내일은 쉬어도 되는 게 아닌, 쓸고 돌아서면 다시 흙먼지가 쌓이는 다중이용시설의 특성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늘 완벽을 유지하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다. 늘 그런 곳이니까. 수년씩 그 일을 해온 경력자들은 그들만의 노하우가 있었다. 아무리 해도 안방처럼 청결을 유지할 수 없는 곳이므로 나름대로의 기준을 정해 시간차를 두고 '관리'하는 것이 요령이다. 그래서 그들은 지치지 않고 수년씩 그 일을 해낼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처음 일하겠다고 갔을 때 20여 명의 미화원 중에는 나보다도 10년 정도 젊은 40대 주부도 있었다. 내 나이도 그 업계에서는 젊은 축에 속한다는데 그녀는 아예 일찌감치 그 분야로 나선 듯했다. 그래서 어린 그녀는 나보다 선임이고 나보다 경력도 많은, 내가 보기엔 베테랑이었다. 함께 일하게 된 미화원 아주머니들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한편, 초보인 내가 행여 하루 이틀 만에 힘들다며 도망가기라도 할까 봐 요령껏 일하는 방법을 열심히 알려주었다.

그들 대부분은 60대 중후반 정도의 나이대로 짐작되었는데, 젊어서 어떻게 살아왔든 간에 나이 들어 더 이상 다른 곳에 취업이 안 되거나 혹은 자녀들이 모두 성장해 나간 뒤 무료하게 노년을 보내기보다 적은 수입이라도 스스로의 몸을 움직여 활동하는 대가로 벌어들이는데 의의를 두고 있었다. 그들은 잠깐의 휴식시간이나 점심시간이면 각자의 자녀들 이야기로 담소를 나누며 고단함을 털어내고 에너지를 충전하고는 했다. 이제 난생처음 그들의 생활 반경으로 들어선 나 같은 하룻강아지로서는 다 이해할 수도 알 수도 없는 삶의 경력과 사연들로 점철된 그들이 나이를 잊은 채 묵묵히 자신의 삶에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었던 그 시간들이 나에게는 매우 소중한 경험이었다.

제3자의 거리에서 '아파트 청소나 하는 사람들'이라는 선입견에 갇힌 이들은 결코 알 수 없는 이야기. 그들은 사는 게 많이 힘들어서, 오로지 경제적인 이유로 늙어서도 쉬지 못하고, 마지못해 청소도구를 부여잡고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는 막다른 인생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부모로서 여력이 되는 한, 스스로 경제활동을 하고자 하는 남다른 의지와 책임감이 강한 여인들이었다. 물론 때로는 힘들고 지칠 때도 있으며, 소위 갑질을 일삼는 입주민들의 등쌀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과의 약속, 사회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잠시 스스로를 낮추고 좀 더 낮은 곳으로 기꺼이 내려갈 줄 아는 지혜로운 이들이다.

고급 아파트에 산다고 그 인격 자체가 저절로 하이클래스가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그들은 종종 생생하게 체험하곤 한다. 제 잘난 맛에 아파트 미화원들에게 이러니 저러니 정도를 벗어난 잔소리나 해대는 입주민 따위, 그저 말 상대하기 귀찮으니 그냥 '네-네-'하는 것뿐이라는. 그 정도로는 그들 자존심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 것이다.


그래, 나는 아주 조금 알 것 같아졌다. 가장 낮은 곳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성실히 해내는 이들이야말로 가장 지혜롭고 존엄한 존재에 버금간다는 것을.


나는, 아직 멀었다....


하루 이틀은 그저 해볼 만했다. 일주일이 넘어가자 빠르게 지쳐갔고 안 그래도 마른 체형인데 살이 쭉쭉 빠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힘 조절을 못하고 아파트 계단을 열렬히 오르내리다 보니 어느 순간, 곧 지쳐 쓰러질 것만 같았다. 2주째 들어서자 나는 몹시 괴로운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다는 생각이 매일매일 매 순간 이어졌다. 그 지옥 같았던 구제 분류작업장에서도 한 달을 꽉 채워 버텼었는데, 내가 느끼는 고통의 강도는 더 강력했다. 꼭 해보겠다고 호기 있게, 꼭 시켜달라고 사정할 때는 언제고 겨우 2주 만에 스스로 수건을 던지려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미화원 생활 2주째는 일을 하는 매일매일 고통과 갈등과 죄책감 속에 지나갔다. 결국 그만두기 2-3일 전에 청소반장에게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나는 경솔하게 뛰어들었다가 또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것만 같아서 너무나 미안했다. 쌩초보인 나를 믿고 기회를 준 반장과 모든 동료 아주머니 미화원들께 더 참지 못하고 돌아서겠다고 말하는 게 죄송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일단은 멈추어야 했다.

청소반장님과 얘기가 끝난 뒤 나는 이내 사탕공장을 떠올렸다. 그곳은 언제나 아르바이트를 구하니까, 한번 해보았으니, 그리고 그곳에서 사귄 친구 H가 아직 일하고 있으니, 다시 한번 일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의 아파트 미화원으로서의 2주는 고단함과 아쉬움 속에 마무리되었다.














         

이전 10화 9. 다시 길 위에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