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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비정규직의 비애

_하루살이의 슬픔

by somehow Jul 2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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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5일,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열렬히 바라던 초콜릿 공장에 출근을 시작했다.

나까지 아르바이트 신입은 모두 6명. 필리핀에서 온 결혼이주여성 한 명과 20대로 보이는 여자아이 두 명과 청년 둘이 포함되어 있었다. 첫날, 사무실에 모인 우리는 관리자의 설명에 따라 포괄적 근로계약서라는 것을 작성하고 비밀유지 서약서에도 사인을 했다.

생산직으로 나선 후 처음 써보는 계약서. 특히 비밀유지 서약서, 란 이곳에서 일하며 알게 되는 영업상 비밀에 해당하는 내용을 외부에 발설하지 않겠다는 내용일 것으로 짐작되었는데 자세히 읽어보지는 않았다. 시급은 8,350원이며 주 5일 40시간 근무조건이며 주휴수당도 주어진다는 내용이 명시되어있었다. 또한 퇴사하려면 최소한 1개월 전에는 미리 알려주어야 한다는 내용 등 구체적인 근무조건이 나열되어 있었다. 앞서 다녔던 사탕공장 반장의 주먹구구식 인력관리방식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근로계약에 대해 명확하고 체계적으로 관리되는 것으로 보아 더욱 믿음이 가고 아르바이트일망정 열심히 일해 정규직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고무적인 의욕이 샘솟았다.


계약서 작성과 동시에 위생복 일체를 지급받고 곧바로 생산현장에 투입되었다. 업무지시와 처리방식이 체계적인 것은 물론 위생관리 역시 철저했다. 이를테면 일과시간 중에도 정확히 한 시간마다 알람처럼 스피커를 통해 특정한 음악이 흘러나오곤 했는데, 그럴 때는 모든 근로자들은 일제히 하던 일을 멈추고 근처에 놓인 알코올 분무기로 자신의 손이나 몸, 주위에 스프레이 하여 소독하는 과정을 하루 종일 반복하도록 되어있었다. 식품회사이니만큼 위생관념이 철저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사가 합심하여 지키는 모습에서 그 어떤 식품공장보다 더욱 신뢰가 갔다.

일해보니 초콜릿은 사탕과 달라서 포장에서도 무조건 빨리빨리가 적용될 수 없을 듯했다. 초콜릿은 자칫 깨지거나 부서지기도 쉽다는 사실을 첫날 깨달았다. 사탕은 굳으면 딱딱한 상태가 되어 포장단계에서 빨리빨리 담으라는 요구가 당연시되었다. 그러나 초콜릿은 아무리 단단하게 굳어도 손으로 만지는 순간 체온에 의해 녹을 수도 있고 얄팍한 판형의 경우에는 파손될 수도 있었다. 나는 늘 정신 바짝 차리고 빨리빨리 손을 놀려 최선을 다했다. 일 못한다고 짤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첫 출근 후 초콜릿 공장 첫 일주일이 되기 전 수요일에는 야근을 요구받았다.

다른 아르바이트생들도 야근을 하기로 했다 하니 나 역시 마지못해 하게 되었으나 남편에게는 경험 차원에서 스스로 자원했다고 말했다.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남편은 야근을 못마땅해했고 그를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다.

야근 일정은 오후 5시 반 정상근무가 끝난 후 배식되는 저녁식사를 하고 밤 9시까지 일과시간에 다 못 끝낸 생산과정을 진행하는 것이다. 집까지 차로 10분 거리라 그리 부담되지는 않았으나 하루 종일 서서 일한 끝 무렵에는 어쩔 수 없는 피로감이 느껴졌다.

내가 속한 디저트 생산 1팀의 관리자는 팀장과 주임 두 명이 있었는데 직원과 아르바이트생을 대하는 태도는 사탕공장의 반장과 비교될 정도였다. 강압적이거나 재촉하거나 닦달하지 않으며 필요한 일을 하도록 지시하고 제대로 하도록 독려할 뿐이다. 한동안 나는 모든 상황을 사탕공장과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 내 경험의 우물이 그 정도였기 때문이다.

매주 월요일 아침에는 모든 직원이 모여  위생교육을 받거나 여러 나라의 인사말을 배우고 사장의 훈화를 들었다. 그리고 4월의 첫날에는 그 달에 생일이 있는 근로자들을 앞으로 불러 모아 생일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격려금 봉투를 지급하는 등 직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신경을 쓰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사장은 적지 않은 비율의 외국인 근로자들과 한국인 직원들이 차별 없이 함께 어울려 일하기를 당부했다. 그와 같은 분위기가 상호 협조와 협력의 근로환경을 만드는 듯했다. 그동안 다녀본 몇 군데의 생산직 환경 중에는 가장 우호적이고 인간적이며 정상적인 분위기로 생각되었다. 그럴수록 더욱 꾸준히 다니고 싶다는 욕심을 갖게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디저트 1팀의 일은 어렵지 않으나 야근을 종용하는 분위기와 주 5일 근무로 확인하고 들어왔으나 토요일 근무까지 강요하는 분위기가 점점 부담되기 시작했다.  


어느덧 2주째, 금요일이 되었다. 조금씩 하루하루 일에 익숙해지고 사람들과도 아주 조금씩 가까워지며 잘해보자며 스스로를 독려하던 무렵이었다.

오전, 간밤의 주문량에 따라 생산을 시작해야 하는데, 어쩐지 공장 분위기가 전날과도 다르게 느껴졌다. 최근 프로모션 하여 그동안 생산 출시되어오던 컵케이크가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주문이 두 종류 각각 100여 개씩 밖에 안 들어왔다며 술렁거렸다. 왜지? 다음날이 토요일이라 보통이라면 주말을 대비하여 엄청난 물량의 주문서가 도착해야 맞는데...

결국, 오후가 되자 비상이 걸렸다. 공장에 상주하지 않는 사장까지 실사를 나온다는 소리가 들렸다. 심지어 우리 디저트 1팀은 일이 없으니 다른 초콜릿 팀에 지원을 나가 종일토록 박스 접기만 해야 했다. 그러던 중 오후 3시경, 사무실로 모이라는 통보를 받고 갔을 때였다. 


"오늘까지만 일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게 뭔....?

느닷없는 해고 통보였다. 그것은 사탕공장에서 일이 없으니 당분간 쉬라던 반장의 통보를 받았을 보다 더욱 생생하고 충격적이었다. 아르바이트여도 열심히 하면 정직원도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던져주고, 제조상의 비밀 서약서를 쓰고, 포괄적 시급 근로계약서까지 썼기에, 적어도 이런 식으로 하루아침에 쓸모 없어졌으니 나가라는 통보를 하리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쨌든, 나를 포함한 아르바이트생 4명은 최대 2주 만에 그렇게 한방에 훅-잘렸다. 처음 함께 시작했던 이들 중에 몇몇은 이미 하루 이틀, 일주일이 되기 전에 스스로 그만두었음에도 청년 한 명은 나와 함께 끝까지 버티어내고 있었으나 총기간은 길지도 않은 달랑 2주였다. 나머지 두 사람은 일찌감치 중도 포기해버린 사람들 후임으로 나보다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뒤에 들어왔으니 불과 일주일 남짓만에 일터를 잃은 셈이다. 나를 뽑았던 과장은 무척 난처한 표정으로 해고를 통보했다. 그 자신의 뜻이 아님을 알고 있으니 그를 원망할 수는 없었다. 가차 없는 갑작스러운 통보가 당황스러울 뿐.      



그렇게 허탈하게 알바에서 짤린 뒤 주말을 쉬고 맞은 월요일 4월 8일. 언제나 나의 강퇴 소식은 나만의 비밀인 채로, 주말 동안 뒤져 찾아낸 일자리 정보를 가지고 또다시 필드로 나섰다. 그로부터 며칠 동안 나는 적어도 대여섯 군데 사업체를 찾아다니며 면접에 임했다. 블라인드 제조업체 의료용 비닐장갑생산업체, 또 한 곳은 집에서 가장 멀었던 쇼핑백 공장 등이 있다. 또 하나는 엘이디 조명 조립생산업체.


간단히 말해서 블라인드 제조업체 흔히 가정이나 사무실 등에 설치하는 블라인드의 기본 형태를 조립하는 일이었다. 4대 보험은 적용되고 최저시급을 지급하나 중식은 제공되지 않으며 결근과 지각은 절대 안 된다는 조건이 의아했다. 아프거나 집안의 돌발상황 등으로 본의 아니게 결근이나 지각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강제한단 말인지... 결국, 그런 경우에는 급여에서 제한다는 의미였다.

의료용 비닐장갑생산업체는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던 곳이다. 꼭 일하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흔히 우리가 아는 가볍디 가벼운 비닐장갑이라니! 얼마나 매혹적인가. 어느새 꾀가 나는지 이왕이면 가벼운 물건을 다루고 생산하는 일을 찾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 공장에는 직접 몇 번이나 연락을 해서 그날 아침 일찍부터 면접을 보고 적극적으로 취업의사를 밝히기도 했었다.

쇼핑백 공장 면접을 보기 위해 집에서부터 달려가야 하는 거리가 30분이나 넘을 정도로 꽤 멀고 길이 험한 느낌이 들었다. 대부분의 공정이 기계로 돌아가고 마지막에 완성된 쇼핑백이 나오면 그것을 검수하고 적정수량만큼씩 포장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었다. 일 자체는 어렵지 않으나 문제는 공장의 작업환경이었다. 종이와 손잡이에 쓰이는 나일론 끈 등이 기계에 자동으로 투입되고 접히고 마무리되는 그 자동화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기계 소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어찌나 시끄러운 지 상대방의 말소리가 제대로 들리지도 않을 정도여서 공장을 구경시켜주는 사장과도 대화를 주고받기 어려웠다. 그 외에도 엘이디 조명 조립공장에도 면접을 보았다. 하루에 몇 군데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니 조금씩 피로감이 몰려왔다. 대부분의 경우, 면접자들은 우선 내 나이가 많다는 점을 들먹이며 경험이 없다는 점에서도 채용을 망설이는 듯했다.

엘이디 조명 조립공장에 관한 이야기는, 그와 연관해 의료용 비닐장갑생산업체 관해 먼저 이야기해야겠다. 엘이디 공장과 비닐장갑공장은 같은 날 면접을 보았으나 사실 나는 비닐장갑 공장에 더 취업하고 싶었다. 그런데 먼저 연락이 온 것이 엘이디 공장이었다. 솔직히 말해, 가는 곳마다 나이를 들먹이는 상황에서 내가 더 원하는 비닐장갑공장에서 연락이 오리라는 확신이 없었던 나는 먼저 연락 온 엘이디 공장에 나가겠다고 답을 해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시 간 후 비닐장갑공장에서도 연락이 와버렸다! 나는 순간 당황했다. 이를 어쩌나... 그리고 나는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말다. 엘이디 공장은 내일부터 나오라는 것이고 비닐장갑공장은 이틀 후부터 나오라는 조건이었으니, 내가 좀 더 머리를 굴렸더라면 비닐장갑 공장에도 알겠다고 해버리면 해결될 일이었다. 그런 뒤, 다음날 엘이디 공장에 나가 보고 마음에 들어서 계속 다닐 마음이 굳혀지면 그때 가서 비닐장갑공장에 번복 의사를 밝히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멍청한 나는 머뭇거리며 비닐공장 측에 엉뚱한 핑계를 대며 그 자리에서 취업포기 의사를 전해버린 것이다.

결국 엘이디 조명 조립공장은 다음날 하루 출근 후 그만두어버렸으니, 비닐장갑공장에 여지를 남겨두었더라면 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음날 출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잠깐, 비닐장갑공장까지 포기해가며 선택 버튼을 눌렀던 엘이디 조명 조립공장에서 단 하루 만에 뛰쳐나와야 했던 이유는 꼭 기록해야겠다. 그것은 한마디로 납땜 때문이었다. 조명부품 조립과정에서 전선을 기판 따위에 고정시키기 위해서는 간단한 납땜 작업이 필수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그 출근 첫날 알게 된 것이다. 내 바로 옆자리의 선임자가 문득 이러저러한 도구들을 끌어당겨 어떤 작업을 시작하자마자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며 야릇한 냄새가 맡아졌다. 그녀는 언제나 그래 왔던 자신의 임무인 듯 자연스럽게 납땜을 시작한 것이다.  환기도 되지 않는 지하동굴 같은 어두컴컴하고 쿰쿰한 냄새조차 묵직하게 깔린 창고형 작업장에서 그녀는 자기 앞의 작은 조명을 켜고 숙련된 기술자처럼 하얀 연기를 피워 올렸다.

나는 뜻밖의 상황에 당황했다. 엇, 납땜....

그 작업을 목도한 순간부터, 첫 출근 후 내게 주어지는 역할들을 숙지하면서도 왠지 잘 못된 선택인 듯한 막연한 느낌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언제 이곳을 그만두겠다고 말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을 보냈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그들과 잡담을 하면서도 나의 머릿속은 온통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어수선하고 초조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엘이디 조명 조립 공장을 그만두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비닐장갑공장에 가지 않은 것을 아주 오랫동안 땅을 치며 후회했던 기억이 있다. 차마 하루 만에 퇴사 의사를 밝히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던 나는 집에 돌아와 사장에게 이메일로 퇴사 이유를 언급하며 뜻을 전해야 했다. 그러자 사장은 뜻밖에도 매우 화가 난 답장을 보내왔다. 납땜은 자신도 30년 넘게 하는 작업이며 인체에 무해한 납을 사용하므로 자신을 포함해 어떤 직원들도 지금까지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해명을 했다. 덧붙여, 나에게 그런 식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며 살지 말라고 따끔하게 지적했다.

나는 하루만의 퇴사 결정이 대단히 신중하지 못하며 바람직하지 않은 자세임을 알고 있으며 그 점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뜻을 전하는 정도로밖에는 나의 의지를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그즈음의 나의 행보에 대해 되돌아보았다.

지난 연말 이후로 시작된
생산직으로서의 일상이 가져다준 내 삶의 변화를 더듬어보았다.
안정된 직장에 미처 자리잡지 못한 채
나의 의지와 희망과 상관없이
시시각각 변하는 생산현장의 상황에 따라
하루살이 목숨처럼 떨려나기를 반복하는 비정규직의 설움과
막막한 현실에 대한 불안감도 절실하게 느껴졌다.

그즈음 나는 어느새 심리적으로 절박해져 있었던 것 같다. 빨리, 어디든 평범한 정규직으로 자리 잡고 싶다는 무지한 열망 때문에 좀 더 신중하게 행보를 결정하지 못하고 경솔하게 행동했던 것이다.

결정은 신중해야 하며 아무리 급하다 해도 성급하게 결정해서는 안된다는 뻔한 사실을 확인했다.


그 외, OO약품은 그 제약회사에서 생산되는 의약품들 중에서 인터넷 주문이 가능한 약품들을 창고에서 찾아다가 포장 발송하는 물류센터와 같은 일을 하는 곳이었다.

집에서 30분이 넘는 거리라 멀기는 했으나 막상 가보니 일 또한 할만했다. 하지만 거의 매일 밤 10~11시까지 야근이 있고 일요일에도 오후 2~6시까지 근무를 해야 한다는 조건이 부담스러워 포기해야 했다.

또한 물티슈 생산공장에도 가보았다. 물티슈가 깨끗하고 위생적일 것으로 생각되어 긍정적인 호기심이 발동했던 것이다. 허나, 막상 공장 안을 들여다보니 여자들도 하는 일이긴 하지만 물티슈 한 장 한 장이 모여 쌓인 것을 옮기는 것은 적잖은 중노동이며 최소한 주 3회 이상의 야근이 필수적이라는 점도 사장이 설명해주었다. 집과의 거리도 20-30분 정도여서 부담스러웠다.

△△OO이라는 상호의 종이박스 제조공장 면접의 경험 또한 씁쓸하다. 전에 다녔던 사탕공장과 가까운  지역에 위치한 그곳은 골판지 박스가 아닌 단단한 종이로 선물상자나 포장상자류를 생산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화장품이 담긴 상자나 한과, 건강보조식품 등의 최종 포장용기를 떠올리면 될 것이다. 사장의 안내로 공장 내부를 둘러보게 되었는데 종이가 단단하게 압축된 원단을 기계로 절단하는 과정에서 먼지가 심하게 날릴뿐더러 상자 형태로 완성되는 공정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뜻밖의 과정이 있었다. 

무심코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내부에는 본드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 작업을 하는 여성근로자들 중 누구도 마스크 등의 보호장구를 착용하지 않은 채 아무렇지 않게 그 작업을 수행하고 있었다. 모두들 후각이 마비되어 그 지독한 본드 냄새를 느끼지 못하는 듯했으나 그렇다고 인체에 무해하지 않을 리는 없다고 생각되었다. 


뿐만 아니라 사장은, 공장 사정이 좋지 않아 최저임금을 맞춰줄 수도 없다고 말했다. 

시급 8,350원에 8시간이면 일당 66,800원이지만 그냥 뚝 잘라 일당 65,000원으로 책정되어있으며 현재 근로자들 모두 그렇게 계산된 월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또한 일당 외에는 4대 보험이고 뭐고 아무것도 책임져 주지 않으며 아르바이트 개념이지만 일은 꾸준히 할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내세웠다. 공장 근처에 사는 주부들이 부업 삼아 일을 하는데, 장기간 본드 냄새 흡입으로 인한 후유증이 생긴다 해도 회사에 어떠한 책임을 묻거나 요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 선심 쓰듯, 일하고 싶으면 내일부터라도 시작하면 되는데 그런 상황을 잘 알고 동의하면 나오라고 나에게 결정권을 주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사무실을 씁쓸하게 돌아 나올 때, 덩치도 큰 골프가방이 한쪽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보았다.

수많은 생산직 업체를 다니다 보니 일의 종류와 대우 등이 천차만별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물론. 최소한의 법적인 보호도 받지 못하면서 일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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