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직으로 첫 발을 뗀 이후 이제까지 내가 만난, 혹은 나를 스쳐간 사람들 가운데 기억에 남는 이들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들을 처음엔 선입견으로 바라보았었다. 그러나 그들과 더불어 날마다 무려 8-9시간씩 일하며 일상을 함께 하는 동안 그것은 순전히 무지에서 비롯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 선입견이란, 특히 몸으로 때우는 생산직 근로자들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으며 오로지 생계유지가 노동의 유일한 목적일 것이라는 오해였다. 물론 내가 만나고 함께 일하던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패러다임을 세심하게 들여다볼 시간은 없었으나, 그럼에도 그들 대부분은 나의 그릇된 편견처럼 지극히 고단하고 절박한 삶에 헉덕이고 있지 않았다.
오랫동안 한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회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실직 후 다시 구제 분류작업장에서 1년 넘게 일하고 있던 나보다 나이 많은 주부. 그녀는 쉽지 않은 일을 하면서도 자신만의 끈기와 의지력으로 빠른 속도와 정확도를 관리자에게 인정받고 있었다. 그녀의 장성한 자녀들은 번듯한 직장에 다니고 남편도 성실한 직업인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그토록 열악한 환경과 힘겨운 노동에 하루 종일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도 그녀가 쉬지 않고 일을 하는 이유는, 단지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스스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더 큰 의의를 두었기 때문이었다.
또 어떤 군인의 아내인 30대 여성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군인 사택에 살고 아직 어린 자녀가 있으니 굳이 한겨울 추위를 뚫고 날마다 밖으로 나서지 않아도 되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언제나 싱글벙글한 얼굴로 동료들과 분위기 맞춰가며 즐겁게 일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일이 힘들었으나 반복하다 보니 점점 욕심이 났다고 그녀는 말했다. 자신이 맡은 구제의류 분류작업의 정확도를 높이고 싶은 의욕이 스스로 불타올랐다는 의미였다. 또한 아이를 돌보는 것보다 차라리 밖에서 일하는 게 더 낫다고도 말했다. 그것은 아마도 육아의 고단함을 털어놓은 것일 게다.
충청도 어디서, 서울 어느 대학에 합격한 아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올라왔다는 내 또래의 주부, 그녀는 먼저 살던 곳에서 하던 일에 비하면 한겨울 추위가 그대로 느껴지는 먼지 구덩이에서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구제 분류 따위는 너무 쉽다고 말했다. 그녀는 매일 열심히 일해 버는 돈으로 아들을 뒷바라지할 수 있다는 사실에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는 듯했다. 내가 구제 분류작업장에 처음 들어갔을 때 나보다 며칠 입사 선배였던 그녀는 왠지 측은한 외모 때문에 속으로 동정심을 느끼기도 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넉넉한 살림은 아닐지언정 결코 누군가에게 동정을 받을 이유가 없는 당당하고 훌륭한 주부이며 어머니였다.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그곳 임시숙소에서 지내는 지게차 운전 직원도 있었다. 그 중년 남성은 그렇게 열심히 일해 번 돈을 가족들에게 보내는 일을 보람과 낙으로 삼고 있었다. 그것은 가족에 대한 건실한 책임감과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자의 모습이었다. 한 달에 한 번쯤 가족들에게 다녀온다는 그는 외지에서 혼자 지내는 편치 않은 삶을 기꺼이 감당하며 열심히 살고 있었다.
반면, 사탕공장에는 나 같은 주부 아르바이트 외에 수많은 외국인 근로자들도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카자흐스탄인가 어딘가에서 왔다는 젊은 남녀 근로자들은 오래 일했을뿐더러 숙련도가 높아서 사장과 반장의 신임을 얻고 있었다. 사장은 공장 근처에 숙소까지 얻어줄 정도로 그들을 필요로 했다. 당시 그들은 머지않아 비자가 만료되면 고국으로 돌아갔다가 와야 했는데, 사장은 그들이 꼭 다시 돌아와 계속 일해주기를 바랄 정도였다. 대부분 20~30대 젊은이들인 그들이야말로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이 먼 땅까지 찾아온 것이다. 분명한 목표가 있기에 말은 안 통해도 반장의 바디랭귀지일지언정 빠르게 이해하고 어렵지 않은 단순작업에 적응해 들어갔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나에게 당황스러운 기억을 남겨준 그녀가 있다.
미리 얘기해두자면, 나는 그 사람에 대해 아무런 악의도 선의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그 사람을 통해 겪은 뜻밖의 경험을 기록하고 싶을 뿐이다.
내가 거쳐온 어느 공장의 사무직이었던 그녀는 우연히 처음 본 순간부터 왠지 나를 매우 친절히 대했다. 한두번 마주친 뒤부터 그녀는 나에게 '꼭 한번 차 한잔 같이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나를 그냥 좋게 봐주는 것이 고마울 뿐이고 친절하게 말 걸어주니 기뻤을 뿐이었다. 그 후 어느 날, 연락이 왔다. 반가운 마음에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그녀는 나중에 한번 꼭 따로 만나자며 약속을 잡았다. 우연찮게 나의 이력을 알게 된 그녀는 나에게 특별한 시인 한 명을 소개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시인? 왜?... 그런 의아함이 들었으나 그녀의 호의를 무시할 수 없어서 알겠다고 답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 마침내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뜻밖에도 누군가를 소개하겠다더니 혼자 나와 있었다.
-그분은 아직 안 오셨나 봐요?
-아니요, 제가 그분에 대해 먼저 알려드리겠다고요...
-아... 그렇군요?
나는 그때까지도 그녀가 왜 내게 그 누군가를 소개한다는 것인지, 물론 내가 왕년에 글 좀 썼다니까 그러는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굳이 뭐하러?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기에, 뜻밖의 답변에 약간 어이없기도 하면서도 그 누군가를 직접 만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다행스럽기도 했다. 그로부터 그녀는 그 시인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분은 시인일 뿐 아니라 음악가이고 운동선수이며 훌륭한 화가이세요! 펜을 잡으면 한 번에 시 몇 편은 뚝딱 지으시고, 오케스트라를 멋지게 지휘하시고, 축구를 하면 매 경기마다 맹렬한 실력으로 젊은이들을 모두 제치고 나아가 수십 골씩 넣으시며 농구를 하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실력으로 경기를 압도하 시죠. 그림도 그렸다 하면 천재적인 그림이 나오시고요! 그분은....그분은....
아 이게 뭐지? 불현듯, 수년 전 뉴스를 떠들썩하게 했던, 시사고발 프로그램의 자료화면에서 보았던 황당한 동영상이 그녀의 내레이션과 오버랩되며 아슴아슴 떠오르는 듯했다. 나는 그녀의 '그분'에 대해 들을수록 어처구니없는 느낌에 표정관리가 힘들 지경이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는 것일까... 하면서도 너무나 진지한 그 표정을 망칠 수가 없어서 고개만 끄덕이며 들어주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종교 없으시죠?
그것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물음이었다. 그러나,
-아니요, 저는 천주교예요!
망설임 없는 나의 대답에 그녀는 순간적으로 당황한 듯하면서도 곧 평정심을 유지하며 말을 이었다.
-아, 그러시군요... 저희 종교는요,
불쑥 그녀가 '저희 종교'라는 표현을 꺼내자 나는 머릿속으로 희미하게 떠오르는 무언가를 짐작하기 시작했다. 보통 종교가 무엇이냐고 물을 수는 있고, 그에 대응하여 나의 종교는 무엇이다, 이를테면 불교다 천주교다 기독교다 이슬람교다... 식으로 말을 하는 게 자연스러울 텐데 그녀는 문득, '저희 종교'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내가 알고 있는 종교가 아닌 제3의 종교를 의미하는 것임을 깨달으며 앞서의 황당무계한 작가 소개와 이야기를 연결시킬 수 있었다.
한마디로 그녀의 종교는 일반적으로 '사이비'로 분류되는 특정 종교였으며, 결국 자신의 종교지도자라는 '그분'을 나에게 이야기한 것도 나를 포섭하기 위한 노력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더 나아가 자신들의 신전에 함께 가보자고 노골적으로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 신전은 '그분'께서 간밤 꿈속에 계시를 받으시고 설계도를 그려 그것을 토대로 그분의 영적 능력과 신도들이 힘을 합쳐 완성한 것이라고 했다. 남편과 아이들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분'을 향한 깊은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그분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 했다. 한마디로 겉보기에 녹록해 보였고, 한번 꼬드겨 데려가 볼만하다는 생각으로 나를 만나자고 공을 들였던 것이다.
나는 허탈했다. 나는 다만 그녀와, 나에게 호감을 보여준 그녀와 차 한잔하며 사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었으나, 그녀는 다른 꿍꿍이를 품고 나를 만난 것이다.
나는 한숨을 쉬고 이렇게 말했다.
-저는, 당신과 종교이야기를 하러 나온 게 아니에요. 그리고 저는 종교가 있고요. 당신이 어떤 종교를 믿든지, 그 안에서 평화를 찾았다면 상관없는데, 굳이 나를 설득하거나 이끌려고 하지 말아 주세요. 저는 당신과 차 한잔하며 인간적으로 즐거운 시간을 갖길 바라고 나온 것인데, 앞으로 또 이런 이야기를 하려거든 연락하지 말아 주세요.
그러자 그녀는 당황한 듯 한발 물러서며 수습하려 애썼다.
-언짢으셨다면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얘기 하지 않을 게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녀와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웃는 얼굴로 헤어졌으나 그후 다시는 만날 수 없다. 나 같아도 더 이상 연락 못할 것이다. 그녀는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유명한 사이비 종교지도자 '그분'을 신봉하는 열렬한 추종자였다. 그녀가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든지 상관은 없으나 사실 그녀가 종교라고 말하는, 그녀가 믿는 대상 '그분'은 터무니없이 우상화되고 신격화된 교활한 한 인간이 아니던가. 어설프고 심지어 어눌해 보이기까지 하던 그 세치 혀놀림이 얼마나 현란하기에 고등교육까지 받은 그녀가, 수많은 순진한 사람들이, 현혹당하고 이성조차 마비되어 무조건적으로 추종하게 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내 기준에 '그분'은 단지 여신도 성추문 사건으로 징역까지 살고 나온 불한당 같은 자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도 그 자를 따르고 추종하며 세력 확장을 위해 사람들을 회유하고 포섭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기가 막혔다.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희미해져 간다고 해서 우상화된 인간의 부도덕성과 부조리가 희석되거나 정당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 자신도 그런 진실을 그저 외면하고 있을 뿐, 이를테면 어떤 과업을 수행하듯, 제 눈에는 얼핏 어리바리하고 만만해 보였을 나를 대상으로 얼토당토 않은 몇 마디 어불성설로 꼬드길 수 있다고 믿었다는 사실이 황당했다. 아 내가 호구였구나!
그동안 내가 만났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황당하고 충격적이었던 경우라고 할 수 있으나, 나는 그저 그녀가 불행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외에도 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지나왔으며 현재도 많은 이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그들은 나의 훌륭한 파트너이며, 아무리 나보다 어리거나 부족한 이들일지라도 내가 배울 점을 한가지씩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나는 그들을 통해 겸손과 성실성에 대해 배우고 하루하루 조금 더 나은 근로자가 되어가고 있다고 믿는다.
|기회가 된다면 훗날, 내가 만났던 더 많은 이들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