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무척 더웠다.
특히 바로 지난해 여름, 더팩토리_D에서의 2년째로 접어든 그 나날들은 더욱 더.
코로나때문에 매출이 줄어들고 생산도 최소한으로 줄어들고 하다보니, 포장담당인 나의 일거리도 줄어들고 더팩토리_D의 모든 직원들의 일과시간은 날마다 고통이었다.
날도 더운데, 조립식패널로 만들어진 공장은 어마어마하게 뜨거워도 공조시스템으로 되어있는 불량 에어컨조차 눈치가 보여 마음대로 틀수도 없었다. 우리는 고통분담차원에서 사계절내내 일정한 실내온도가 유지되어야 맞는 식품공장의 찜통속에서 묵묵히 숨죽여 하루하루를 견디었다.
그런중에도 사장은 그나름대로 열심히 무언가를 위해 바쁘게 뛰고있는 것 같기는 했다. 일도 없이 출퇴근을 반복하고 월급날은 꼬박꼬박 다가오고, 열심히 일도 하지 않고 월급만 받아먹는 것같아 우리도 늘 사장에게 '송구'했다. 사장은 월급날 즈음이면 더욱 히스테릭해졌다. 그나름으로도 그즈음의 고통을 삭이느라 노력하고 있는 것을 우리들도 충분히 짐작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 지난한 노력이 제대로 존중받지 못한 것은, 참 미안하게도 사장 자신의 싸고 경망스러운 입방정때문이었다. 그녀는 늘 자신이 얼마나 우리를 위해 개고생하는지 제입으로 떠벌였고, 그런것도 모르는 너희들은 그저 놀면서 월급이나 받으니 얼마나 속편하겠느냐고 화풀이를 해댔다. 종종 비좁은 사무실 원탁앞으로 모두를 불러모아놓고 말이다.
그러고도 분이 안 풀렸는지, 여름철 한바탕 비라도 내리고 나면 몰라보도록 씩씩하게 웃자라곤 하는 회사마당돌담사이의 잡초 제거작업에 모두를 동원했다.
한여름이 되기 전에는, '일도 없는데 오늘은 잡초제거작업이나 합시다. 모두 마당으로 모이세요!'라는 사장의 말이 한두번은 고맙기도 했다. 심지어 지혜롭다고도 비아냥거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직원들이 할 일을 찾아내다니 말이다! 물론, 그럴 때는 사장 자신도 먼저 팔을 걷어붙이고 제초도구들을 들고 나서긴 했다. 그리고 커다란 톱을 들고 뒷마당쪽의 나뭇가지에 매달려 아무렇게나 쓱싹쓱싹 잘라내기도 했다. 화풀이하듯이.
우리들도 이빨 나간 녹슨 낫이나, 쇠스랑, 제초용 가위 등을 하나씩 집어들고 담벼락 돌틈의 잡초들을 서투르게 베어내곤했다. 아무리 쉬운 일도 계속 하다보면 지치게 마련이다. 그러나 겨울도 아닌 여름철에 한두시간씩 땡볕아래서 낫질, 가위질을 해대다보면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나중에는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비애감에 젖어들었다.
아무리 회사에 일이 없어도 풀베기까지 시켜도 맞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부당하게 느껴졌으나 나를 포함해 아무도 저항하거나 반항하지 않았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꼬박꼬박 월급이라도받을 수있는 일자리가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이냐는 생각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버틸 수 없을 것같았다.
사장도 어쩌면 바로 그런 우리들의 약한 마음을 이용한 것이 틀림없었다.
일도 없는데, 풀베기 좀 하랬다고 자기들이 무슨 할말이 있겠느냐,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만약에 누군가 싫다고 한다면,
싫어? 싫으면 그만두든가?라고 말하면 그만일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그 더운 한여름이 다 가도록 몇차례에 걸쳐 더팩토리_D의 우리들은 땡볕아래 온몸이 땀에 흠뻑젖어가며 풀베기를 해야만 했다. 참, 그렇게 풀베기에 내몰린 뒤에는 가끔 짜장면을 사주는 당근작전도 사장은 잊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얻어먹는 짜장면은 맛을 느끼기 어려울만큼 우리들의 기분은 이미 아주 더러워진 뒤였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내가 더팩토리_D를 그만두기로 마음먹을 즈음, 아는 노무사에게 이 일에 관해 문의한 적이 있었다. 아무리 경기불황 탓으로 일이 없다 한들 사장이 제맘대로, 원래 하기로 정해져 있는 일이 아닌 풀베기같은 터무니없는 노동을 시켜도 되는 것인지 말이다. 나는 노무사의 합리적인 해결책을 기대했으나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식의 애매모호한 답변만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