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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Mar 09. 2017

잘못된 선택

_우리 아이들을 자살로 내모는 사회에 붙임




“너…이렇게 공부 안하면 고등학교도 못 간다! 정신 차려야지…? 응? 세미야!”

중학교 3학년 세미는 일주일에 세 번 정도 교무실에 불려가 담임선생님께 이런 소리를 듣곤 한다. 

그때마다 세미는 한숨을 내쉴 뿐 아무 대답도 못한 채 속으로 이렇게 뇌까렸다.

‘나도 잘하고 싶지…내 인생인데…당신보다 덜 하겠수…띠바…’


3년째 할머니와 둘이 살고 있는 세미는 부모님의 이혼 당시받은 충격 탓인지 아무 일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부모의 이혼도 충격이었지만 아무도 자신을 원하지 않아 할머니에게 버려지듯 맡겨졌다는 사실이 세미로서는 너무나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그전까지는 작고 귀여운 외모에 공부도 잘하는 편이었던 세미는 그때의 스트레스로 탈모와 불면증에 시달렸다. 뿐만 아니라 폭식 증세를 보이더니 키는 자라지도 않은 채 체중만 불어나 이제는 주위로부터 ‘뚱뚱하고 돼지 같다’는 놀림을 들을 정도가 되어버렸다. 

한창 예민한 사춘기소녀에게 닥쳐온 현실은스스로 감당하기에 벅찬 것이었고 어느새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외모에 대한 놀림과 절망적인 가정환경 등 모든 것이 공부 따위는 이미 뒷전으로 밀어냈을 뿐 아니라 자포자기의 상황이 되어갔다. 그런 세미와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사람은 같은 반친구 선주였다.

선주도 마찬가지로 성적은 하위권이며 뚱뚱한 외모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나마 선주는 부모님과 형제들과 함께 살았지만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형편 때문에 우울감이 컸다. 선주도 세미처럼 고등학교 진학을 걱정할 정도의 성적 때문에 늘 선생님의 핀잔을 듣곤 했다.

“크크크…우리 담탱이 불쌍하다…맨날 우리한테 공부 좀 하라고…입도 안 아픈가…좀 있으면 연합고산데…야, 우린 좀 틀리지 않았냐…?”

세미가 물었다.

“뭐가 틀려?…아~ 고등학교 가기 틀렸다고?”

선주가 되묻자 세미가 이렇게 대꾸했다.

“그래! 연합고사가 코 앞인데 뭐…이제 와서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다 틀린 거지…쩐다…진짜…”

“그래도…요즘 세상에 고등학교는 나와야 어디 가서 취직이라도 할 수 있는 거 아니니? 중학교만 나왔다 그럼 우릴 완전 바보취급하는 거 아닐까?”

선주는 은근히 걱정스러운 듯 말을 이었다.

“그럼 지금이라도 열심히 책을 파보든지…나는 빨리 이 지옥을 벗어나고 싶을 뿐이야! 그러고 나면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에서 살고 싶어…”

세미와 선주는 둘 다 학교생활에 대해 어떤 아쉬움도 없었다. 하루하루가 절망적이고 슬프게 시작되고 끝났으며 늘 자신이 순간적으로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수도 없이 생각해왔던 것이다.

“그건 나도 그래…그래도 너랑은 속마음 터놓고 얘기하고 지낼 수 있어서 좋아…우리 중학교 졸업하고 나면 헤어지는 거냐…슬프다…영원히 같이 지낼 수 있다면 좋겠다…”

선주가 이렇게 말하며 슬픈 표정이 되었다. 세미는 선주의 손을 잡으며 위로하기 시작했다.

“그래…죽고 싶을 때도 많았는데…그때마다 너와 함께여서 버틸 수 있었지…만약에 헤어지게 된다면 정말 살고 싶지 않을 거야…그 생각만으로도 살기 싫다…차라리 함께 있을 때 죽어버릴까...”

“맞아…나도 죽고 싶어…죽으면 얼마나 마음이 편하고 행복할까…날마다 생각해…집에 가면 하루 종일 노점에서 일하다 돌아온 엄마아빠가 밤새도록 부부싸움을 하지…두 동생들 챙기는 건 내 몫이고…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시간이 없다! 헐…그런데도 뭐가 조금 마음에 안 들면 엄마는 날 들들 볶아…이유도 없이 이리저리 시달려…그런데 무슨 고등학교야! 훨훨 날아가고 싶을 뿐이야!”

선주가 나쁜 기억을 떠오르는 듯 울먹거렸다.

“바보야 울지 마! 니네 부모가 비정상이야…우리 부모처럼. 우리 부모는 날 버렸고 니네 부모는 버리지만 않은 것 뿐이지 대하는 건 별 차이가 없어! 정말 역겹지 않니? 자식을 아무렇게나 팽개치다니! 뱃살이 접혀서 진물이 나…아…쓰려…넌 안 그러니? ㅋㅋ”

“야 나도 그래! 뱃살만 그러냐? 사타구니도 완전 맞닿아서 걸을 때마다 살이 쓸려 죽겠어, 다 헐었어…세미야! 우리 같이 죽을래? 난 아무리 생각해도 앞으로 살아갈 용기가 없고 희망도 없어…모든 게 나를 외면해! 죽어서 하늘을 날아다니면 얼마나 자유롭고 행복할까! 난 죽고 싶어, 진짜로!”

뜻밖의 말에 세미는 눈빛을 반짝이며 다가앉았다.

“정말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어쩜 나랑 생각이 똑같니! 혼자 죽는 것보다 둘이 손 꼭 붙잡고 가면 하나도 안 아프고 안 외로울 거 같아! 나도 벌써부터 그런 마음 먹고 있었어…언제든 기회만 되면…나를 괴롭히고 슬프게 한 사람들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갈 거야!”


세미와 선주는 어느새 자신들의 장래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속삭이게 되었다. 

함께 시험공부를 하겠다고 세미의 방에서 밤을 지새우게 된 두 소녀는 이불 속에서 더욱 구체적인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얼마 후, 고등학교 연합고사일이 되었다. 

모든 중3 아이들이 수험표를 챙겨 시험장으로 향할 때 세미와 선주는 각자의 유언장을 품에 넣고 근처의 고층아파트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2012년에 실시된 통계청의 ‘2012년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만 15~24세 청소년 가운데 지난 1년 동안 자살하고 싶다는 충동을 한 번이라도 느낀 비율이 8.8%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한 2010년 기준 청소년의 사망 원인 중 1위는 놀랍게도 자살이었으며 청소년 10만 명 당 자살자 수가 13명에 이른다.


우리 청소년들이 자살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자신이 처한 여러 가지 상황들이 고민의 이유가 되고
그것을 해결할 방법으로 선택하겠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고민을 나눌 상대가 없거나
정서적으로 지지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생각하는 힘이 있는 이상, 고민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그것에 대하여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하느냐는 사람마다 다르다.
중요한 것은 혼자만의 고민으로 끌어안고 해결책을 찾으려 애쓰기보다
주위와 소통하고 대화함으로써 보다 긍정적인 답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자살 우려가 높거나 자살 충동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이에게
효과적인 대화 방법은
종교적인 설교나 도덕적 학문적으로만 그럴 듯한 어려운 논리가 아니라,
상대의 고통과 처지를 이해하며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는 것이다.

이야기 속 두 소녀, 세미와 선주의 경우를 살펴보자.

두 소녀는 불우한 가정환경과 형편없이 낮은 성적, 우울한 미래 그리고 외모에 대한 고민을 가졌다는 공통점 때문에 친구가 되었다.

언뜻 보기에 세미와 선주는 서로 대화할 상대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같은 아픔을 가졌다는 공통점이 오히려 긍정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게 하는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다. 두 소녀는가족은 물론 어느 누구에게도 터놓지 못하는 고민을 서로 허심탄회하게 나누었다. 그럼으로써 ‘그래도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하고 멋진 미래를 위해 노력하자’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늘어나지만 긍정적인 해결책을 생각하기보다, 결국 함께 자살하자는 쪽으로 진행되어 비극적인 결말을 맞고 말았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서 정서적으로 지지자가 되어 주고 아픔에 대하여 공감을 해주어야 할 가족들은 세미와 선주에게 무관심했다. 당신들의 손녀가, 딸이 어떤 일로 절망했는지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했다면, 두 소녀가 얼마나 외로웠을 지에 대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주위 사람들은 세미와 선주의 동반자살을 막을 수 없었을까.

존재를 무시당하고 관심 받지 못하고 사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행복하며 그로써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외치고자 했던 두 소녀의 죽음의 행진을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작은 관심과 따뜻한 대화를 통한 소통이다. 또한 그것은 가장 일차적이고 중요한 공동체인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부모 자녀간의 소통을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자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렇다고 취조하듯 어떤 이야기를 끌어내려 애쓸 것이 아니라
평소 자녀의 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자녀가 하는 사소한 한마디에도 귀 기울이고
의미를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만약 세미나 선주의 가족들이 이렇듯 사소한 한마디 한마디를
소중하게 여기고 귀담아 들었다면
결과는 분명히 달라졌을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에 마음을 열고 귀담아 들어줄 때
자녀들도 부모의 조언이나 충고에
긍정적인 자세로 수용하려는 태도를 갖게 될 것이다.

이러한 부모 자녀간의 대화와 소통은 특별히 시간을 정해놓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로 온가족이 모이는 식사시간이나 함께 집안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될 수 있다. 모든 가족들이 바쁘지만 적어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으니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다. 다만 마음자세가 문제이다. 부모 형제가 ‘내 일도 바빠 죽겠고 처리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철없는 아이들의 우는 소리나 들어 줄 시간이 어딨나’하는 생각을 한다면 애초부터 가족 간의 대화나소통은 불가능할 것이다.


선주나 세미도 누군가 먼저 작은 관심을 보여주었더라면, 한순간에 모든 고민과 문제가 해결되지는 못하더라도, 죽음 외에 다른 해결방법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함께 노력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청소년들은 자기정체성이 형성되어 가는 과정이므로 모든 사물이나 가치에 대한 관념 역시 정립되지 못한 단계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비난이나 평가, 시선 등이 중요하게 느껴질 수 있는 시기이다. 그러나 타인에게 어떤 평가나 비난을 받는 것이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도 가족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다.


주위의 누군가가 삶의 의지조차 꺾일 만큼 어떤 고민을 안고 있다면 주위의 또 다른 어른이나 전문가에게 알려 도움을 줄 수있는 방법을 찾아보길 바란다. 만약 그런 절박한 고민의 주인공이 바로 ‘나’라면 용기내어 부모님과 주위 분들에게 마음을 열고 진심어린 대화의 시간을 가져보기를 당부한다. 
그동안 부모님이 나의 고민을 헤아리려 하지 않았다 해도 끝까지 침묵하지 말고 다시 한 번 더 손을 내밀어 보자. 어쩌면 부모님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너무 바쁘고 힘든 일로 자녀에게 좀 소홀했을 수도 있다. 
자녀가 세상을 버리기를 바라는 부모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정말 절박한 선택을 하기 전에 반드시 크게 소리 내어 외치는 용기를 갖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이 있듯,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에는 아직 너무 젊으니까!





                                                                                -201311다시읽기*청소년을 위한 사랑의 기술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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