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에 가다
기존 실습생에 의하면, 월~금까지의 이용 인원은 40여명 정도이고 주말인 토요일에는 빠지는 인원이 많아서 대략 20여명 정도라고 했다.
나의 정기 실습 일정인 토요일 실습 대상도 그분들이었다.
생애 첫 사회복지 실습 일정의 대강은 이렇다.
오리엔테이션같지 않은 오리엔테이션을 형식적으로 끝낸 뒤, 실습생들은 센터의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며 보조를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어르신들의 곁에서 그들의 동태를 파악하고 식사 시간이 다가오면 테이블 정리와 수저와 물컵 놓기, 어르신들이 각자의 식당자리로 이동을 돕거나 화장실사용을 보조한다. 배식타임이 되면 배식을 돕기도 한다.
오전의 주요일정은 인지활동프로그램이다. 가벼운 치매부터 중증의 치매까지, 대부분 치매환자인 어르신들의 인지능력을 유지하고 퇴화를 막기위한 의도에서 제작되고 매일 일정한 시간을 투자하여 프로그램이 이루어진다. 그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색칠공부나 만들기였다. 쉽게 생각하자면, 유치원 어린이들이 할 만한 수준이다. 다양한 그림 도안이그려진 종이와 색연필을 나누어주고 적당한 색을 골라 채워 완성하는것, 혹은 색종이와 풀, 가위, 종이컵 등을 나누어주고 앞에서 사회복지사가 알려주는 대로 자르고 오려붙여서 특정한 모양의 사물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러한 일정은 시간표대로 매일 반복되었다. 직원들의 설명에 따라 실습생들도 어르신들 곁에서 색칠하기나 오려붙이기 등의 활동을 보조하였다.
처음에 나는 그렇게 수준 낮은 활동을 어르신들에게 시키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아무리 치매상태라 해도 세상물정 모르는 아이들이나 할만한 활동을 시키다니, 노인들을 너무 우습게 아는 것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잠시 곁에서 어르신들을 도우며 지켜본 결과 그것은 선입견이었음을 깨달았다.
어르신들이 대부분 치매환자이기는 했지만 그중에는 인지기능이 정상인 경우도 분명히 있었다. 그분들은 확실히, 그런 활동을 시키는 것을 귀찮아하거나 기분 나빠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러한 활동이 아이들이나 할 놀이라는 생각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날마다 비슷한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한 지루함에서 연유한 듯했다. 그러니까 정신이 아직 온전한 어르신들 중에서는 그런 활동에 참여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다른 활동, 이를테면 운동기구를 이용해 신체활동을 하거나 한자맞추기 낱말퍼즐 활동을 하거나 하는식으로, 인지능력에 맞는 활동을 할 수도 있었다.
노인주간보호센터의 이용기준 자체가 경증치매인 인지장애등급부터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인지상태인 경우는 사실 센터이용이 불가능하다. 그러니, 장기요양지원을 받으려면 어떻게든 장기요양등급을 받아야했고 등급판단 당시에 그분들은 자신들의 인지나 신체활력의 상태를 다소 과장하여 판정에 통과하는 꼼수를 쓰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런 꼼수를 통해 치매환자 아닌 인지등급(초기치매)으로 판정받고 센터이용을 하게 된 어르신들인 것이다.
어리버리 첫 토요실습 다음날인 이틀째, 일요일 실습 일정은 다르게 이루어졌다. 일요일에는 어르신들이 없으니 그분들과의 실습은 불가능했다. 대신 근처의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이라는 시설에 갔다. 그곳에는 주간보호센터에 출퇴근하기 어려울 정도의 정신적, 신체적 상태인 어르신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은 노인의료복지시설에 해당된다.
노인의료복지시설에 노인요양시설과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이 있다.
|두 시설의 공통점은
노인장기요양등급을 받으신 어르신들이 입소한다는 점이다.
입소대상은 노인장기요양 1~2등급과
노인장기요양 3~5등급자 중 불가피한 사유, 치매 등으로 시설급여 대상자로 판정을 받은 경우이다.
||차이점은, 입소 정원이다.
노인요양시설은 입소정원이 10인 이상이고,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은 5명 이상 9명 이하로 정원이 제한된다.
이미 나처럼 주말에만 실습을 이어오고 있던 실습생들도 이미 몇 번의 일요일이면 그곳에 가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인지/신체활동을 하는 실습을 했다고 했다. 어르신들의 인지적 능력이나 신체적활동의 유지와 회복에 도움이 될만한 활동을 계획하여 실습생들이 주도적으로 이끄는 것이다.
인지활동이란, 주간보호센터에서 하듯이 유치원 아이들이 하는 색칠공부나 색종이와 풀 가위 등을 이용하여 오리고 접고 붙이는 동작으로 특정한 사물을 만들어 보는 등의 활동이다. 그러한 간단한 활동을 통해 현재의 인지능력을 조금이라도 더 유지하도록 돕는다는 의미였다.
나의 첫 일요실습으로 계획된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에서의 인지/신체활동프로그램은 풍선을 이용한 게임이었다. 그것은 기존의 선배 실습생들이 그날 하기로 계획한 것으로, 초짜인 나와 P가 함께 참여하여 이루어졌다.
9인 이하로 인원이 제한된 그 시설에는 5~6명 정도가 머물고 있었는데, 그분들은 모두 가볍거나 중증의 치매상태로 보였다. 여자 어르신이 3~4명, 남자어르신이 2~3명정도였다. 그분들도 주말이면 가족들이 찾아와 함께 외출하기도해서 내가 갔을 때도 외출하여 부재중인 경우도 있었다. 일단 그곳에 남아있는 어르신들을 모두 거실로 모이게 한 다음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날의 주요도구인 풍선을 나누어 드리고 힘껏 불어서 풍선을 완성하도록하고 그것을 두사람씩 짝지어 보자기를 맞잡고 서게 한다. 보자기를 이용하여 풍선을 옆사람들에게 이동시키는 놀이이다. 풍선을 놓치지 않도록 보자기를 맞잡은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는게 중요하지만 나중에는 목적도 희미해지고 서로 웃으며 그냥 상황 자체를 즐기게 되었다. 보자기로 풍선이동하기가 끝나면 두사람이 마주 서서 가슴사이에 풍선을 넣고 힘껏 껴안아 터뜨리는 것으로 마무리짓기도 했다.
어르신들은 무척 단순하고 또 산만했다. 즐거운 상황에서는 한없이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즐거워했으나 집중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나중에는 프로그램을 주도했던, 선배 실습생이 노래를 틀어놓고 함께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어르신들은 즐겁게 해주어서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여러 차례 그곳을 방문해서 몇번 프로그램을 진행했다는 선배 실습생들을 그분들은 알아보지 못했다. 나도 그후로 몇번 더 그곳에 가서 프로그램을 직접 진행하기도 했는데, 갈 때마다 그분들은 우리들을 생전 처음 보는 사람으로 대했다. 나중에는 그분들의 이름을 외워서 이름을 불러드리기도 했으나 어떻게 본인 이름을 아느냐며 놀라워하며 늘 낯설어했다.
특히 어르신들 대부분은 치매상태였기 때문인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물론, 한참동안 종이접기놀이를 하다가도 갑자기 이런 걸 왜 하느냐며,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하며 반문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 어떤 남자 어르신은 어린아이가 기다린다며 집에 가야 하는데 왜 안 보내주느냐며 신발을 갈아신고 계속 문간을 서성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출입문은 항상 잠겨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집에 가겠다며 나가버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의 몇차례에 걸친 프로그램실습은 매우 의미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그분들은 치매환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치매환자라고 해서 항상 헛소리를 하거나 떼를 쓰거나 하는게 아니었다. 그분들은 옛날 이야기를 하기를 좋아했고 자신들을 그곳에 보낸 자녀들을 그리워했다. 그분들 중에 또다른 남자 어르신은 매우 점잖은 분이었다. 그분은 학력수준도 매우 높아보였다. 그래서인지 인지 프로그램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뜻밖이었던 것은, 내가 보기엔 너무나 쉬운 색종이 오리기나 테두리로 그려진 그림의 빈칸에 색칠하기에서 적당한 색을 선택하는 것을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몹시 어려워 한다는 점이었다.
그후에도 몇 차례 일요일 실습을 위해 그곳에 갔다.
미리 준비한 인지프로그램들을 어르신들과 한가지씩 진행하며 그분들의 무료한 24시간중 겨우 한두 시간을 때워주는 것이다. 어르신들은 치매로 온전한 상태가 아님에도 실습생들의 찾아와 주는 것을 기뻐했다.
자식이나 식구들은 그들의 삶이 바빠서 치매에 걸린 부모님을 그곳에 맡기고도 자주 찾아올 여유가 없는가보다고 생각되었다. 그중에는 일요일에 찾아와서 부모님을 모시고 나가 점심을 함께 먹고 짧게나마 가족간의 정을 나누는 경우도 있으나, 내가 실습을 갔던 서너번의 일요일마다 늘 그대로 그곳에 머물르며 무료해하시는 어르신들이 더 많았다. 그분들은 항상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식이거나 혹은 먼저 세상을 떠난 배우자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늘 낯설게 보이는 우리 실습생조차 일단 무조건 반가워하시는 것같았다.
겨우 한두 시간동안, 준비해간 프로그램을 어르신들과 함께 하고 돌아설 때는 마음이 가볍기만 한것은 아니었다. 머지 않은 우리의 미래가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그 당시 실행했던 프로그램들의 사진을 뒤져 올려본다. 첫날 했던 풍선놀이 사진은 찾지 못해서 그후에 했던 프로그램들 중에서 골랐다.
토요일과 마찬가지로 일요일에도 실습은 8시간을 채워야 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지켜지지 않았다.
물론 일요일에도 실습을 하기는 했다. 토요일과 비슷한 시각에 출근하여 오후 6시에 퇴근하는 것으로 일지도 작성하기로 했다. 바로, 그 부분에서 나는 다소 혼란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