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나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어찌 보면 다혈질인간이 되어가는 듯하다....모순되게도 나의 일상역시 충분히 부조리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불공정하다고 느껴지는 현실 상황에서 종종 부글부글 끓었다. 토요실습과 달리 일요실습의 부조리한 상황에 본의아니게 처하게 되면서도 나는 속으로 들끓었다.
부조리한 상황에서 나름, 의연하고 태연하기조차 한 타인들의, 그런 나를 보는, 표정에는 권태감이 역력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럴수록 더욱 들끓는 냄비 뚜껑처럼 끓어넘칠 듯했다. 그것이 결국은 아무런 소용없는 헛된시위일 줄, 나역시 사실은 잘 알고 있었음에도.
그러므로 '그들만의' 세계에서는 이미 다 공공연한 비밀일 수도, 어쩌면 뒤늦게 순진한 나는 순전히 유난스런 호들갑을 떤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나의 사회복지현장_일요실습에 관한 개인적인 소회所懷를 옮겨 본다...단, 내 경험의 한계를 함부로 일반화시켜서는 안될 것이라고 일러두는 바이다.
◉◈▣노인주간보호센터에서의 토요실습과 달리 일요실습은 오전 10경 시작하여 정오 무렵이면 끝이 났다.
일요일이면 오전 10시경, 원래의 실습처인 주간보호센터에서 기관장과 나를 포함한 실습생 서너명이 만나서 그날의 일정을 확인한다. 서너번의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에서의 프로그램실습이 예정된 경우에는 그날 필요한 소품들을 확인하고 챙긴다. 대체로 색종이와 풀, 가위, 신문지, 풍선따위...그리고 초짜실습생들의 서툰 열정이 그것이다. 준비물을 확인하면 기관장이 센터의 차량으로 우리들을 그곳까지 데려다 준다.
그때부터 실습생들은 주말에도 찾아오는 이 없이 쓸쓸한, 공동생활가정이라는 시설에 갇힌 어르신들과 함께 두어시간, 준비해간 프로그램을 어설프게 진행하고 황급히 돌아선다.
어르신들의 점심식사시간은 낮 12시.
따라서 우리들은 그 전에 활동을 마치고 식사준비를 돕거나 한 다음, 어르신들이 식사를 시작하는 무렵 문을 나서는 것이다. 굳이 그렇게 하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고 기관장이 말했다.
여기 계신 어르신들은 자꾸 나가시려 하고 집에 가야 한다고 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누가 왔다 가면 그때 따라나가려고 그분들 나름대로 머리를 쓰시거든요. 그러니까 식사를 하시거나 잠깐이라도 주의가 다른곳으로 향해 있을 때 우리들이 빠져나가야 해요.
그렇게, 제대로 작별인사도 나누지 않는 원칙 아닌 원칙으로 인해, 우리들은 들어갈 때와 달리 슬그머니 공동생활가정을 빠져나온다. 그리고 다시 주간보호센터로 돌아간다.
거기서 일요일 실습 일정은 끝났다. 정오무렵.
우선, 기뻤다. 일요일에도 하루종일 고되게 실습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렇게 해도 실습시간은 다 채운 것으로 해준다니까. 집에서도 다행이라고 했다. 오후시간이라도 쉴 수 있으니까.
그러나 화장실갈 때 마음과 올 때 마음이 다른 것처럼, 집에 돌아올 때는 슬그머니 딴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끝내도 되는 걸까...
하루 8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인데, 이틀의 실습일정 중에서 일요일 오후 절반을 이렇게 뚝 잘라 떼먹어도 되는 걸까. 오전시간을 대강 뭉뚱그려서 두시간 정도 얼렁뚱땅 프로그램 실습에 쓰는 것은 그렇다 쳐도, 남은 오후 4시간조차 고스란히 내버리는 것은 좀 너무한 것 아닌가 싶어진 것이다.
뭐 그렇다고 내가 우리나라 사회복지에 관해 대단한 사명감을 갖게 된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를테면 오후에도 몇 시간 정도는 사회복지 현장에 관한 '어떤' '무언가' '의미있는' '성의있는' ....등등의 실습 내용이 채워져야 옳지 않겠나 싶은 아쉬운 욕심이 마음 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토하자면 나는 사실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정의로운(?)마음의 단단한 이면에는 마찬가지로 그런 현실을 환영하는 심정도 열렬히 반짝거렸기 때문이다.
다만, 일요실습 일정에 실습이 없다면 이론교육이라도 채워지는게 이론적으로 타당할 듯 했다. 그러나 기관장은 엉뚱하게도 실습생들을 위하는 것인양 지나치게 정당성을 부여하는데 급급했다.
일요일에도 늦게까지실습을 하면 여러분이너무힘드니까, 일요일에는 이정도(12~1시 정도)까지만 하고 끝내주는 거에요. 그리고 이렇게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에 가서 프로그램을 진행해볼 기회를 주는 것도 우리 기관입장에서는 많이 배려하는거에요. 진행경험이 여러분들한테 좋은 경험이 될 거에요. 다른 기관에서는 실습생들한테 그런거 안 시켜요. 내가 절대로 할 게 없어서 시간때우려고 그 것을 시키는게 아니에요. 여러분 교육시키려고 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배려해드리는 거에요, 아시겠어요?
서너번의 공동생활가정 프로그램실습을 준비시키면서 기관장은 그렇게 누누히 강조했다. 자꾸 강조하니까 정말 가르칠게 없어서 그런 거라는 확신이 절로 들었다는게 문제였다.
그럴 때면 함께 실습하는 P와 나는 남몰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웃긴다...하면서.
그리고 실소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일요실습프로그램을 짜고 직접 실행하는 경험은 분명히 유용했으나, 일정 조기 종료의 이유는 구차한 변명으로 들렸다.
입으로는 실습생들을 매우 배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그외 특별히 해줄 이론교육체계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듯 했다. 실제로 10주_10회의 일요실습기회중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에 가서 프로그램을 운영한 것은 서너 번에 불과했다. 그러면 나머지 6주 정도는 어떻게 때웠을까.
그중에 두번은 다른 기관의 기관장(우리 실습처 기관장의 지인을 섭외한 경우)이 와서 이론교육을 했다. 그나마, 그분들은 실제로 몇 장씩의 인쇄물을 준비해와서 나누어 주고 사회복지의 역사라든가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복지발전의 실제라든가 하는, 실은 책에 다 있는 내용일지라도 강의를 했다.
어설프게 배워서 아는 내용도 있고 처음 듣는 내용도 있겠으나 최소한 그들은 자료준비라든가 일관된 주제를 놓고 강의를 하는 성의를 보였다는 점에서, 내용의 충실도는 차치하고라도 그 시간이 아주 무의미하게 생각되지는 않았다. 물론 그 강의도 오전 10시에서 두어시간 정도로 끝나는 일정이었다.
6회 중에서 그 두번을 제외한 나머지 4회 정도는 어떻게 채워졌을까.
그중 한번은 부원장이라는 기관장의 아내(그녀는 사회복지1급이고 박사과정 마쳤는지 진행중인지 그런 상태였고, 어디서 강의도 하는, 나름 좀더 전문가 레벨이었다)가 케어포라는 노인장기요양관리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고 운용하는 방법을 한두시간 간단하게 강의했다. 케어포프로그램은 체험하기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직접 사용해 볼 수 있다.
나머지 3회는 공동생활가정프로그램진행실습도 없이, 결국 온전하게 기관장이 무언가 했어야만 했는데, 기관장이 담당했던 그 몇 번의 일요실습시간이 나로서는, 안타깝게도 가장 아쉽게 느껴지는 시간이었음을 폭로하겠다.
솔직히 말해서 그는 실습생 교육에 열의나 관심이 없었다. 사회복지2급이며 시설을 운영한 동안 경험상 그냥 알게 된 지식, 오랫동안 같은 업종에서 같은 일상을 반복하다 보니, 지내다 보니 자신의 의지와도 상관없이 어느 사이 머릿속에 절로 들어간 현장 경험을 교육 내용으로 삼았는데, 처음 들을 때는 잠깐 새롭고 생생한 현장감도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도 세번씩 되풀이 해서, 이상하게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반복하다보니 지루하게 느껴졌다. 겨우 두시간 정도 때우는데 아무런 준비도 없이 항상 빈손으로 나타나,머리속 기억을 더듬어 옛날이야기 들려주듯 무성의하게 임했다.
나중에는 회의가 일어났다. 실습비도 터무니없게 받아놓고 교육을 이런 식으로 때우나 싶어서 본전 생각이 굴뚝같이 일어나 허탈했다. 그러나 기관장은 그런 회의도 없는지, 늘 같은 내용만 땀을 뻘뻘 흘리며 반복하면서도 부끄러워하기는 커녕, 노골적으로 따분해하는 우리 실습생들에게 왜 이렇게 열의가 없느냐며 뜬금없이 핀잔을 주기도 했다.
그럴때 나는, 그 점에 대해 기존 실습생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오후6시까지 실습하기로 했으면 그렇게 해야지 이렇게 엉터리로 해도 되는가, 좀 너무한 것 아니냐, 돈은 그렇게 많이 받아놓고 가르치는게 너무 없는것 같다...
그러자 그 실습생은 뜻밖에도 일찍 끝내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반문했다. 실습시간을 다 채우지도 않고 한 것으로 해 주는게 우리를 봐주는 것이라며, 공부는 자기가 하는 거지 교육이 뭐가 중요하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실습일지에는 일요일 오후에도 교육한 것으로 쓰고, 그 내용을 스스로 찾아보는게 공부가 되는거라고 일갈했다.
그 말은, 일요일에는 일찍 귀가하도록 배려하는 대신 실습일지에는 실습을 한 것으로 쓰도록 허락해 주는 비용이 그 실습비 30만원의 가치라는 의미로 이해되었다.
일개 초짜 사회복지실습생인 나로서는 기관장에게 뭐라고 할 입장이 아니었다. 선배실습생조차 그렇게 당위성을 인정하는것을 보면 그래, 그렇다니 그런가보다, 어쩐지 뭐가 잘못된 것 같기는 한데 딱 꼬집어 내가 손해를 보는 것인지 이득을 보는 것인지도 아리까리한 그런 상황이었다.
이게 바로 실습기간 내내 나를 괴롭혔다.
뭔가 무척 불만족스러웠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항의할 수도 따질 수도 없었던. 왜냐 하면, 기관장이 내 실습점수를 주관하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점수깎일 소리를 해서는 안 될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매 실습일지마다 기관장이 최종적으로 사인을 하고 그날그날의 평가를 적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일지는 당연히, (처음 실습을 시작하기 전 교육원의 실습담당 교수는, 일지의 실습내용은 매우 구체적으로 자세히, 여기서 자세히란 가능한한 일지 분량을 늘리기 위함이니 되도록 장황하게 길게 써넣으라고 조언했다.) 이른바 글짓기 수준으로 자신의 모든 글쓰기 역량을 동원해야 했다. 그것도 쉽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일요일 오후 일정은 대부분 하얀 여백에 빼곡히 지어 넣어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어찌어찌해서 10주동안의 실습일지가 완성되고 그것은 기관장에게 전해진다.
애초 일지 작성에는 여러가지 작성규칙이 있어서 그것을 철저히 지켜야 했으며, 대체로 오류가 없다고 판단되면 최종적으로 기관장이 사인하고 매회차의 일지마다 실습내용에 대한 평가를 간략하게 기록하도록 되어있었다.
나는, 적어도 기관장이 그 정도는 할 줄 알았다.
실습기간 내내 실습과정에서 특별히 한 일도 없는데, 적어도 그 정도는 기관장이 하겠지, 실낱같이 믿었다.
그리고 실습이 최종적으로 마무리되고 실습일지 외에 각종 서류들을 떡제본하여 실습담당교수에게 제출하기 위해 그것을 돌려받았을 때, 나는 참으로 감탄했다.
오마이갓!
직접 손글씨로 쓰게 되어있는 평가란조차, 기관장은 손도 대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평가는 누가 했을까?
그 ◉◈▣노인주간보호센터에는 실습생들의 실습일정 등을 관리하던 여사무원이 한 명 있었다.
바로 그녀가, 기관장 아닌 기관장으로서 나의 실습일지에, 아니 그 기관을 거쳐가는 모든 실습생들의 사회복지 현장실습 일지의 기관장 평가란에 자신의 예쁜 손글씨로 꼼꼼히 눌러적는 것이었다. 그에 더해, 실습점수를 판정하는 서류-그것이 가장 중요한 서류-에조차 점수를 기록하는 작업도 그 사무원이 했던 것이다. 그런 꼼수를 부리는 것이 일상적으로 너무나 당연한 일인 듯했다.
그 실습점수는 가능한한 잘 받아야 한다고 실습교수가 귀뜸해 주었기에, 나는 실습점수 때문에, 기관장의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 실습과정의 부조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는 커녕 숨죽여 불만을 참아왔던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 중차대한 나의 현장실습점수조차 일개 사무원의 담당업무에 불과했다니 어이없고 황당하기만 했다. 점수가 표시된 서류가 봉인된(그 서류는 실습생 자신이 확인할 수 없게 되어 있다.)그토록 형식적이고 터무니없는 절차에 의해 완성된 봉투를 내밀며 사무원이 마치 선심쓰듯, 점수 잘 드렸어요!라고 말할 때 그야말로 나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이렇게까지?!하면서.
현장실습에서 프로그램을 실행해 본 것은 분명히 좋은 경험이었으며 실제 사회복지사로서 어르신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돌보는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으니, 현장실습이 아주 무의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회복지행정의 실무 등에 관해서는 전혀 접근할 수가 없었다. 사회복지사가 주로 수행하는 것이 행정실무일텐데, 그것은 어디서 습득할 수 있는지 의아하다.
기관의 입장에서는 대체로 실습생들은 '돈 내고 무급으로 노동력을 제공하는 호구들'과 같은 존재에 불과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터무니없는 실습비를 요구해도 군소리 하나 못 하는 호구들에게는 실습내용도 당연히 부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기관장은 기관장으로서의 마인드가 부족해 보였다. 현장이 중요하다지만 그 스스로 기관장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기 위해 끝없는 이론적 무장 노력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실습생 관리가 귀찮으면 아예 받지 말았어야 하는데, 일단 받아놓고 본인은 형식적으로 관심갖는 척만 하면서 실제로 중요한 부분에서는 일개 사무원에게 맡겨버리는 꼼수를 당연시하는 윤리적타락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실습기간 중에 줌으로 열린 교육원의 실습세미나에서 나는 실습담당교수에게도 질문했었다.
사회복지실습 관리를 저렇게 엉터리로 하는 기관이 있는데 원래 다 그런 거냐고. 그러자 교수는, 다 그런 건 아닌데, 그런 데도 있고 그런 거죠.... 다 그럴 거라고는 생각하지 말자,고만 말했다.
짐작하건대, 업계에서는 이미 다 그렇게 관행적으로 실습이 이루어진다는 의미인 듯했다.
나중에 기사를 검색해보니 수년 전에도 사회복지실습과정에 문제가 불거졌던 적도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디나 적당주의는 있겠지만, 사람을 대하는 사회복지의 영역에서 그 종사자를 훈련시키는 기초과정에서부터 이런 식으로 시작된다면, 나처럼 그 세계에 첫발을 들이는 수많은 초심자들은 무엇을 먼저 배우고 확인하는가.. 현실은 혹독하고 현장과 이론은 다르다는 개념을 심어주기 위한 노력이었을 것이라고 애써 두둔을 해야할까.
길다면 길었던 10주간의 실습이 끝나고 서류를 모두 제출하고 사회복지협회에 사회복지현장실습확인서를 보내고, 얼마후 2급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마침내 교부받았다.
그 한 장의 자격증을 따기 위해 나는 1년반이 넘도록 애썼다. 그러나 그 가벼운 종이 한장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까지 해낼 수 있을지도 아직까지는 짐작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