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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Mar 10. 2017

독재국가의 민중 봉기

20170310 대통령 탄핵 인용에 붙임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 남쪽 300㎞에 있는 시디 부 지드에 사는 20대 중반의 청년 실업자 모하메드 아부지지는 몇 달째 일거리를 찾아 돌아다녔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길을 걷다 보면 자신과 같은 젊은이들이 거리를 배회하는 것을 어렵잖게 볼 수 있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그동안 힘겹게 모아온 돈 몇 푼으로 청과물 노점상을 하기로 결심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그는 시장 한쪽에 자리를 펴고 과일과 야채를 늘어놓았다.

“야채 사세요. 오늘 아침 밭에서 따온 싱싱한 야채와 과일이 있습니다…….”

그는 쑥스러움을 참아가며 어렵게 입을 열어 소리쳤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제복을 입은 경찰 몇이 그의 노점으로 다가와 물었다.

“이봐, 허가증 있나? 누가 여기서 이런 걸 팔라고 했지?”

아부지지는 단속 경찰의 물음에 당황했지만 겁먹지 않고 되물었다.

“노점을 하는데 무슨 허가증이 필요합니까? 처음 듣는 말인데요.”

“그래? 이곳에서는 판매 허가증이 없으면 누구도 장사를 할 수 없다. 당장 치워!”

우두머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뒤에 서 있던 경찰들이 아부지지의 노점을 뒤집어 엎기 시작했다. 그들은 많지도 않은 과일과 야채를 몰수하고는 저울까지 챙겨가려 했다. 그대로 당할 수 없었던 아부지지는 그들을 막아서며 항의했지만, 우두머리가 그를 제지하며 따귀를 올려붙였다. 그리고 순식간에 당한 봉변에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아부지지를 남긴 채 그들은 재빨리 현장을 떠나버렸다.


튀니지의 실업률은 14%를 넘어서며, 25~30%에 이르는 청년 실업률은 열심히 일해야 할 젊은이들을 모두 거리로 내몰았다. 저마다 살기 위해, 빵을 구하기 위해 노점이라도 해야 했다. 그런 처지에 있던 아부지지는 경찰에게 당한 부당한 대우에 항의하며 그날 오전 지방 청사 앞에서 온몸에 기름을 붓고 분신자살을 기도했다.

튀니지 혁명의 불씨가 된 이 사건은 2010년 12월 17일에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장을 구하지 못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조직의 권리와 언론 자유, 대통령 주변의 부패에 대한 처벌 등을 요구하는 파업과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늘 생계를 걱정하며 살아야 했던 시민들도 그동안 참아온 불만을 터뜨리며 시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시위는 특정 세대가 아니라 모든 연령의 시민들로 확대되었다.

높은 실업률에 대한 항의 시위는 곧 부패와 인권침해로 문제가 된 벤 알리의 23년간의 장기 집권을 비판하는 시위로 급속히 번져나갔다. 결국 시민들의 뜨거운 항의와 저항 끝에 독재자 벤 알리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튀니지의 시민혁명이 성공을 거두자 이웃 나라인 알제리, 리비아, 이집트 등에서도 독재 정권 타도와 인권 회복을 요구하는 시위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누리며 살 권리가 있다. 그리고 사람답게 살 권리도 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보면 악랄한 독재자의 통치 아래 20~30년씩 억압과 통제를 받으며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통신과 언론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외부 세계와의 정보 소통이 원활치 않아 그런 나라의 국민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다양한 통신수단이 발달하면서 세계가 모두 이웃처럼 신속한 정보의 소통과 공유가 가능해졌다.


우리나라도 1970년 11월 청계천 봉제공장 노동자들의 인권 회복을 위해 분신자살한 전태일 사건을 계기로 인권과 민주화에 눈뜨게 되었다. 최근 민주화 열기로 세계의 주목을 받은 아프리카 튀니지도 그동안 무려 20여 년에 걸친 독재 체제 아래 많은 국민이 신음해왔다는 사실이 뒤늦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튀니지를 통해 우리는 시민혁명의 힘을 짐작할 수 있다. 

튀니지 국화 이름을 따서 ‘재스민 혁명’이라고도 불리는 튀니지 혁명이 힘을 얻자 이집트와 리비아, 시리아, 예멘 등으로 시민혁명의 들불이 번져나갔다.


혁명은 이처럼 전염력이 매우 강하다. 

이는 자유와 인간답게 살 권리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그만큼 크다는 뜻일 것이다.

스핑크스와 피라미드로 유명한 유적의 나라 이집트에서도 1981년에 권력을 잡은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무려 30년이나 독재 권력을 장악해왔다. 그는 비상사태법으로 나라를 엄격히 통제하는 가운데 권력을 확장하고 대통령직을 더 연장하려는 음모를 꾸미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는 소홀해 높은 실

업률과 물가 불안정 등으로 불만이 극에 달한 시민들은 튀니지 혁명의 성공을 지켜보며 민중 봉기를 일으킬 힘을 얻었다.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결국 권력을 군부에 이양하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서 시민혁명은 주변 나라들로 계속 확산되어 갔다.

20~30년씩 나라를 통치하며 독재자들이 한 일은 민생 안정이 아니라 부정 축재였다. 스위스 정부는 최근 현재까지 동결 조치된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와 그 측근들이 스위스에 불법 은닉한 자산이 3억 6천만 스위스 프랑(약 4,428억원)이며,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의 자산은 4억 1천만 스위스 프랑, 벤 알리 전 튀니지 대통령의 자산은 6천만 스위스 프랑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또한 중동과 아프리카 독재자들의 은닉 재산을 모두 합치면 대략 8억 3천만 스위스 프랑(약 1조 20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독재자들이 제3국의 비밀 금고에 감추어둔 돈이 투명하지 않은 돈이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자신이 통치하는 나라의 국민들은 삶의 질곡에 빠져 허우적대는데 그들은 자신의 주머니만을 채우며 호의호식해왔다.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 소수의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 정의라면 이 독재자들은 정반대의 신념으로 세상을 살아온 셈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이 얼마나 자유와 행복, 인간답게 살 권리를 갈망하는 존재인가를 알 수 있다. 뜨거운 시민 봉기를 일으킨 사람들은 통치자에게 무리한 것을 바라지 않았다. 다만 일할 수 있게 해주기를 바랐으며 인간답게 살 권리를 바랐을 뿐이다.


최근 중동 지역에서 일어난 민주화 시위는 식료품 가격의 인상에서 비롯되었다. 

먹을 것, 즉 ‘빵’이 불씨가 된 것이다.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욕구의 충족이 어려워질 때 인간은 당황하고 분노하며 폭발하게 된다. 올해(2011년) 초, 유엔 산하 식량농업기구FAO가 식량 파동의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국제 식료품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 시작했다. 그 결과 알제리에서는 단 1주일 만에 주요 식료품 가격이20% 이상 올랐고, 인도에서는 카레의 주재료인 양파가 품귀 현상을 빚었으며, 여러 나라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그 결과 튀니지의 독재권력을 끌어내린 것이다.


앞에서 본 대로 분노한 시민 세력은 큰 물결을 형성하며
체제 전복까지 이루어낼 힘이 있다. 개인은 약하지만
수많은 개인이 뭉치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 준 것이다.

독재자들은 이런 시민들의 힘을 미처 짐작하지 못했다.
권위와 힘으로 통제하고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다고
착각한 것이다. 


만약 독재자들이 혼자만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니라
나라의 운영을 맡긴 국민들 모두와 함께 잘사는 길을 모색했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비참한 말로는 겪지 않았을 것이다. 
독재자들에게 부족했던 것은 무엇일까.
만약 우리가 21세기의 독재국가에 살게 된다면 
어떻게 난관을 헤쳐나갈지 생각해보자. 

개인이나 소수의 축재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고 자유로운 나라를 만드는 데 필요한 
지도자의 조건은 무엇일까.





                                                            -201108 다시읽기*청소년을 위한 정의의 올바른 이해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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