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맞아도 되는 존재는 없다
“너 이 새끼 이리 안 와!? 피한다 이거지?”
거친 욕설과 함께 먹는 물이 절반쯤 들어있는 플라스틱 병이 날아들었다.
벽에 부딪혀 쏟아지는 물세례를 맞으며 혜정이와 민석이는 공포에 떨었다. 곧이어 물에 젖은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쫓아와 남매를 거칠게 폭행하는 사람이 있다.
중학교 1학년 혜정이와 두 살 아래 민석이를 이렇듯 모질게 대하는 사람은 바로 1년 전부터 함께 살게 된 새 어머니였다.
“잘 못했어요…안 그럴게요…안 그럴게요…”
밥을 먹다가 좀 남겼다는 이유로 따귀를 얻어맞은 민석이는 구석으로 도망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울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애원했다. 민석이를 감싸 안은 혜정이도 온몸을 웅크린 채로 그저 참아야만 했다.
“거지같은 것들이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엄마 말이 그렇게 우습니, 우스워?! 재수 없는 것들!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맞아야!”
새 어머니는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아이들 앞에 버티고 선 채로 오랫동안 화풀이를 해댔다.
그녀는 아이들을 때리는 것이 가정교육이고 훈육방법이라고 이야기했다.
혜정이 부모님은 5년 전 이혼했다.
아버지가 술만 마시면 어머니와 아이들을 심하게 때리고 구박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 때문에라도 참고 살고자 했던 어머니는 어느 날 두개골이 함몰될 만큼 중상을 입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집을 떠난 것이다.
그때 어머니는 아이들을 데려가려 했으나 형편이 여의치 않아 나중에 데리러 오겠다는 약속을 남겼다.
그로부터 몇 년, 어머니 없이 사는 동안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술주정도 행패도 부리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새 어머니를 들이며 이렇게도 말했다.
“예전에 너희들 때리고 한 것…정말 미안하다…이젠 그럴 일 없을 것이고 너희들을 돌봐주실 새 엄마도 오실 테니 앞으로는 잘 살아 보자…일 때문에 자주 집을 비우니 새 엄마가 더 잘 돌봐주실 거야…”
건축 현장 감독으로 일하는 아버지는 지방에서 공사가 시작되면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도 없이 두 아이들만 집에 두는 것이 신경 쓰여 아이들을 돌봐 줄 새 엄마를 들이는 것으로 아버지는 한시름을 덜어보려 했던 것이다.
아이들도 처음에는 친절한 새 어머니가 고맙고 좋았다. 그러나 그 친절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거의 집에 없다 보니 집안의 주인은 어느새 새 어머니가 되어, 이유 없는 잔소리를 퍼부어 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거침없는 손찌검으로까지 이어졌다.
“학교 갔다 오면 니 빨래는 니가 하라고 했어 안 했어? 너희들 위해서 그런 것도 가르치는 거야.”
학교 다니고 공부만 하기에도 바쁜 아이들에게 스스로 옷을 빨아 입으라고 시킬 뿐 아니라 틈나는 대로 집안 청소를 시키고 설거지며 온갖 심부름으로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밥은 저녁에 한 끼만 주는데 반찬이라고는 김치 몇 조각이 전부였다. 차라리 아버지와 살 때는 달걀 프라이라도 마음대로 해먹을 수 있었지만, 그런 자유는 꿈도 꿀 수 없었다.
당혹스러운 환경의 변화에 아이들도 처음엔 반항을 하기도 했으나 말도 안 되는 손찌검이 답으로 돌아올 뿐, 그렇게 시작된 폭행과 구박은 1년째 이어졌으나 아버지에게 알리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한 달에 서너 번 정도 얼굴을 보는데 그런 하소연을 할 시간이 부족할 뿐 아니라 아버지의 휴대전화 번호도 알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도 새 어머니가 부녀간의 대화를 막기 위해 취한 악의적이고 의도적인 조치였다.
“혜정이 민석이 잘 있었지? 엄마가 잘 챙겨주시지? 엊그제는 놀이공원에도 갔다 왔다며? 좋았겠네, 아빠도 없이 갔는데 재밌었냐?”
오랜만에 귀가한 아버지는 생뚱맞게 이런 소리를 하며 흐뭇한 얼굴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네…?…놀이공원이요…? 아…”
“응? 놀이공원? 우리는…”
혜정이와 민석이가 어리둥절한 듯 머뭇거리자 곁에 있던 새 어머니가 아이들을 흘겨보며 재빨리 입을 막았다.
“그럼요! 얘들이 얼마나 좋아했는데…그날 돈 많이 썼어요…한 30만원 썼나? 놀이기구 타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호호호…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그치 얘들아~?”
그러자 아이들은 얼음처럼 굳어버린 채 더 이상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그래? 잘 했네! 사이좋게 잘 살아주니 정말 고맙다 모두들!”
사정을 알 리 없는 아버지는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짧은 휴일을 보내고 일터로 돌아가면 아이들에게는 또다시 지옥문이 열렸다.
“니네 아빠 앞에서 입 조심해! 어디서 수작이야, 수작이! 오늘은 저녁 밥 없으니까 굶고 그냥 자빠져 자!”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온 민석이는 배가 고파서 냉장고를 열어 보았다. 서랍 칸을 열자 메모지같은 크기의 치즈 수십 장이 눈에 띄었다. 순간, 기쁘긴 했지만 민석이는 잠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이거 못 보던 건데…새 엄마 건가…하나만 먹으면 안 될까…많이 있으니까 하나쯤 먹어도 모르겠지…그러다 걸리면…어떡하지…’
이런 걱정 속에서도 아직 어린 민석이로서는 눈 앞의 먹을 것을 그냥 포기할 수 없어서 살며시 치즈 한 장을 꺼내어 이불 속으로 숨어들어가 허겁지겁 뜯어먹었다. 그대로 잠이 든 민석이가 눈을 뜬 것은 갑자기 눈부신 빛과 함께 날아든 몽둥이세례 때문이었다.
“이 도둑놈의 새끼 당장 일어나! 누가 냉장고 뒤지라 그랬어?! 누가! 이 나쁜 새끼 쥐새끼 같은 놈! 도둑질 하는 못된 버릇을 고쳐놓고 말거야!”
몹시 흥분한 새 어머니가 민석이 바지를 벗기고 빗자루로 사정없이 내리치며 욕설을 퍼부었다. 민석이는 잠결에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도 못한 채로 여린 엉덩이에서 피가 날 때까지 매질을 당했다. 민석이는 더 이상 울음소리를 토해내지도 못했다. 뒤늦게 집으로 돌아온 누나 혜정이가 사정하며 매달려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네년도 마찬가지야! 이 도둑년! 니가 시켰지? 왜 남의 물건에 손을 대! 싸가지 없는 것들, 먹이고 입히고 학교 보내주는데 뭐가 부족해서 도둑질이야!”
새 어머니는 혜정이에게도 똑같이 폭행을 가했다. 빗자루 몽둥이가 시원치 않은 듯 나중에는 손바닥과 주먹, 발길질까지 더해졌다. 간식이 필요했던 아이가 냉장고에서 치즈 한 장을 꺼내 먹은 대가는 너무나 가혹했다.
몇 시간 후 새 어머니 스스로 나가 떨어질 정도가 되어서야 겨우 정신을 차린 두 아이는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누나…우리 도망가자…무서워…진짜 엄마한테 갈래…흑흑흑....”
이렇게 흐느끼는 민석이를 끌어 안으며 혜정이는 서러운 눈물을 흘렸다.
가정은 삶의 안식처이며 부모는 자녀의 잘못도 모두 조건없이 끌어안아 감싸주려는 무한한 애정을 지닌 존재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심심찮게 들려오는 소식들은 적잖은 충격을 주곤 한다. 부모가 최소한의 방어력도 없는 어린 자녀를 폭행하거나 방치하고 학대하는 것은 물론 죽음에 이르도록 만드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들은 불완전하고 안정적이지 못한 가정에서 빈번하게 발생한다.
폭력적인 가정은 대체로 부부간의 갈등에서 비롯된다. 주로 남편이 음주 후 아내를 비롯한 가족에게 폭력과 폭언을 일삼는 것이다. 아내는 자녀들 때문에 남편의 이유 없는 폭력을 견디지만 한계점에 이르면 또 다른 문제를 겪게 된다. 가출이나 이혼 혹은 극단적으로는 사망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그런 가정의 자녀들이 폭력에 길들여지며 성장한 뒤에는 마찬가지로 폭력적인 부모가 될 위험이 매우 높아진다. 친부모에 의한 가정폭력도 문제지만 새 어머니나 새 아버지에 의한 폭행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물론 모든 재혼가정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의 자녀를 친자식처럼 키우며 살기란 결심만큼 쉬운 일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알려지는 새 부모에 의한 폭행 학대 사건을 보면 매우 극단적인 결과까지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에피소드는 좀 더 극단적인 사례 중 하나일 뿐, 모든 재혼가정에 일반화시키는 오류는 경계해야 한다.
혜정이 민석이 남매는 부모가 이혼한 가정의 자녀들이다. 이혼하기 전에는 아버지가 아내와 아이들을 폭행하는 존재였다. 아이들을 생각해 참고 살았던 어머니는 생명의 위협을 느낄 만큼 중대한 폭행을 당한 뒤 이혼을 선택했다. 그 후 아버지에게 남겨진 아이들은 새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아버지가 보기에는 자녀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리라는 생각에 그런 결심을 하였으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새 어머니도 어쩌면 처음에는 좋은 마음으로 혜정이 남매의 엄마가 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함께 살아보니 마음 만큼 쉽지 않은 일이 남의 아이들을 키우는 일이었으리라. 아직 사춘기인 아이들도 자기 마음에 쏙 들지는 않을 테니까… 하루하루 참고 이해하였으나 어느덧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폭행과 폭언을 시작하고 일상이 되어버렸다. 남편이 매일 집에 온다면 그나마 횟수나 강도가 덜 할 수도 있겠지만 한 달에 서너 번
얼굴을 보게 되는 상황에서는 아이들의 구원군은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잘못을 했어도 사람을 때리는 처벌은 용납될 수 없다.
부부간의 폭행도 마찬가지지만
약하고 힘없는 아이들을 신체적 정서적으로 제압하기 위해
저질러지는 폭행과 폭언은 결코 어떤 경우에도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도피할 곳이 부재한 공간에서
되풀이 되는 폭력에 아이들은 길들여지게 된다.
폭력에 길들여지는 것이 무서운 이유는
자존감이 낮아지고 심리적으로 정서불안 상태에 놓이며,
맞설 힘이 없는 아이들의 가슴속에 분노가 쌓이며
죄책감과 심각한 우울증, 대인기피증은 물론
타인의 아픔에 대한 무감각과 폭력에 대해 왜곡된 신념을 갖게 된다는데 있다.
그렇다면 혜정이와 민석이는 어떻게 새 어머니의 폭력에서 벗어나야 할까.
새어머니는 아이들을 때리고 구박하면서 ‘훈육’이라고 이야기한다. 새 어머니 자체가 어릴 때 가정폭력을 경험한 피해자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녀 역시 누군가에 의해 ‘맞아야 나쁜 버릇을 고친다’는 소리를 들으며 폭력적으로 양육되었다면, 그녀에게 익숙한 그대로 삶의 방식이 된 것이다.
우선 남매는 새 어머니에게 당하는 폭력에 대하여 아버지와 학교에 적극적으로 알려야 할 것이다. 아버지는 새어머니를 믿기에 자녀들로부터 그런 사실을 전해 들어도 쉽게 믿지 않으려 할 수도 있다. 어쩌면 그로 인해 더 큰 보복 폭행이 올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남매는 도움요청을 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믿음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학교나 가정폭력 예방센터, 동네 어른에게라도 자신들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다.
만약 보복폭행이 반복되어 혜정이 남매가 그대로 주저앉아
새 어머니의 폭력에 스스로를 그냥 방치해 버린다면
어떤 결과가 기다릴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폭력에 길들여진 남매는 분노와 함께 ‘나중에 커서 보자’는 식의
보복 심리를 갖게 된다.
지금 당장은 힘이 약해서 저항할 수도 맞설 수도 없지만
힘이 생기면 그때는 그대로 갚아주겠다는 다짐을 할 것이다.
그것은 실제로 끔찍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쉽지 않더라도
주위 다른 어른들에게 적극적으로 S.O.S를 요청해야 한다.
그리하여 끝내 새로 이룬 가정마저 깨어진다 해도
그것은 겉으로만 화목해 보이는 폭력의 도가니보다는
훨씬 나은 결과라고 할 수있다.
어린 시절의 경험들은 중요한 정신적 신체적 자산이 된다. 성장기에는 신체만이 성장하는 것이 아니고 수많은 배움과 경험들을 통해 정신적으로도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의 배움과 경험들은 성인이 되었을 때의 행동양식과 사고방식의 토대가 되므로 매우 중요하다. 어릴 때 어려운 이들을 돕는 부모를 본 사람과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을 보며 자란 사람은 성인이 되었을 때분명히 다른 가치관을 갖게 된다.
폭력에 항복하지 말자.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 누구도 자녀를 학대하고 함부로 다루어도 되는 사람도 이유도 없다. 지금 아무도 모르게 집안에서 조용한 폭력으로 고통받고 있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주위에 알리도록 하자. 이웃어른, 학교, 경찰서, 폭력예방기관 혹은 가까운 친구에게라도 알려서 함께 해결방법을 찾도록 노력하자!
폭력은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는 행위이며 새로운 폭력의 씨앗을 뿌리는 최악의 행위이다.
-201108 다시읽기*청소년을 위한 정의의 올바른 이해 중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