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실습일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mehow Mar 22. 2022

자기 자신으로부터 잊혀지다

_치매를 앓는 어르신들

경증 치매를 앓는 어르신들은 장기요양인정 등급의 하나인 인지지원등급으로 판정되면 주간(주/야간)보호센터를 이용할 수 있다.

이전에는 신체 기능의 원활함정도를 판단기준으로 1~5등급으로만 분류되었으나 2018년부터 인지지원등급이 신설되었다. 그로써 신체기능은 상대적으로 양호하지만 주위의 보살핌이 없이는 혼자 생활이 어려운 치매 어르신들도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인지지원등급 어르신들의 경우, 하루 8시간, 월 최대 12회 이용이 가능하고 치매전담실을 운영하는 센터를 이용할 경우 월 9일 이상 이용하게 되면 장기요양 월 한도액의 30%를 추가로 인정받을 수도 있다.

치매란 성장기에는 정상적인 지적 수준을 유지하다가 후천적으로 인지 기능의 손상 및 인격의 변화가 발생하는 증후군이다. '인지 기능'이란 커다란 대뇌를 가진 인간에게 고유한 고차원적인 기능이다. 이러한 인지 기능은 다음과 같은 광범위한 능력을 포함한다. 지능, 기억능력, 지남력(시간, 장소, 사람을 인식하고 식별하는 능력), 주의집중력, 학습 능력, 언어 이해 및 구사 능력, 문제 해결 능력, 판단력, 사회 생활 능력 등 치매는 노화와 관련된 정상적인 건망증과는 달리 이러한 인지 기능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 또한 이에 덧붙여, 성격의 변화 및 감정 조절과 행동 조절 능력의 장애도 함께 발생하게 된다.
치매는 단일 질병이 아니라, 매우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증후군이다. 따라서, 그 원인에 따라 치료법도 다양하며, 그 경과도 다양하다.
치매는 필연적으로 나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65세 이상의 노인들 중5%는 심한 치매를 가지고 있고, 15%는 경한 치매를 가지고 있다. 나이가 증가할수록 그 비율은 점점 높아지며, 80세이상 고령자들은 70대 노인들보다 치매 빈도가 5배나 높다.
치매와 건망증을 초기에는 구별하기가 대단히 어렵지만, 치매에 있어서의 기억은 과거에 자신이 경험하였거나, 있었던 일에 대한 기억을 전반적으로 광범의 하게 모두 잊어 버리는 특징이 있으나, 건망증은 전반적인 기억의 상실이 아니라 기억된 것의 일부를 선택적으로 잊어 버리는 것으로 구별할 수 있다.

특히 치매는 시간, 장소, 사람에 대한 기억으로 설명되는 지남력과 판단력의 전반적인 장애를 일으키지만, 건망증은 지남력과 판단력은 대부분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것이 차이점이다.

치매에 있어서 기억력 상실은 정상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단순한 기억력 상실이 아니고 뇌세포의 기능변화로 인한 하나의 질병이기 때문에 이는 반드시 전문의사의 자세한 진단이 필요하고, 적절한 치료가 병의 진행을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며, 조기 치료의 기회를 지나침으로서 병의 진행을 막거나 적절한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한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내가 실습했던 주간보호센터 이용자들중에서 여자 어르신 서너명, 남자어르신 두어명 정도가 치매환자였다.

물론 치매환자라고 해서 하루종일 망상이나 환각에 시달리는것은 아니었다. 그분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정상적인 모습으로 생활하지만, 어느순간 불현듯 그러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살습당시의 경험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분들에 대해 떠올려보려 한다.


80대 즈음인 여자어르신 A의 경우, 얼굴은 항상 웃는 표정이었으나 사람들과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았다. 누가 다가가 말을 걸면 대답하듯 말을 하지만 사실은 대답이 아니고 자기가 할 말만 하는 것이다.

또 주위에서 재미있는 놀이를 하거나 음악소리가 들려도 반응이 없을 뿐더러, 그냥 멍하니 앉아서 졸거나 가만히 있다가 어느 순간 집에 가고싶다고 말하며 안절부절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렇다고 떼를 쓰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한가지에 생각이 꽂히면 계속 그것을 요구하는 성향이 있었다. 그러다가도 요양보호사들이 주의를 다른데로 돌리면 문득 그때까지 하던 반복적인 말이나 요구를 잊어버리고 아이처럼 순응하기도 했다.

나이가 70대 정도로 비교적 젊은 여자어르신 B의 경우는 다소 젊은 편인데도 치매증상이 심한 편이라고 했다. 그분은 젊은시절 남편이 바람을 하도 피워서 평생 심적 고통을 겪었는데 그후로 치매까지 걸렸다고 요양보호사가 얘기해 주었다.

또 다른 여자어르신 C의 경우는 60세 즈음으로 무척 젊은 편이었다. 그런데 증상은 특히 심했다.

이를테면, 아침이면 어르신들이 센터에 도착하는 대로 요양보호사나 실습생들이 가글액을 한모금씩 입에 넣어 주면서 '어르신, 오골오골오골~한 다음에 뱉으세요'하고 구강소독을 하게 되는데, 이때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그대로 뱉어내지만, C어르신은 그것을 매번 그냥 삼켜버린다는 것이다.

실습 초기에 그 일을 담당하다가 C어르신이 아무렇지 않게 가글액을 꿀꺽 삼키는 것을 보고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러나 곁에서 지켜보던 요양보호사가, '원래 자꾸 삼키시는 분이에요...'라고 귀띔해주었다. 아무리 주의를 주어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입에만 들어가면 그냥 삼켜버리는 것이다.

이후로도, 'C어르신은 약간 난폭한 성향이 있어서 누가 친밀감을 표시하기 위해 자신의 몸에 손을 대거나 하면 곧바로 귀싸대가 날아올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소 흥분한 상태일지라도 그분이 신뢰하는 어떤 보호사가 다가가 아기달래듯 달래며 어루만져 주면 가라앉는다고도 했다.

 다른 D어르신의 경우는, 성격이 활발한 편이었는데 한동안 잘 지내다가 갑자기 자신의 지난날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어 무한반복하기도 했다. 처음에 그분이 치매환자인 줄 몰랐을 때  나는 우연히 옆에 있다가 자신의 젊은시절 이야기를 하시길래 의심없이 귀기울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상하게이야기가 끝이 없이 이어지는 것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들어보니 조금전에 한 이야기를 계속 되풀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어떻게 이 고리를 끊어야할 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그러다가도 자신의 이야기에 스스로 심취한 어르신 D는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구로 향하며 '빨리 가서 아이들 밥해줘야 해, 나 좀 얼른 데려다 줘!'하고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그럴 때면 노련한 요양보호사가 다가가 진정시키거나 아직 갈 시간이 안 됐다거나, 아니면 버스 시간이 아직 안 됐다는 식으로 말을 돌리고 주의를 환기시키려 애써서 상황을 정리해야만 했다.


주간보호센터에는 분명히 경증 혹은 중등도의 치매를 앓고 있는 어르신들이 있었다. 그분들은 평소에는 그저 미소띤 얼굴에 온화한 노인들의 모습이었으며 대체로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는 일도 없었다. 다만 대화를 시도하면 서로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것을 느끼게 되고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과거의 어느시점의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것을 볼때는 그 시간만을 영원히 기억하며 그속에 머무르고 싶어하는 것같았다.

그로써 치매를 앓는다고 해서 감정까지 잃어버리는 것은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과거의 행복했던 어느 시점을 회상하면서 행복감에 젖는 듯했다. 반면, 과거의 기억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어느 치매어르신은 하루에도 종종 불현듯 떠오르는 과거의 고통스러운 느낌때문에 힘들어 한다고 했다.


치매의 증상 및 종류는 다양하며 현재까지 발생 기전이 확실히 규명되지 않았고, 원인을 치료할 수 있는 치료법도 없는 상태이다. 그러니까 미리 예방하는 것이 중요한데, 일반적으로 권장되는 것은 두뇌 회전을 많이 시킬 수 있는 놀이나 독서이다. 또는 건전한 수준의 게임, 바둑, 카드놀이와 같은 종합적인 인지 능력을 요구하는 놀이가 건망증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되며 신문,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이 효과적인 예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주간보호센터에서 실시되는 인지프로그램도 이처럼 어르신들의 인지력 후퇴를 막고자, 머리를 쓰도록 유도하는 것이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날마다 반복되는 프로그램들은
늘 거기서 거기라는, 과연 저런 프로그램으로 인지력 후퇴를 막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은 경우도 적지 않더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 사회복지사들이 인지능력향상을 위한 프로그램을 발굴하고 개발하여 실시하지만, 그게 어르신들에게 어느정도 도움이 되는지
검증여부가 불확실할 뿐더러 여기저기서 서로 베껴다가
시간때우기 식으로 실행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같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장기요양등급판정의 비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