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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Mar 21. 2022

장기요양등급판정의 비밀

_내 어머니의 경우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주간보호센터를 비롯한 장기요양시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장기요양등급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내 어머니가 약 87세즈음...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하기 위해 처음으로 등급판정을 받을 때의  상황에 대해 적어보기로 한다. 


건강보험료에다 더해서 요양보험료도 내고 있는 65세 이상의 노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면, 


'나 평생 열심히 일해서 세금꼬박꼬박 내왔고 법 지켜가며 열심히 살아왔으나, 늙고 이제 병들어 거동 힘들고 좀더 복지혜택이 필요해졌으니 국가야, 네가 이제부터 나 죽을 때까지는 좀 더 확실하게 돌봐다오!' 


하고 80~90살 된 어르신이 요청하면, ' 아예 알겠습니다, 어르신!' 하면서 그냥 적당히 오케이해주면 좋으련만, 장기요양혜택을 신청만 한다고 늙고 병들어 아프다고 아무나 척척 받아주는게 아니었다. 


즉, 내 어머니의 경우, 2-3년전 신체활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병원에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가족끼리 등급판정을 받으려고 시도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우리 가족이 아무리 어머니의 건강상태에 대해 장기요양서비스가 필요함을 어필해도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해당 주간보호센터를 알게 되어 상담을 하게 되었을 때, 센터 측에서 이렇게 설명해주었다. 

"개인은 등급판정받기가 쉽지 않으니, 일단 우리 센터에 등록하여 서비스를 받으시면(물론 100%자부담으로), 그 사이 보험공단에 등급판정 신청과 모든 절차를 저희들이 맡아서 진행할 것입니다. 저희가 노력하면 거의 대부분 등급판정을 받을 수 있으니 걱정마세요..." 

그 제안대로 우리는 따랐고 결과적으로 어머니는 장기요양등급 4등급을 받으셨다. 

그 과정에서, 의사소견서 등이 필요해서 인근병원에도 센터측 관계자와 함께 갔었는데, 그때 동행한 주간센터 원장은 어머니와 나에게, 최대한 몸 상태가 나쁘다는 쪽으로 적극적으로 어필을 하고 인지능력도 많이 떨어졌다고(사실은 더르더라도)주장하고, 심지어 치매환자처럼, 인지능력이 매우 저하된 사람처럼 연기를 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공동의 목표는 장기요양등급을 받는 것이고 제일 낮은 등급이 인지지원등급이니, 치매가 걸렸든 아니든 일단은 적어도 인지력이 낮아진 것처럼 해서라도 등급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대로 어머니와 나는 성의껏 연기를 펼쳤으나, 원장이 보기에는 아무래도 불안했는지, 의사상담을 마치고 나올 때는 약간 퉁명스럽게 "좀더 어필을 하라니까 왜 그러고 있었냐..."는 식으로 원망을 표하기도 했다. 

만약 등급이 제대로 안 나오면 모두 [가족 니네 탓]이라는...?생각에 우리 가족은 한동안 걱정에 휩싸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얼마 후, 4등급으로 판정받았다는 다행스런 소식을 듣게 되었다. 

역시, 의사나 공단에서 나온 등급판정단 앞에서도 (주위사람이 아무리 노력했거나 말거나) 어머니는 오늘의 날짜나 더하기 빼기 등등을 얼덜결에 척척 정답을 말해버림으로써(그로인해 모두를 불안하게 했어도), 거짓치매환자연기를 하지 않고도 급격히 떨어진 신체활력상태를 인정받아 4등급이 된 것이다. 

(아래 표 참고, 장기요양등급은 심신의 기능상태에 따라 일상생활에서 도움(장기요양서비스)이 얼마나 필요한가에 따라 점수를 부여하고 6개 등급으로 판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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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어머니가 다니시는 주간보호센터에 내가 실습을 나갔을 때, 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여기 오시는 분들은 다 치매환자들이에요!"


그런데 나는 그 말을 듣고 조금 의아했었다. 

내가 볼 때는 치매환자분들도 있었지만 분명히 치매가 아닌 경우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분들은 치매가 아닌, 신체기능상 크고작은 문제들로 힘겨운 노년을 보내고 계시는 경우였다. 그러던중 문득 내 어머니가 등급판정을 위해 노력했던 일이 생각나면서 모든 것이 이해되었는데,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하고자 하는 어르신들 대부분은, 일단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것으로 최대한 연기를 펼쳐서 치매든 아니든 일단 대부분 경증 치매정도의 인지저하를 원인으로 인지지원등급판정을 받은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실습기간중 인지능력향상 프로그램이라는 명목으로 색칠하기 시간이 되면 어르신들 간에도 수준차이가 확연했었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그런 색칠-단순한 도안이 그려진 종이의 여백을 색색가지 색연필로 색을 채워넣은 활동을 실제 어린시절에는 해본 경험이 없다고 했다. 지금 70~90대의 어르신들이 요즘의 아이들처럼 유치원에 다니거나 유.아동 미술활동을 경험하기는 불가능했을 시절을 살아왔기 때문이리라고 나는 짐작했다.) 


어떤 분들은 도안으로만 그려진 종이에 자기주도로 특정 색을 선택하여 채워넣는 것자체를 무척 힘들어했다. 예를들어, 핑크색과 빨간색의 경우, 색상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다. 또한 도안의 선이 어떤 의미인지도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색칠하기의 경험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그와 같은 반응과 태도를 보이는 어르신들은 경도치매 혹은 인지기능저하상태인 경우가 확실해보였다.

 

다른 경우의 어르신들은 색상에 대한 이해가 정확하고 분명하며, 물론 그분들 역시 자신의 생애에서 그와같으 색칠공 부경험이 없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도안으로 표현되어 있는 그림을 이해하고 각각의 부분에 어떤 색을 넣는것이 적당한가를 스스로 판단하고 좀더보기좋게 색을 채워넣으려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분들은 내가 볼 때, 분명히 매우 정상적인 인지상태를 가진 어르신들이라고 확신한다. 내 판단에 지극히 정상적인 이와같은 어르신들은 그러한 활동자체가 너무 쉽고 우습기까지 해서 불만이엇다.

'아이고 왜 이런 건 시키나..누굴 바보로 아나...'

'나 벌써 다했어. 이렇게 쉬운 걸 뭐하러 하는 거야?'

이런 반응을 보이고 지루해 하셨다. 그럴 경우에는 더 복잡한 그림도안을 추가 제공하거나 그림의 도안이 숫자로 표현되어 숫자들을 연결해 선을 이어그려야 그림의 형태가 드러나는 과제를 제공하기도 했다. 


물론 색칠하는 것 정도를 가지고 인지기능을 판별할 수 있느냐고 하면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아래와 같은 내어머니의 색칠과제물을 보면, 적어도 어느 정도는 확인이 된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같다. 내 어머니 역시 어린시절은 물론이고 이전에는 이런 색칠공부와 같은 활동을 한 적이 없으실 것이다. 그럼에도 내 어머니(장기요양등급_4등급)는 색상과 도안의 의미를 분명히 알고 어떤 색을 어디에 쓰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인지 스스로 판단하여 그림을 완성했음을 할 수 있었다.



주간보호센터에서 완성해 종종 집으로 가져오는 내 어머니의 색칠솜씨 



실습당시, 인지기능이 저하된 어르신들은 색상 선택에 괴로움을 느낄뿐 아니라 흔히 우리가 고정관념이라고 하는 나뭇잎은 초록색이나 연두색, 혹은 꽃잎은 빨강이나노랑 분홍색 등등으로 칠한다는 인식조차도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내 어머니의 그림처럼 꽃잎에 흔한 빨강이나 핑크색이 아닌 녹색이나 파랑색, 갈색 등으로 채워넣는 것은 물론, 도안이 의미하는 사물간의 경계를 이해하지 못해 그냥 전체적으로 한두가지 색으로 면을 칠해버린다. 

물론 그럴 때도 나는 그것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림이니까, 꽃잎을 갈색이나 파랑으로 칠해도 개인의 자유와 창의력 측면에서 얼마든지 허용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다시 말해, 내가 전달하고 싶은 의미는 주간보호센터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장기요양등급을 판정받는과정에서 많은 경우 인지능력저하를 이유로 등급을 받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인지능력이 정상인 분들도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주간보호센터장의 말처럼 '여기 계시는 분들은 모두 치매환자들이에요!'라는 표현은 분명히 잘못되었다.


그 보다 큰 문제는, 실제로 인지능력의 차이를 무시한 채 일률적으로 인지프로그램을 적용하다 보니, 어떤 분들은 그마저도 힘들어 하고 다른 분들은 너무 쉬워서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는 상황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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