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리마리하다

_말끝을 모호하게 하다. 생각이나 기억, 일 따위가 분명하지 아니하다.

by somehow

“어? 이 고려청자 꽃병… 이거… 누가 이렇게 했어? 누구야!”

골동품수집이 취미인 아버지는 어느날 우연히 거실 장식장 위에 놓여있던 고려청자를 들여다보던 중 갑자기 가족들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아이, 깜짝이야… 왜요…… 그, 귀한 고려청자가 어쨌다고요?”

어머니는 몹시 놀란 듯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늘 그 자리에 있어서 신경을 제대로 안 썼는데, 지금 우연히 지나다 보니까…이게 뭐야?!”

주혁이와 주희 남매도 아버지의 큰소리에 놀라 긴장하며 다가왔습니다.

“어..? 그게 왜요? 저희는 모르는 일인데요…”

자세히 보니 고려청자의 주둥이부분이 여러 조각으로 깨어진 채 그럴듯하게 접착제로 붙여놓은 상태였습니다. 누군가 깨뜨린 것을 아무도 모르게 되돌려 놓으려 한 것 같았습니다.

“다들 보이지? 누가 이 귀한 골동품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자수해…”

“어머, 나는 처음 보는데요? 얘들아, 너희들 왜 그랬니…그러니까 늘 조심하라고 했잖아…”

어머니가 짐짓 걱정스런 표정으로 아이들을 돌아보며 말씀하셨습니다.

“아, 전 아니에요. 엄마! 절대!”

“저도 아니에요!! 그걸 만질 일도 없고 손닿는 곳도 아닌데 뭐 하러 일부러 부딪히겠어요?”

아이들이 강한 어조로 이렇게 부인하자 남편은 다시금 아내를 지그시 쳐다보았습니다.

“아, 아니라니까요…참… 난 그냥 열심히…살림하느라고… 열심히…”

남편의 시선을 피하며 아내가 이렇게 변명하자, 남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습니다.

“이상하네…왜 당신 말끝이 흐리마리한 걸까…? 항상 똑 부러지는 사람이…!”

그제야 아내는 미안한 얼굴로 진땀을 흘리며 변명했습니다.

“호호, 흐리마리하다니요? 아니, 그게…사실은, 엊그제 타조깃털 먼지떨이로 먼지를 털다가 살짝 건드렸는데, 바닥으로 떼구르르…하더니 그냥 주둥이가 톡 깨지는 걸 어떡해요? 호호…난 진짜로 살림 열심히 한 죄밖에 없다고요…호호호!”



‘흐리마리하다’는
‘말끝을 분명하지 않고 모호하게 하다.
생각이나 기억, 일 따위가 분명하지 아니하다.’의
뜻으로 쓰이는 재미있는우리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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