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부끄러운 요양보호사 도전 실패 후의 5월 마지막 몇 주동안 서너군데 면접을 볼 수 있었다...물론 생산직이다. 사회복지사가 되어보고자 하던 일장춘몽은 요양보호사 극한 체험에서 깨어나며 훌훌 털어버렸기에, 적어도 2년 6개월여 지난했던 생산직에서의 소중한 경력 한 줄을 진한 잉크로 꼭꼭 눌러적으며 적극적으로 취업에 나섰다.
무슨 일을 하느냐는 처음부터 중요하지 않았다.
보기좋고 그럴듯한 일은 지난 세월동안 실컷해봤다. 글쟁이로 살았고 가죽가방제작/디자이너로도 살았고 아마추어 플루트연주자로도 지내봤으며, 더 오래 전에는 출판사/신문사편집부직원으로도 국어선생으로도 일해 보지 않았는가...
결국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태도가 달라질 뿐. 남들은 머리를 쓰며 일하듯 나는 몸을 쓰는 일을 하기로 결정한 것뿐.
그러므로, 어떻게 사느냐가 나는 더 중요하다,
최선을 다해.
구회말이 되면서 점수를 내지 못하여 조바심을 감추고 타석에 들어선 타자처럼 나는, 더 없이 신중하게 배트를 그러쥐고 나를 향해 날아오는 몇 개의 공들을 절실하게 고른다.
첫번째,W의료기_이곳은 팔이나 다리를 다쳤을 때 깁스를 하거나 고정시키는 의료기를 제조하는 사업체였다. 집에서 20여분 거리였고 현재 위치로 이전해온 지 10년이 넘은 비교적 안정된 업체였다. 실무자는 면접 끝에 결국, 나이를 들먹였다.
_생산직 인원이 20~30명 되는데, 일하기 괜찮으시겠어요? 오시면 나이가....왕언니가 되시겠네요...
_그럼요! 상관없습니다.
_그런데, 말을 다들 그렇게 해도, 막상 일하면서 자기보다 나이어린 사람한테 지시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면 말썽이 나고...결국 그만두곤 하더라고요....
나는, 잘 할 자신있다고 백번 말해야 별로 소용없었다. 그들은 그들만의 연령 제한선이 정해져 있었다. 기존의 직원들 평균나이와 비슷한, 그래야 잘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면접은 내내 훈훈하다가 나이부분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다음 날 주겠다던 연락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다른곳에 또 지원을 해야할지 빨리 결정해야 하기에 더 기다리며 조바심내기 싫어서 전화를 걸었다.
내가 탈락된거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이유는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두번째, 주식회사 R상사_이곳은 수술도구 등 의료용구를 포장하는데 필요한 의료용 비닐포장, 비닐백을 제조하는 업체였다. 알고 보니 W의료기업체와 같은 동네의 조금떨어진 위치였다. W의료기는 이력서를 보내고 내가 전화를 해서 면접을 보았다면 이곳은 이력서를 받아보고 나에게 면접을 보자고 연락이 온 경우였다.
회사는 규모가 꽤 커보였고 의료용품의 특성상 위생과 청결면에서 깔끔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실무자 면접시작, 면접의 내용은 사실 어디나 비슷하다. 그들이 나를 면접 보듯이 나역시 마음속으로 그들을 가늠하고 평가하는 시간이 된다. 그곳의 조건은 다른 회사들과 조금 다른면이 있었다.
매주 월요일마다 예배를 보고 업무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근무시간이 8:30~5:30인데 월요일은 그러니까 8:30부터 두시간동안 전직원이 모여앉아 예배를 드리고 친목도모의 시간을 가진 다음 10:30부터 일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종교가 뭐냐고 물었다. 천주교라니까 그럼 예배가 그리 부담되지 않으시겠다고 말을 했다. 나도 그렇다고 맞춰주었다.
여기서 좀 그런 건, 그 예배를 이사님이 주관한다는데, 면접 당시 갑자기 나타나 잠시 내 앞에 앉아 나를 훑어보고 간 여자이사가 있었다. 그녀가 예배를 주관한다는... 기독교에서는 아무나 예배를 주관하는 건지, 아니면 그 양반이 목사님이나 선교사나??뭐 그런 자격도 있는 건가 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으로는 연차에 대한 설명이었다.
첫달 만근을 하면 다음달에 연차 1개가 생기는 것을 시작으로 11개가 첫해에 생긴다. 그런데, 그 연차를 모두 내맘대로 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만의 계산법은 이랬다.
우선, 매주 금요일에는 1시간씩 일찍 끝내준다. 그러면 1달에 4주-->총 4시간을 일찍 끝내게 된다. 그렇게 두달이면 8시간이 되고 그것을 하루 쉰 것으로 쳐서 연차 1개로 갈음한다. 즉, 두달에 연차1개 까기-->12달이면 6개를 까는 거다. 그러고 남는 연차 5~6개 정도만 내가 자유의사로 사용이 가능하다, 였다.
그들이 들이대는 이유는 이랬다.
_연차가 있다고 해서 직원들이 마음대로 자기 필요할 때마다 빠져버리면 협업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다른 직원들에게 피해가 가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피해라고 설명하는게 귀에 설었다. 그것은 서로 알아서 해결할 문제이지 일방적으로 배려심이 지나쳐서 직원들이 과로할까봐 걱정을 해주다니... 또한, 자유로이 쓸 수 있는 연차 갯수를 초과해서 개인적으로 더 빠지게 되면 그만큼 월급에서 까게 되니, 그 부분은 각자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급여손실 부분은 왜 배려하지 못하는가? 최저시급이나 겨우 맞춰주는 주제에, 자기들이 일방적으로 까버리고 남은 연차를 초과해서 어쩔 수 없이 빠지는 경우 잃게 되는 하루치 일당 말이다. 어떻게든 지출은 그런 식으로라도 줄여보겠다는 꼼수인가.
나는 어리둥절해서 깜짝 놀라 되물었다. 정말이요? 연차를요??
_매주 1시간씩 일찍 끝내주고 두달에 한번씩 8시간을 연차로 까는 것은 노무사를 통해 확인하여 문제될 것 없음을 확인했습니다.
장황하고도 친절한 설명에 나는 황당했다. 내가 원치 않는 종교행위, 예배에 강제로 참여해 매주 월요일마다 두시간씩 소요하는 것은 그냥 듣는 척 안 듣는 척하며 속으로 농땡이를 칠 수도 있으니 참아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으나, 법적으로 보장된 연차에 대한 권리를 일방적으로 사측의 판단으로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만은 이해가 쉽지 않았다.
누가 매주 금요일마다 1시간씩 일찍 보내달라고 했나? 나는 그냥 금요일도 꽉 채워 일하고 내 연차는 내 마음대로 사용하고 싶은데 말이다.
결론적으로 이 회사는 내 나이를 따지지도 않았으나 그들이 내거는 조건이 불만스러웠다. 그럼에도 채용된다면 한번 더 생각해보리라고 마음먹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마음이 심란했다. 채용이 되도 걱정이요,안돼도 걱정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