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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회말, 투아웃투스트라이크에 휘두르는 마지막 한 방_2

_야구는 잘도 모르면서2

by somehow

세번째, S인더스트리.

집에서부터 20여분 남짓 거리.

이곳은 인트턴트 커피나 영양제 등 각종 의약품의 병 입구를 밀봉하는 특수포장재를 만드는 사업체이다. 그로써 병속의 내용물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알고 보니, 이 회사는 꽤 오랜 역사를 가진, 국내에서는 이 분야의 거의 독보적인 제조업체로서 그전까지는 수입에 의존하던 인너-씰의 국산화를 시작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었다. 이곳에서 제조하는 인너-씰은 식품 및 산업용 포장재 전반에 적용되어 내용물의 안전한 보호(위해 요소 제거)와 산패 방지, 위조 방지(홀로그램 적용) 등이 가능하다.

약속된 시간에 맞춰 달려간 사업체는 큼직한 두어 개의 건물과 널찍한 주차장으로 이루어져있는데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면접은 회의실에서 세 사람의 관계자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되었는데, 나이든 남자 사장님과 그의 아내인 사모님과 이사_알고 보니 사장의 딸...가족이 모두 회사에 매달려 열심히 일하는 보기 좋은, 바람직한??사업체가 아니겠는가....


거기서 거기인 면접이 이어졌다.

그동안, 무려 6-7년간 일했던 생산직 여직원 두명이 동시에 그만두었다며, 그 자리에 들어올 사람을 찾는다는 것이다. 내가 할 일이란 대형 인너-씰 용지에 동그란 펀치기계로 두드려 각종 병입구의 각각의 지름크기로 잘라져 나오는 그것들을 모아 비닐봉지에 담고, 다시 박스에 쌓어 넣어 옮기면 되는 참 단순한 제조업무였다. 앞서 다니던 두 여직원은 함께 카페를 차린다며 그만두었다며, 붙잡았어도 나갔다며 그들처럼 오래 일할 사람을 구하기에 매우 신중해보였다.

다니던 회사는 왜 그만두었는지 물었고 나는 대답했다. 그리고 실업급여를 받고 있으며 곧 끝나가기에 나역시 오래 일할 곳을 찾는다고 말했으나, 나이든 사장님은 깐깐한 어투로 이렇게 말했다.

_만약에 실업급여나 받자고 우리 회사에 들어오는 거라면 꿈도 꾸지 마세요...

뭐라는 거지? 나는 그 부분에서 조금 빈정이 상했다. 실업급여나 받자고 1년정도씩 일하다 재계약 안하고 나가서 실업급여를 받아먹기를 반복적으로 하는 이들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으나, 그렇다고 나를, 적어도 오래 일하고 싶은 일자리를 찾아헤매는 나를 그런 부류로 혹시나 우려하여 그런식으로 말을 하다니.

어쨌거나 이러쿵저러쿵 서로의 질문과 대답을 들어가며 그들과 나는 각자 면접을 진행하였다.

사장의 부인은 내가 너무 말랐다며 힘든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걱정을 드러냈다.

너무 말라서 기운이 없어서 일을 못하겠으면, 힘든 일을 하기 싫으면 그 자리에 내가 달려가 면접을 보았을까.. 일을 시켜보기 전에는 모르니까 하는 소리일테지만 설명할 방법이 마땅치않아 좀 답답하기도 했다.


그렇게 면접을 대충 끝내고 공장을 둘러보러 갔다. 씰용지가 쌓여 있고 씰 펀칭기계가 몇대 있고 외국인 남자 노동자가 한 명인가 두명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펀칭기 소리가 좀 크게 공장을 울렸다.

사모님이 물었다.

_(외국인노동자를 가리키며)쟤들 하고 같이 일해야 하는데 할 수 있겠어요? 나도 같이 일할 거니까 일도 도와주고 알려 주고 할 거에요.

못할 건 뭐지?

_잘라져 나오는 씰을 모아서 한 묶음씩 비닐봉지에 넣어서 박스에 채워서 한 박스씩 들어 옮겨 파레트 위에 쌓는게 일이에요. 박스가 무거울 수 있는데 할 수 있겠어요?

그녀는 계속 내가 무겁고 힘든 일을 할 수 있겠는지 걱정했고, 오래 있지 못하고 도망갈까봐 걱정스러워 하고 있었다. 대충 공장을 둘러보고 나오며 내가 한가지 질문을 했다.

_중식은 제공되는 거죠?

그러자, 그녀는 뜻밖의 말을 한다.

_아니요. 여기는 식당이 없고 외부식당도 멀어서 오가기 힘드니까, 중식비로 매달 10만원을 지급할 거에요. 그러면 점심은 도시락을 싸오거나 시켜먹거나 각자 알아서 하는 걸로...

10만원? 밥값이 요새 한끼에 8-9천원씩 하는데, 10만원으로는 부족해도 너무 부족한 게 아닌가. 바로 그 부분에서 나는 면접점수를 감점했다. 돈을 더 보태서 점심을 시켜먹거나 도시락을 싸오거나 해야 하는데, 둘다 하기 싫었다. 사장과 아내와 이사라는 딸은 그 안에 있는 주방에서 자기들끼리 점심을 해먹는다고 했다. 원래 기숙사로 쓰던 건물에 주방이 있어서 해먹는다는 것인데 이왕하는 거 좀더 넉넉히 해서 생산직 몇명도 같이 먹게 해 주면 좋지 않을까, 싶었으나 그런 일은 없는 것 같았다.


면접을 마치고 돌아서는 뒤통수에 대고도 사장의 아내는, 내가 잘 할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이 안 선다며 계속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점심값을 10만원밖에 안 준다는 부분에서 고개를 저었다.


그곳의 면접에서 얻은 인상은 다른 곳보다 사람을 고르는데 좀더 까다롭다는 느낌이었다. 사장과 직접 면접도 처음 겪는 일이었으나 그의 왠지 까탈스러운 인상이 좀 피곤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일단 채용통보라도 받으면 그때 다시 생각해보리라,며 고용센터로 향했다.


또 하나의 면접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용센터를 통해 채용을 하겠다고 나선 어느 화장품회사의 채용면접 일정이 잡혀 있었다.


네번째 면접은, 주식회사 P화장품. 이곳은 여성용 색조화장품을 주로 생산하는 중소기업인 듯한데, 집에서의 거리는 그나마 15분정도로 제일 가까운 편이었다. 세 사람씩 한번에 면접을 보았다.

조건은 깜짝 놀랄만 했다.

9-18시까지 근무인데 거의 매일 야근이 있다는 것, 그리고 주말에는 특근도 있다는 것. 오 마이 갓!

그 부분에서 나를 포함한 세명의 구직자는 당황했다. 거의 매일 야근을 하라니, 그리고 토요일에도 쉬지 못하고 또 일을 하라니.

그건 사람을 구하는게 아니라 일하는 기계를 구하려는 조건이 아닌가.


속으로 혀를 차고 있을 때, 업체에서 나온 면접 실무자가 자랑인듯 아닌듯 이렇게 말한다.

_코로나도 잠잠해지고 이제 조금씩 마스크를 벗게 되니까 화장품 매출이 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동안은 많이 힘들었는데 잘 버텨왔지요...얼마 전부터는 너무 바빠서 매일 밤 9시까지 야근을 했어요. 주말 특근도 계속하고...물론 야근이나 특근시에는 시급의 1.5배를 지급합니다. 지난 달에 그렇게 해서 월급을 최대로 받은 사람은 330만원인가 받은 경우도 있어요!

돈이 중요하다. 돈 벌자고 일하는 거니까. 그런데 매일 야근을 하면 언제 쉬나요? 거기다 토요일에도 일을 하면, 돈이야 많이 벌겠으나 건강을 해치고 나면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

_그래서, 야근이 너무 많아서 힘들다 해서 주5일 야근 하던 것을 이제는 4일로 줄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내가 야근과 특근부분에서 고개를 젓고 있을 때 주5일에서 4일로 줄어드는게 나아질거라고 설명한다.

집에서는 참 가까우니 마음에 드는데, 야근과 특근으로 부담을 주는구나 싶었다.

물론, 그의 말로는 야근이나 특근은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누구는 계속 야근하고 누구는 안 하면 서로 부담되니까, 하게 된다고도 말한다.

어쩌라는 거지? 그래도 일단은 야근도 할 수 있다며 적극적이고도 착찹한 심정으로 면접을 마쳤다. 색조화장품의 특성상 무겁고 힘든 일은 없다. 야근과 특근만이 있을 뿐.

다음날 채용여부를 알려주겠다고 하고 끝났다.

함께 면접 본 두명의 구직자들(나보다 10년이상 젊은)도 야근과 특근은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이곳 저곳 면접을 다녀보니, 한 가지가 마음에 들면 다른 하나가 부당하거나 불만족스러운 조건이었다. 사실 모두 내 마음에 드는 꿀직장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가장 만족도가 높은 곳을 찾는 것이 최종 목표이다.



다음날이 되었다.

오전 문자가 왔다.

두번째 면접처였던 주식회사 R상사에서 불합격되었다는 통보였다.

나는 어쩐지 안도하는 심정이 되었다. 나더러 다닐래 말래하고 물으면 무척 곤란했을 것같았는데, 채용되었다고 해도 고민스러웠을 것인데 그쪽에서 알아서 잘라주니 처음으로 땡큐였다.


이내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연락을 주겠다던 세번째 면접처, S인더스트리에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어제 면접본 유OO입니다.

부득이 지원의사를 철회하겠습니다.

저보다 더 적합한 인재를 채용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처음으로 내가 먼저 면접결과를 통보하기도 했다. 이로써 혹시 나를 채용할지 말지 망설이고 있다면 그들의 결정에 먼저 확신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았다.

이때가 5월17일이었다.

나의 잠정적 목표는 실업급여수급 만료일인 23일 이전에 채용되는 것이었다. 이왕이면 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고, 그게아니면 한가지라도 더 만족스러운 곳에 채용되면 좋겠다는 것.

그러나 아무리 급해도 악조건을 견디며 장기간 일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네번째 면접처였던 주식회사 P화장품업체의 취업도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그 다음날이 되어도 채용여부 연락이 없기에 고용센터에 연락했다. 해당업체로부터 아직 채용결과지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고용센터 담당자에게 말했다. 그곳의 채용여부에 관계없이 지원의사를 포기하겠다고. 그러니까 언제부터 출근하라는 연락이오더라도 가지 않겠다고. 주중 연속적인 야근과 특근을 해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잠깐 다녀보다가 그만두는 따위 섣부른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희망을 걸었던 네 군데 업체 모두 불발이다. 나는 헛손질을 반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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